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자들의 신학
[호산나 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하늘밭교회)

나아만 이야기

열왕기하 5장에는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치유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이야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먼저 주인공인 나아만과 엘리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왕들이 등장합니다. 나아만의 하인들과 엘리사의 생도들도 등장합니다. 그 가운데 게하시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아만 장군의 아내와 그의 여종인 계집아이가 등장합니다.

물론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병을 고치실 수 있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사람들 가운데서 주인공을 찾는다면 엘리사와 나아만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에 가장 합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물론 매우 주관적이지만 저는 이 기사를 읽을 때마다 이스라엘에서 잡혀온 계집아이가 바로 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흡족하게 한 사람은 엘리사도 나아만도 아니고 전쟁터에서 포로로 잡혀와 나아만의 부인의 몸종 역할을 하고 있는 비천한 계집아이일 것입니다.

기사에서 그녀가 하나님의 선지자인 엘리사가 있다는 것을 말했다는 것 외에 그녀가 한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한 일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일은 자칫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에 있는 아람 땽에서 여호와를 들먹이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믿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 하나님의 종인 엘리사를 통해 문둥병이 나을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녀의 처지에서 그렇게 믿음을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그녀는 얼마든지 하나님을 원망할 수도 있었고, 자신을 보호해주시지 않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기에 불치병인 자신의 주인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신 하나님을 떠올렸고 그분의 선자지인 엘리사를 천거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통해 이방인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새로운 신학적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남은자들의 신학

나아만의 기사를 예로 들었지만 사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은 성경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종의 기본 테마입니다. 별 볼일 없는 사람들, 아무런 힘도 없는 사람들, 이름조차 밝혀지지 않은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서는 중요하다는 것을 성경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는 성경의 그러한 강조를 '남은 자들의 신학'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습니다. 그 출처는 엘리야의 기사입니다. 엘리야가 아무도 없고 자신만 남았다고 말했을 때 하나님게서는 당신이 남겨 놓은 사람들 칠천 명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강조는 예수님에 이르러 더욱 두드러집니다.

마가복음의 경우는 복음서 전체가 남은 자들의 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예수님의 열두 제자보다 이름 없는 무명의 제자들이 더 큰 믿음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일 거기에 초점을 맞추고 다시 한 번 복음서를 읽는다면 지금 제가 하고 있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확정지어 정리해주는 기사가 바로 과부의 헌금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예수님께서 성전 앞에 있는 연보궤에 사람들이 헌금하는 모습을 지켜보셨습니다. 당시 성전 뜰에는 용도별로 일곱 개의 연보궤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곳에 헌금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특히 부자들이 헌금하는 모습을 지켜보셨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 헌금을 많이 하는 사람은 당당했을 것입니다. 특히 당시 연보로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단위의 동전인 은전을 연보궤에 넣는 사람은 무척 자랑스러웠을 것입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연보궤에 은전이 떨어지는 소리는 주변 사람들이 모두 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지켜보시던 예수님께서 한 과부의 연보에 주목하셨습니다. 그 과부의 헌금은 겨우 두 렙돈이었습니다. 그러나 빵 하나도 제대로 살 수 없는 그 작은 연보를 보시고 예수님은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눅 21: 3)

예수님의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는 바로 이 말씀이 '남은자들의 신학'의 정수라는 생각을 합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의 정확한 해석이 바로 예수님의 이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빵 한 조각도 사기 어려운 금액의 헌금을 가장 많이 했다고 선언하실 수 있는 주님은 모든 믿는 자들의 희망이며 공평한 하나님 나라의 실상을 보여주는 '몸소 하나님 나라'이신 그분의 진면목입니다.

자기 의와 자기 부족

우리는 여기서 자랑스럽게 은화를 집어넣는 부자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결코 자신들의 헌금이 적다고 생각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남들보다 더 많이 헌금한다는 사실 때문에 자기에게 남아 있는 돈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며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율법이 가지는 한계입니다. 저는 율법을 하찮게 여기지 않습니다. 율법은 위대합니다. 그것은 오늘날 유대교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유대교가 기독교보다 못하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의 교리를 들먹이며 그들의 모든 행위를 하찮은 인간의 의로 폄하해 버립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의가 그들보다 나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5:20)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를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의해 전가된 의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이 말씀 앞에 그 근거가 분명하게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19) 예수님은 여기서 전가된 의를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분의 초점은 분명히 행위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고,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게 됩니다. (요 6:54-56 참조) 다시 말해 거듭난 사람은 분명히 그리고 반드시 행위의 변화가 일어나고 그때 행해지는 일들은 자기 의가 아니라 열매로서 기능한다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리입니다. 미가서의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6:8)는 말씀처럼 그 행위는 언제나 자기 부족을 깨달아 알게 하는 것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바벨탑과 헤롯의 누룩

남은 자들의 신학의 관점으로 보면 인간의 관점으로 대단한 모든 일들은 결국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우리가 피해야 할 '헤롯의 누룩'입니다. 그리고 그 뿌리는 바벨탑입니다. 바벨에서 탑을 쌓던 인간들은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창 11:4)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결코 인간의 능력으로 쌓아 하늘에 닿게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결과는 언제나 인간들의 이름을 내는 것과 자신들의 존속을 위한 인간의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대형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은 결코 이상한 일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내기를 원합니다. 그런 교회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교회가 한국교회의 근간이며 모범이라는 말을 서슴치 않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다 하셨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어도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인간들의 능력과 업적을 자랑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존속을 위해 세습을 하거나 마음에 드는 후계자들을 세워 그 영광을 이어가려하지만 그것은 결국 자신들의 교회가 북한의 체제와 다르지 않음을 드러낼 뿐입니다.

여기저기 문제가 된 교회들에서 그런 교회들을 바로잡고자 하는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꼭 알았으면 하는 것은 아무리 그들이 원하는 대로 잘못한 목사를 몰아내더라도 그 교회가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영화 '쿼바디스'의 제작자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그리스로 가서 철학이 되었고, 로마로 가서 제도가 되었다. 유럽으로 옮겨가서 문화가 되었고, 미국으로 가서는 기업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에 왔을 때 교회는 대기업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길은 인간의 속내를 정확하게 파악하십니다. 세상에서의 성공과 인간중심 예배의 허무한 모습을 그분은 정확하게 보십니다. 제작자와 같은 인간들도 볼 수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간과하실 리가 없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신 그분은 사랑의 속성상 모든 것을 허용하고 계실 뿐입니다.

인간의 능력과 그리스도의 능력

하나님 나라는 세상과 반대인 나라입니다. 세상에서는 능력이 있는 자가 인정을 받고 성공하고 많은 일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 반대로 인간의 능력이 모두 끝난 자리에서 역사하는 그리스도의 능력에 의해 하나님 나라의 일이 이루어집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출신이 좋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오히려 더 하나님의 일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것이 다 사라지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또 그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몸에 머물러 있던, 그가 '육체의 가시' 혹은 '사단의 사자'라고 불렀던 겉으로 확연하게 드러나는 병으로 인해 고생했습니다. 그것은 복음 전파의 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병 낫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충분히 기도한 후에 그는 자신에게 있는 그 부끄러운 모습이 자신을 위한 가장 큰 은혜임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 12:9)

그는 자신이 그렇게 무능력해지는 것이 그리스도의 능력이 시작되는 시발점이 된다는 것을 깊이 깨닫습니다. 그래서 그런 치명적인 부끄러움을 도리어 크게 기뻐할 뿐만 아니라 다른 약한 것들까지도 자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어떤 약점이라도 발견하여 그것을 물고 늘어지는 세상의 현실과 정 반대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신 포도'나 '약자의 변'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이 끝난 그 자리에서 시작되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실제로 보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남은 자들을 통해 면면히 흐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대'를 높이 쌓으려는 인간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허물고 자신의 능력으로 무언가를 해내려는 의지 자체를 포기한 사람을 통해 역사하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과부의 두 렙돈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가장 많이 하셨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바로 그렇게 아무런 능력이 없게 되었는데도 주님을 신뢰하는 무능력한 인간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무능력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세상으로부터 너무도 철저하게 배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약한 데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뢰할 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되기 때문에 부족한 인간이 가장 강할 수 있다는 것을, 감히 온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완벽해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건설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고 있는 '남은 자들의 신학'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고후 12:10)

사도 바울의 이 고백을 자신의 삶으로 실천할 수 있는 용기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남은 자들이란 결코 자신의 행위와 업적, 그리고 능력과 성공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약한 자가 되고, 무력(無力)한 자가 됨으로써 되는 것입니다. 이 이해하기 어렵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진리를 깨닫고, 받아들이고, 그 길을 걷는 자들이 되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 그 일을 위해 헌신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