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Weekly of Florida   로그인  등록하기

 현재시간: (EST) 2018년 2월 24일, 토 8:25 am
[칼럼/기고/에세이] 기고
 
YS Critical Biography 61
연금 풀리자 민주산악회 조직
[김영삼 평전 61] 민주산악회 조직과 목숨을 건 단식투쟁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 (전 대한매일신보 주필) = 아무리 혹독한 동장군도 따스한 봄날의 햇볕을 이기지 못한다. 자연현상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전두환 세력의 폭압통치에서도 저항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광주항쟁의 엄청난 희생의 핏값이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5 18당시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쥐고 있던 존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이 80년 5월 22일 광주시위 진압작전에 투입할 예하 4개대대 한국군의 병력차출과, 미군의 항공모함과 공중조기정보 통제기를 배치한 사실 등이 알려지면서 이제까지의 미국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

1982년 3월 18일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발생하고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천주교 탄압 항의성명(4 12), 기독교청년단체들의 부활절 시위(4 16), 고려대생 <반파쇼민주투쟁 시국선언> 배포 후 시위 (5 14), 서울지역 대학생연합 학생의 날 기념식 후 군부독재 타도ㆍ광주학살 책임자 처벌 등 요구 시위(11 3) 등이 잇따라 전개되었다. 5공 초기 폭압속에서 일어난 저항운동의 몇가지 사례이다.

김영삼에 대한 가택연금이 1년여 만인 1981년 5월 1일자로 해제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집 주위를 감시 미행하는 두 대의 차량과 사복경찰이 골목을 지키고 있었다.

김영삼은 연금이 풀린 후 측근 김동영의 권고로 산행을 시작했다. 첫 산행은 6월 9일(목), 김동영ㆍ최형우ㆍ문부식ㆍ김덕룡 등과 삼각산을 올랐다. 1년여 만에 맑은 공기를 마시며 동지들과 시국을 토론하고 목청껏 큰 소리를 질렀다. 이후 등산은 김영삼의 일상이 되고 민주산악회의 조직으로 이어졌다.

5공시대 반정부 정치인들의 최초 조직의 씨앗이 된 민주산악회는 이날 산행에서 내려와 정식 발족되었다. 회장 이민우, 부회장 김동영ㆍ최형우, 운영위원 김덕룡ㆍ문부식ㆍ오성룡ㆍ최영호와 회장단이 포함되고, 김영삼은 고문으로 추대되었다. 정치활동에 발이 묶인 정치인들이라 달리 할 일이 없어 산행이 잦았다. 이같은 사실이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면서 참가자가 늘었다.


▲ 광화문 로얄빌딩 민주산악회 현판식에 참가한 Ys와 박찬종, 김수한 전 의원 ⓒ자료사진

매주 목요일 산행일이 정해지고 뿔뿔이 흩어졌던 동지들이 다시 모여 들었다. 숫자가 많아지면서 정부당국의 감시와 방해가 심해지고 지방의 경우 불법연행과 연금이 다반사로 이루어졌다. 탄압에 못 이겨 중도에 참여를 포기한 사람도 있었지만 날이 갈수록 그 수는 증가되었다.

정치 산악인 들은 깊은 산속이나 계곡에서 마음껏 전두환 정권의 만행을 규탄하고 정보를 나누며 중요한 사건들은 유인물로 만들어 일반 시민들에게 나눠주었다. 1982년 4월 <뉴욕타임스> 헨리 스토크 도쿄 지국장이 산행에 동반하면서 취재했다. 구기동에서 출발, 대남문을 거쳐 능선을 따라 우이동 계곡으로 내려오는 7시간 코스였다.

스토크는 산행 중 김영삼을 밀착하면서 정치활동이 규제된 한국 정치인들의 실태 그리고 민주산악회에 대해 취재했다.

김씨는 전두환 정권이 1979년 채택하여 김씨 자신과 더불어 500여 명의 공적 활동을 금지한 정치규제 조치를 언급하면서, 500명이 넘는 사람이 권력자의 분별 없는 생각으로 공민권을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 정상일 수 없지 않는가? 라고 반문하며, 이 나라 민주주의를 회복하려 한다는 전두환 씨의 말이 진심이라면, 그는 당연히 이러한 규제의 해제와 정치범의 석방을 우선 해야 한다 고 말했다. (주석 1)


이 신문의 기사는 이어진다.

찬란한 봄 날씨에 8백만 인구의 도시가 보이는 정상에서 김씨는 모자를 벗고, 이제 기도의 시간을 갖자 고 말했다. 교회 장로의 한 사람인 김씨가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한 기도로 이 집단 -- 그가 나중에 첨언한 바에 따르면, 한두 명의 중앙정보부 요원을 침투시켰을지도 모르는 -- 을 이끄는 동안 그의 추종자들은 모자를 벗고 머리 숙여 묵도했다.

우리는 산에 올 때마다 기도하고 있다. 등산은 우리가 매주 목요일에 갖는 일상적인 일 중의 하나다. 우리는 이 모임을 민주산악회라고 명명했다 고 그는 설명했다. (주석 2)


기사는 다음과 같은 내용도 실었다.

좌정하고 있는 각자에게 새로 작사된 회가(會歌)가 적혀 있는 종이가 분배되었다. 사람들은 종이에 씌어진 짧은 4행의 문구를 익혔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일어서서 원을 그리며 늘어섰다. 두 사람의 리더가 공터 가운데로 나갔다. 그들은 함께 새로운 회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김씨의 한 보좌역의 번역에 따르면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인생의 목숨은 초로와 같고 / 전통의 신민당 양양하도다 / 이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 아아, 이슬같이 죽겠노라. (주석 3)

2차연금, 아들 결혼식장 못가

전두환 정권은 <뉴욕타임스> 보도를 이유로 김영삼을 다시 집에 연금시켰다. 1982년 5월 31일, 해제 1년여 만이다. 야생마를 울 안에 가둔다고 쉽게 길들여지지 않듯이 어떤 탄압에도 김영삼은 5공체제에 순응하지 않았다. 그는 초기 자유당 의원 시절을 빼놓고는 줄곧 야당에서 싸워온 야당투사다. 그의 육신을 가둔다고 야성마져 순치시킬 순 없었다.

2차 연금이 계속되던 82년 10월 7일 큰 아들 은철의 결혼식날이 잡혔다. 결혼식 전날 관할 경찰서장이 찾아와 결혼식 참석을 권했다. 1시간 동안 외출을 허용한다는 것, 김영삼이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국민에게 알리려는 정부의 비열한 꼼수였다.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싶지 않은 아버지가 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 그러나 여기에는 간교한 술책이 숨어 있었다. 철저한 언론 통제로 당시 국민 대다수는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있을 때였다. 그러니 나의 연금 사실은 더욱 알 수 없었다.

이런 판에 아들 결혼식에 참석한 내 얼굴이 비칠 때 전두환 정권의 연금사실 은폐를 방조하는 꼴이 되고 만다. 나 스스로 나는 지금 아들 결혼식에도 참석하는 등 자유롭다고 선전하고 다니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참으로 파렴치하고 속이 들여다보이는 전두환의 공작 이었다. (주석 4)


김영삼은 결혼식 전날 큰아들 부부를 불러 사정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 쌓인, 어버이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아픔이 못내 가시지 않았다.

독립운동가들의 가족처럼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나선 인사들의 가족 역시 비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연금시기 김영삼의 가족도 다르지 않았다. 김영삼의 술회이다.

연금은 나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에게 크나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대학에 갓 들어갔던 사춘기의 막내딸 혜숙이도 우울한 시절을 보내야 했다. 연금 중에는 내 집안에 정보형사가 상주했을 뿐 아니라, 큰길에서 내 집에 이르는 길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에는 전투경찰들이 24시간 내 집을 감시하며 늘어서 있었다.

이제 막 소녀티를 벗은 그 아이에게 전투경찰들이 보내는 시선은 상당한 스트레스가 되었다. 혜숙에게는 학교와 집만 왕복하는 것이 생활의 전부였다. 친구를 집으로 초대할 수도 없고, 친구의 집에 가도 환영을 못 받는 딸의 심정, 아내에게 쏟아 낸 딸아이의 아픔을 전해 들은 아버지의 심정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유난히 영리하고 똑똑했던 그 아이는 나중에 재미교포 신랑에게 시집을 갔다.

독재정권이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해 온 폐해는 너무나 크다. 나뿐 아니라 나의 동지들, 그리고 민주화투쟁을 해 온 모든 사람들이 독재자의 탄압으로 인해 본인은 물론 가족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까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해야 했다. 그리고 그 상처는 개개인의 진로와 생활, 심지어는 성격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내가 생명을 다하는 날까지 불의의 독재정권과 맞서 싸우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석 5)


주석
1> <뉴욕타임스>, 1982년 4월 16일치.
2> 앞과 같음.
3> 앞과 같음.
4> 김영삼, 앞의 책, 227쪽.
5> 김영삼, 앞의 책, 229쪽.
 
 

올려짐: 2018년 2월 03일, 토 10:06 pm
평가: 0.00/5.00 [0]

답글이 없습니다.

   

   
   
www.okja.org
www.sharingkorea.net
www.ksm.or.kr
www.koramtour.net
http://www.geo10.com/krus/fl/g/0401/954/orientalmart.htm
www.smiledentalfl.com
www.kinghealthcenter.com
www.koreahouseorlando.com
www.thefountainsalonandspa.com
www.orlandotour.com
www.miju24.com/market_info/12701
www.ohmynews.com
www.saegilchurch.net
www.newsm.com
www.newsnjoy.or.kr
www.protest2002.org
www.biblekorea.org
dabia.net/xe

get FireFox
www.korean.go.kr/front/foreignSpell/foreignSpellList.do?mn_id=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