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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시간: (EST) 2018년 12월 15일, 토 8:03 pm
[칼럼/기고/에세이] 기고
 
Rude behaviors by vice president Mike Pence
펜스 부통령의 '뻘짓', 미국에서 어떤 욕 먹나
[게릴라칼럼]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만으로도 위대한 이유



▲ 박수치는 남북, 꼼짝않는 펜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지난 9일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해 남북 단일팀 선수 입장에 박수를 치고 있다. 오른쪽은 미국 마이크 펜스 부통령 내외. 뒤는 손 흔드는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 오마이뉴스 기사화면

(필라델피아=오마이뉴스) 강인규 기자 = 시계를 보았다. 오후 7시 47분. 서둘러 아파트 계단을 뛰어올랐다. 손에는 피자 한 판이 들려 있었다.

'이러다 개막식 놓치겠다.'

나는 스포츠 애호가와 거리가 멀지만, 이번 올림픽은 달랐다. 평창에서는 개막식이 환호 속에 끝난지 오래였으나, 지구 반대편에 사는 나는 녹화방송을 기다려야 했다. 한국에서 개막식이 시작된 때는 미국 동부 시간으로 오전 6시, 서부 시간으로 오전 3시였기 때문이다.

수많은 눈이 쏠릴 (따라서 어마어마한 광고 수익이 보장된) 행사를 새벽 시간에 내보낼 수는 없는 터, 독점 중계권을 따낸 미국 방송사는 개막식 방송을 저녁 황금시간대로 미뤘다. 그 사이 전세계 언론은 온갖 찬사를 쏟아내며 이주노동자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할 수 없이 한국 포털에서 동영상을 찾아 재생 버튼을 누르니 '해당 국가에서의 접근은 금지되어 있습니다'는 안내문이 떴다.

다른 동영상을 몇 개 찾아보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나는 강의를 마치고 인터넷으로 피자를 주문한 뒤 연구실을 나섰다. 한국이라면 '치맥'이라는 훨씬 좋은 선택(특히 무절임!)이 있었을 텐데, 아쉬울 뿐이었다.


▲ 오륜기 게양 9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올림픽기가 게양대로 향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기사화면

1988년과 2018년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왔지만, 방송사는 미국 선수를 인터뷰하며 시간을 끌었다. 그 사이 무수한 약 광고, 병원 광고, 햄버거 광고, 자동차 광고, 화장품 광고, 스마트폰 광고, 그리고 또다시 약 광고, 병원 광고, 햄버거 광고가 지나갔다. 그렇게 1시간 가까이를 기다린 뒤에야 시작을 알리는 폭죽을 볼 수 있었다.

감동이었다. 한국을 알리는 상징물이 무대 위에 하나둘 나타나고 관객들이 환호할 때, 눈 앞에 1988년 올림픽 개막식이 떠올랐다. 비록 두 개의 행사가 잠시 겹쳐보이기는 했으나, 사실 이 둘은 결코 겹쳐질 수 없을만큼 먼 거리에 있다.

30년 세월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1988년 올림픽은 한국이 세계무대로 막 등장했음을 알리는 무대였다. 비록 행사의 주인은 한국이었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외국인의 시선에 맞춰져 있었다. 내 어린 눈에도 '다른 나라에 잘 보여야 한다'는 강박에 짓눌린, '주인 아닌 주인'의 모습이 딱해 보일 정도였다.

그해 추석 명절을 보내기 위해 시골 할머니 댁에 갔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농가의 회색 슬레이트 지붕에 빨간색, 파란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던 것이다. '외국 손님' 눈에 띌 지 모를, 도로 근처의 집들을 대상으로 '환경미화작업'을 한 것이다. 앞집 돼지 우리도, 옆집 외양간도 온통 원색의 물결이었다.


▲ 9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평창 올림픽 개막식에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자신감'이었다. 각국 선수단은 로마자 순서가 아닌 한글 순으로 입장했고, 경기장에서 그들을 반긴 것은 이미 세계 팬들을 확보한 한국 대중음악이었다. 개막식 공연에 두루 사용된 디지털 장비와 조명은 한국 첨단 기술의 현재를 담담히 보여주고 있었다. 남에게 인정 받는 사람은 과시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는 법이다.

가장 큰 자부심이 드러난 순간은 '촛불 나누기' 순서였다. 바로 이 순간, 평창 올림픽은 88올림픽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차원으로 부상했다. 많은 이들이 벅찬 가슴에 눈물을 훔쳤을(적은 이들은 쓰린 속에 신트림을 쏟았을) 이 장면은 세계가 가장 부러워하는 한국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었다. '촛불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역동적 시민사회다.


▲ 9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1988년 하계 올림픽을 열던 한국은 온전한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었으며, 처음 올림픽 유치 계획을 세웠던 1979년 유신정부 시절은 더더욱 아니었다. 게다가 서울이 올림픽 후보 도시로 결정된 시기는 광주 시민들의 피가 마르지도 않은 1980년 겨울이었다. 군부가 계획하고 신군부가 유치한 올림픽은 권위주의 정권의 홍보수단이 될 운명이었으나, 1987년 시민들이 전두환을 쫓아낸 덕분에 어느 정도 축제 기분을 낼 수 있었다.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지금, 전세계의 시민사회가 위협받고 있다. 오랫동안 성숙한 민주주의를 일궈온 유럽과 북미도 예외가 아니다. 민주적 절차의 근본을 뒤흔드는 트럼프의 집권과 그를 흉내낸 유럽 우익 정치세력의 부상은 민주주의의 미래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 어두운 시기에 한국은 홀로 빛나는 촛불이다.

미국 엔비시(NBC) 방송 진행자들은 개막식 중계를 하다가 역사적 무지를 드러내는 발언을 했다. 하지만 촛불을 서로 옮겨가는 장면에 담긴 의미 만큼은 정확히 짚어냈다. 트럼프가 집권한 후, 나는 미국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자신감: 어두운 시기에 홀로 빛나는 촛불


▲ 이야기 나누는 펜스-아베 9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미국 펜스 부통령과 일본 아베 총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북측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뒷 줄 왼쪽부터 앉아 있다. ⓒ 오마이뉴스 기사화면

"한국은 해냈는데, 우리도 가능할까?"
"엉터리 대통령 탄핵하는 법 좀 알려줘."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나면 펜스 미 부통령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듣게 될 것 같다. 펜스 부통령이 한국에 와서 한 '뻘짓'에 많은 미국인들이 부끄러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펜스 부통령이 올림픽에 초청받아 온 뒤 한국에서 한 '반북 행보'를 소상히 소개했다. 거기에는 탈북자들과 만나고, 천안함 잔해를 둘러보고, 아베 총리와 며칠간에 걸쳐 긴밀히 대화하면서도 북한 대표와는 만남을 거부한 이야기가 포함돼 있다.

그는 미국 선수단이 입장할 때는 환한 표정으로 일어나 박수를 쳤지만, 남북 단일팀이 등장했을 때는 웃지도, 일어나지도, 박수를 치지도 않았다. 펜스의 '외로운 투쟁'을 다룬 <워싱턴포스트> 기사에는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다.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상위의 댓글들은 하나같이 비난과 조롱 일색이다.


▲ 9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미국 선수단이 입장하고 있다. ⓒ 이희훈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댓글은 "당신보다 차리리 북한의 외교력이 더 낫다"였다. 선호도 2위의 댓글은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 로켓에 실어 우주로 날려보낸) '스타맨' 마네킹을 보냈어도 펜스보다 나았을 것"이라는 조롱이었다. 3위는 "펜스는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외교 폭탄"이었다. 여기에 "'트럼프의 푸들'이 자기를 초청한 우방에 가서 무례하고 미련한 짓을 했다"와 "세금이 아깝다"가 각각 4, 5위를 차지했다. 그밖에 "안 그래도 저승사자 같은 얼굴을 더 구기고 앉아 있다", "저 사악한 얼굴 좀 봐라", "창피해 죽겠다" 등의 반응이 줄을 이었다.

백악관도 상황이 곤혹스럽게 돌아가자 "일부러 북한 대표단과의 접촉을 피한 것은 아니었다"라고 변명했다. <폴리티코>의 보도에 따르면, "(펜스 일행이) 다른 방문객과 인사하고 있던 그 자리에 북한 대표단이 없었기 때문에 인사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펜스와 북한 대표단이 같은 테이블에 앉을 수 있게 준비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앞뒤가 안 맞는 해명이다. <폴리티코>는 펜스가 불과 며칠 전까지도 북한과의 대화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북한측과 만남을 요청해둔 상태는 아니었으나 "상황을 지켜 보겠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부끄러워하는 미국인들


▲ <워싱턴포스트> 인터넷판에 올라와 있는 댓글들. 펜스 미부통령의 무례하고 몰상식한 행동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 강인규

미국인들이 부끄러워할 때, 나도 수치심을 느끼고 있다. 한국의 야당과 언론 때문이다. 펜스가 무례한 행동을 해서 미국 시민들에게도 욕을 먹고 있는데, 한국의 정당과 언론은 제 나라 정부를 욕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펜스 편에 서서 청와대를 비난하는 것은 물론, '한미 군사훈련을 연기하라 말라'는 아베의 도 넘은 내정간섭조차 '한일 충돌'이라는 표현으로 면죄부를 줬다.

<조선일보>는 "'평창올림픽 성공'이 최우선이고 대한민국이 그 주인공이다"라는 사설까지 썼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국과 일본을 주인공으로 삼는 보도를 계속하고 있다. 물론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미국이 무조건 옳다'는 의식이 보수언론과 보수정당의 누뇌를 지배해 왔고, 이게 쉽게 고쳐지는 병이 아니라는 사실도 안다.

문제는 제나라 명줄이 위태로운 지경에서도 성조기를 흔든다는 점이다. <포린폴리시>에 '지금이 북한을 폭격할 때'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리고, 트럼프가 의원 면전에서 '전쟁이 나도 여기(미국)가 아니라 거기(한국)서 나는 것이고, 수천 명의 사람이 죽어도 여기가 아니라 거기서 죽는 것'이라고 말하는 판이다.

평창: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겠다는 것


▲ 한국의 보수세력과 보수언론은 미국과 일본의 관점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각을 가지고 있다. ⓒ 조선일보


▲ '지금이 북폭의 적기'라는 놀라운 주장을 담은 <포린폴리시>의 칼럼. 많은 미국 정치인과 이른바 '전문가'들에게 한국의 안전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한국의 운명을 한국인이 결정해야 하는 까닭이다. ⓒ 포린폴리시

미국이 절대선이 아니라, 한국의 '안전'이 절대선이다. 한국 정부는 마땅히 자국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결정을 내려야 하고, 미국이 동의하지 않으면 설득해야 하고, 설득이 먹히지 않으면 국제사회와 힘을 합해 압박해야 한다. 다행히 중국과 러시아 등 우방이 전쟁에 굳게 반대하고 있고, 때맞춰 찾아온 올림픽의 평화 메시지는 세계사회의 반전 여론을 높일 것이다.

남한과 북한이 함께 웃으며 응원하는 모습을 전세계에 보여준 것 만으로도 평창 올림픽은 위대하다. 평창은 우리가 주인으로서 치른 첫 올림픽이며, 남북 선수단의 동시 입장은 한국의 운명을 한국이 결정하겠다는 의지를 세계에 알린 쾌거다.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결정하는 일, 이미 오래 전부터 했어야 할 일이다. 우리는 충분히 그럴 힘과 자격을 갖추고 있다.


▲ 평창올림픽에 등장한 '촛불' 지난 9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촛불로 완성한 '평화의 비둘기'가 펼쳐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 오마이뉴스 기사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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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짐: 2018년 2월 17일, 토 3:2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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