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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Samsung's bribery case 020718
정형식 부장판사가 모른 체한 '이재용의 부정 청탁' 증거들
뇌물죄는 간접 증거로 판단… 재판부 "안종범 수첩-김영한 일지, 증거 아냐"



▲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구속중이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되고 있다. 이 부회장은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다. ⓒ 이희훈

(서울=오마이뉴스) 배지현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5일, 국정농단의 '피해자'로 수의를 벗었다. 1심에서 국정농단에 가담한 뇌물공여자였던 이 부회장은 항소심에 와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강요로 뇌물을 건넨 피해자가 됐다. 항소심 재판부가 1심에서 인정됐던 핵심 증거들을 외면한 덕분이었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에게 433억 원의 뇌물을 건네거나 약속했다는 혐의(뇌물공여), 회삿돈으로 뇌물을 건넨 혐의(횡령), 최씨에게 해외로 뇌물을 몰래 반출한 혐의(재산국외도피), 승마지원에 관한 말 세탁 혐의(범죄수익은닉), 국회 청문회에서 뇌물공여를 부인한 혐의(국회 위증) 등 총 다섯 가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는 이중 승마지원과 국회 위증죄만을 일부 유죄로 인정했으며 그마저도 혐의를 축소했다. 1심에서 뇌물로 인정됐던 89억 원은 항소심에서 36억 원으로 줄어들었고, 뇌물공여 금액이 줄어들면서 횡령액도 함께 줄었다. 또,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구형 기준이 됐던 형량이 가장 높은 재산국외도피 혐의도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승마지원의 경우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만을 전제로 하는 '단순뇌물죄'이고,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와 미르-K스포츠재단은 '제3자 뇌물죄'이기 때문에 부정한 청탁을 전제로 한다.

1심에선 경영권 승계를 이 부회장이 필요한 개별 현안 11개를 포괄하는 부정한 청탁으로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증거가 없다고 했다. 정형식 부장판사는 "이 부회장이 뇌물을 공여한 대가로 어떤 특혜를 요구했다거나 실제로 취득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이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안종범 업무수첩·김영한 업무일지 모두 무시


▲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구속중이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되고 있다. 이 부회장은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다. ⓒ 이희훈

과연 이 부회장의 '부정 청탁' 증거는 없었을까. 뇌물죄는 CCTV(폐쇄회로) 같은 직접적인 증거가 거의 없는 데다 뇌물을 주고받은 당사자들이 대부분 혐의를 부인하기 때문에 보통 간접증거로 대가관계를 판단한다.

국정농단 사건에서 가장 확실한 간접 증거는 '안종범 수첩'이었다.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작성한 '안종범 업무수첩'은 박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 발언, 이 부회장과의 독대 내용 등을 받아 적은 수첩이다. 국정농단 사건을 맡고 있는 다른 재판부들은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을 인정해 수첩 내용을 토대로 유무죄를 판단했다.

2015년 7월 25일,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안가 독대 당일. 안종범 수첩에는 '1.제일기획 스포츠담당 김재열 사장(하단엔 황성수) 메달리스트 빙상협회 후원 필요'라고 기재돼 있다. 1심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영재센터를 유죄로 봤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모든 내용을 날려버렸다.

김영한 업무일지도 마찬가지였다.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2014년 6월 20일 자 업무일지에는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문제 - monitoring(모니터링)'이라고 적혀 있다. 1심 재판부는 비슷한 시기에 우병우 전 민정비서관의 지시로 같은 내용의 보고서가 작성됐고, 그 보고서는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됐다고 볼 가능성이 높다는 점 등을 들어 경영권 승계를 인정한 바 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가 안종범 수첩과 김영한 업무일지 모두를 증거로 보지 않으면서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이 주고받은 경영권 승계를 포함한 현안들은 무너졌고, 결국 부정한 청탁은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의 논리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아무런 조건 없이 박 전 대통령의 겁박만으로 몇 차례에 걸쳐 뇌물을 건넨 셈이다.

항소심에 새로 제출된 증거도 안종범 수첩과 결합되지 못하면서 힘을 잃었다. 박상진의 '오케이' 문자다.

2016년 1월 11일,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가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에게 "사장님 그랑프리 급 세금 포함 170만 유로 허가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문자를 보냈고, 박 전 사장은 "오케이"라고 답했다. 다음 날인 12일, 안종범 수첩을 보면 '1.승마협회+마사회 1)->이재용 부회장 인사'라고 기재돼있다. 이날 안 전 수석과 이 부회장은 299초 동안 전화 통화를 했다. 특검은 이를 박 전 대통령이 안 전 수석을 통해 이 부회장에게 건넨 감사인사라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는 정황은 이 부회장이 국정농단에 의한 '피해자'였다는 항소심 판단과 연결되지 않는다.

대법원, 증거능력 다시 판단할까


▲ 5일 오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항소심이 끝난 직후 반올림 등 시민단체는 고등법원 앞에서 "삼성앞에 굴복한 사법부를 규탄한다"는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 박정훈

재판부가 증거능력이 없다는 손쉬운 이유로 모른 체한 증거들은 많이 남아있다. 부정한 청탁을 강화해주는 '0차 독대'조차 재판부는 이 부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는 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과 안 전 수석의 "2014년 하반기에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가 있다"는 진술도 믿지 않았다. 안 전 수석이 0차 독대 전날인 2014년 9월 11일, 김건훈 전 보좌관으로부터 급하게 받아본 말씀자료 등도 안 전 수석이 직접 "독대에서 쓰는 것과 비슷했다"는 취지로 인정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도 마찬가지였다. 삼성 합병은 당시 합병비율 불공정 등이 문제가 됐으나 국민연금 전문위가 아닌 공단 내부 투자위원회로 회부돼 2015년 7월 17일 찬성 의결이 났다.

삼성이 유리한 판단을 해달라고 접근했던 박창균 당시 국민연금관리공단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 위원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삼성 합병 1심 공판에 증인으로 나와 "전문위로 회부됐다면 삼성 합병이 반대로 결정됐을 것"이라며 "경영권 승계가 워낙 중요한 삼성 입장에선 투자위가 전문위보다는 상대적으로 쉽게 보였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삼성 합병 과정을 무리하게 진행한 혐의로 문형표 전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기금 운용본부장은 지난해 11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당시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판사 이재영)는 이 과정에 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또, 합병 결과로 "이 부회장 등 삼성 대주주에겐 재산상 이익을, 국민연금에는 거액의 손해를 끼쳤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재판부는 달랐다. 관계자 증언과 다른 재판부의 판결을 모두 무시하며 형평성을 깼다. 재판부의 논리라면 문 전 장관과 홍 전 본부장은 왜 삼성 합병을 불법적으로 추진한 걸까.

특검과 이 부회장 측은 모두 대법원에 상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법원은 법률심이기 때문에 사실관계나 형량을 판단하지 않지만, 증거능력 등을 법리적으로 다시 검토할 수 있다.

김남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부회장은 "대법원이 안종범 수첩과 김영한 업무일지 등 핵심 증거에 관한 증거 능력을 인정해준다면 부정한 청탁과 사실관계를 달리 볼 가능성이 있다"며 "법리적 쟁점에 대한 판결 결과에 따라 파기환송이 된다면 이 부회장의 양형을 다시 다루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8년 2월 12일, 월 12:5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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