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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The prophet, Mun Ik Whan3 020718
윤동주, 그 영원한 젊음 앞에 선 문익환
[문익환 목사 가택 박물관 프로젝트 ③] 문익환과 윤동주의 우정


사단법인 '통일의 집'은 <문익환 평전>을 쓴 김형수 작가와 함께 문익환 목사가 오랫동안 사셨던 '통일의 집'을 박물관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카카오 스토리펀딩과 더불어 <오마이뉴스>에도 글을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 명동학교 졸업사진명동학교 제17회 졸업사진 기념촬영(첫째줄 왼쪽 첫번째 문익환 목사, 둘째 줄 오른쪽 첫번째 윤동주) ⓒ 사단법인 통일의 집

(서울=오마이뉴스) 통일의 집

북간도 명동촌 어린이들

문익환과 윤동주가 친구였다고 말하면 흔히 뜻밖이라는 표정들을 한다. 정색해서 부언해도 제법 큰 학교를 함께 다닌, 두세 발짝 떨어진 동창쯤으로 여기기 일쑤이다. 한 사람은 일제강점기의 청년이요, 한 사람은 1980년대의 재야인사이니 그렇게 안다 해도 어쩔 수 없긴 하다. 하지만 둘의 관계가 '성만 다른 혈육'이라고 해도 될 만큼 내밀한 것은 사실이었다. 어쩌면 태어나기 전부터 더불어 살도록 예정된 사람들처럼 말이다.

1925년 서울에서 출간된 작고 낡은 시집 한 권. 문익환은 김동환의 <국경의 밤>을 용정과 평양을 전전하던 학창시절에도 소지했고, 만주에서 김천(경북)까지 걸어서 월남할 때도 버리지 않았으며, 전쟁통에도 분실하지 않았다. 그 책을 왜 그토록 챙겼는지 자신도 한때는 망각했다가 동창 김정우의 말을 듣고서야 까닭을 알았다. 명동학교의 졸업 선물이었다.

명동학교는 북간도에 세워진 한국인 최초의 근대식 민족교육기관이였다. 저 옛 조선이 기울어갈 때 동학농민혁명이 실패하자 함경도의 네 가문이 두만강을 건너가 마을을 이루고 학교를 세웠다. 바로 그 마을에서 윤동주는 1917년에, 문익환은 1918년에 태어났다. 그리고 윤동주의 시에 나오는 그 유명한 '십자가'가 있는 '교회'에서 문익환의 아버지가 목사로, 윤동주의 할아버지가 장로 일을 본 것이다.


▲ 1910년 명동교회 교인들. 1910년대 명동교회 교인들, 윤동주의 시에 나오는 종탑이 보인다. ⓒ 사단법인 통일의 집

영화 <동주>의 교실에는 실제보다 학생수가 좀 많다

영화 <동주>의 교실에는 학생 수가 조금 많은 편이다. 남학생 열둘에 여학생 두 명. 교실은 언제나 아름다운 경쟁과 우정으로 넘쳤다. 시골 아이들 열네 명이 단연 두각을 드러낸 분야는 문학. 윤동주는 4학년 때 <어린이>라는 잡지를 구독하고, 송몽규는 <아이생활>을 보았다. 그 나이에 북간도에서 서울 잡지를 정기 구독한 것은 매우 희귀한 예에 속할 것이다. 5학년 때는 그들이 직접 어린이 잡지를 만들려고 선생님을 찾기도 한다. 담임 한준명이 실컷 칭찬해주고 <새 명동>이라는 이름을 짓자 문집 발간이 시작되었다.

6학년 때는 학생회를 자치제로 개편하고 신문사를 두기로 했는데, 문익환이 초대 사장이었다. 그 벽신문의 주요 필자였던 윤동주와 송몽규와 김정우 등은 모두 이른 나이에 등단한다. 문익환은 53세가 되어서야 등단하는데, 내 생각에 이는 윤동주를 위한 추모의 마음과 관계가 깊다.


▲ 윤동주 문익환 교회 생활용정 중앙교회 찬양대원 기념사진(세번째 줄 오른쪽 두번째부터 윤동주, 문익환) ⓒ 사단법인 통일의 집

윤동주의 모자 사건

문익환과 윤동주는 은진중학교에 다니다가 평양 숭실학교로 전학을 간다. 평양은 한국에서 가장 유서 깊은 도시. 대동강을 낀, 관서지방의 행정, 경제, 문화, 교통의 중심지 평양은 문익환의 아버지와 삼촌이 유학을 간 곳이기도 하다. 더구나 19세기 후반부터 서양의 선교사들이 방문하기 시작하여 1893년에 이미 북장로교회의 선교지부가 설치되었으니 사람들은 그곳을 '한국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렀다.

윤동주가 숭실학교 편입하였을 때 한 학기 먼저 편입한 문익환은 매우 세련된 도시 학생이 되어 있었다. 어릴 때부터 문익환은 유난히 얼굴이 희고 선이 가늘어 귀공자 같은 풍모였다. 그 모습을 보고 윤동주가 모자에 탐을 냈다.

당시 학생들은 교모를 기성품으로 사서 쓰는 게 아니라 맞춰야 했다. 양복점에서 옷을 맞추듯이 모자도 머리둘레를 재어서 재단한 것인데, 윤동주의 모자는 문익환의 모자처럼 반듯하지 않고 살짝 구겨진 곳이 펴지지 않았다. 그래서 윤동주가 조르자 문익환은 양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 물욕이 전혀 없는 친구의 청인지라 문익환이 이렇게 말한다.

"좋아. 내 모자가 정 쓰고 싶다면 바꿔주겠어, 대신 호떡 사!"


▲ 모자사건 호떡에 모자를 바꾸고 찍은 사진(뒷줄 가운데 문익환, 오른쪽 윤동주, 맨 앞 이영헌) ⓒ 사단법인 통일의 집

그때 가까운 친구들끼리 호떡집에 가서 실컷 얻어먹은 다음 모자를 둘이 바꿔 쓰고 기념촬영을 하게 되었다. 문익환, 윤동주, 이영헌, 또 한 사람은 누군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 그 사진 이야기를 들려준 분은 문익환, 윤동주보다 먼저 숭실학교에 편입한 은진학교 선배 이영헌 선생이었다.

역시 이영헌 선생의 구술인데, 숭실학교에서 그 분은 학교 문예부장을 맡고 있었다. 명동학교를 떠난 후에도 그곳 출신들은 다들 문학을 숭상했다. 문익환도 시를 좋아하고, 동경했다. 그래서 문예부장 이영헌이 윤동주에게 교지 편집장을 맡기자, 윤동주가 친구를 챙기려고 문익환에게 달려가 시를 청탁한다. 그것이 아마 문익환의 첫 작품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설레는 마음으로 제출했는데 윤동주가 웃음을 못 참고 터뜨리고 만다. "야, 이게 시야?" 퇴짜를 놓은 것이다.

동주를
떠나보낸
문익환



▲ 윤동주의 장례식. 윤동주의 집에서 윤동주의 장례식을 집례한 문재린 목사. ⓒ 사단법인 통일의 집

숭실학교 시절 문익환과 윤동주는 신사참배 거부로 통맹퇴학 당하고, 광명중학교로 편입한다. 21세의 문익환은 동경신학교로 유학길에 오르고, 연희전문학교에서 수학한 윤동주도 4년 늦게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그러나 대동아전쟁이 그들의 목을 죄어오고 있었다. 당장 군대에 징집되어야 하는 상황, 문익환은 신학교 교장과 담판을 벌인 끝에 전학 허가증을 얻자 동생 문동환과 함께 배에 올랐다. 이후 윤동주는 송몽규와 함께 투옥되고, 비극적인 죽음에 이른다.


▲ 윤동주 시집문익환 목사가 소장하고 있던 1948년 발행된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사단법인 통일의 집

북간도 용정 윤동주 집에서 평생 함께 교회를 섬겼던 문익환의 아버지 문재린 목사가 윤동주의 장례를 집례한다. 송몽규의 죽음도 예견되고 있어서 다들 제정신이 아니었다. 문익환은 만주에서 목회 중에 그 소식을 접하고, 일본을 빠져나올 때 함께 나오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땅을 치고 통탄한다.

세상 사람들에게 윤동주의 억울한 죽음과 시의 감동을 전하는데 문익환의 아버지 문재린(목격자), 어머니 김신묵(구술자), 그리고 그 때문에 괴로운 나날을 살게 되는 문익환의 몸부림이 결정적이었음을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을 보면 유추할 수 있다.

늦은 나이에 시인이 된 문익환이 먼저 간 친구를 그리며 쓴 시 한편을 소개한다.

동주야

- 문익환

너는 스물아홉에 영원이 되고
나는 어느새 일흔 고개에 올라섰구나
너는 분명 나보다 여섯달 먼저 났지만
나한텐 아직도 새파란 젊은이다
너의 영원한 젊음 앞에서
이렇게 구질구질 늙어 가는 게 억울하지 않는냐고
그냥 오기로 억울하긴 뭐가 억울해 할 수야 있다만
네가 나와 같이 늙어가지 않는다는 게
여간만 다행이 아니구나
너마저 늙어간다면 이 땅의 꽃잎들
누굴 쳐다보며 젊음을 불사르겠니
김상진 박래전만이 아니다
너의 '서시'를 뇌까리며
민족의 제단에 몸을 바치는 젊은이들은
후꾸오까 형무소
너를 통째로 집어삼킨 어둠
네 살 속에서 흐느끼며 빠져나간 꿈들
온몸 짓뭉개지던 노래들
화장터의 연기로 사라져 버린 줄 알았던 너의 피묻은 가락들
이제 하나 둘 젊은 시인들의 안테나에 잡히고 있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8년 2월 11일, 일 11:1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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