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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YS Critical Biography 57
전두환 일당, 다시 민주주의 짓밟아
[김영삼 평전 57] '서울의 봄' 공간에서



▲ mbc뉴스 화면 갈무리 ⓒmbc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전 대한매일신보 주필) = 1980년 5월 17일 저녁 저녁 9시경 중앙청 국무회의실에 비상국무회의 소집 연락을 받은 국무위원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갑자기 국무회의가 소집되었는지, 무슨 안건을 심의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회의에 참석했다.

이날 저녁 중앙청 일대에는 전에 없이 삼엄한 경비가 펼쳐졌고, 국무회의실 복도 양편에 착검한 소총을 든 무장군인들이 도열하여 국무위원들의 신분을 일일이 확인하는 등 살벌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국무위원들은 외부와 자유롭게 전화통화를 할 수 조차 없었다.

신현확 총리는 9시 42분 제42회 임시국무회의 개회를 선언하고 국방부에서 의안 360호로 제출한 비상계엄 확대선포안을 의안으로 상정하여 의결해 줄 것을 요청했다. 김옥길 문교장관이 의안에 대한 설명을 요청했지만 찬반토론은 전혀 없었다. 신총리가 이 의안의 가결과 국무회의의 산회를 선포했을 때 시간은 9시 50분이었다. 찬반토론도 없이 단 8분 만에 비상계엄 확대선포안이 의결된 것이다. 실로 최규하 정부란 신군부의 꼭두각시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토론 한마디 없이, 헌법기구인 국회를 쓸어버리고 민주화를 짓밟는, 그리하여 5ㆍ17쿠데타를 밑받침하는 계엄포고령이 국무회의에서 어이없게도 처리된 것이다. 신군부의 싹쓸이 는 이렇게 무도하게 시작되었다.

전두환을 우두머리로 하는 신군부는 19년 전 박정희가 했던 수법에 따라 쿠데타를 일으키고 서울의 봄 을 짓밟았다. 박정희 정권의 품안에서 권력의 단맛을 즐겨온 하나회 출신들이 주동이었다. 12ㆍ12의 하극상으로 군권을 장악한 이들은 전두환이 중앙정보부장(서리)까지 꿰차면서 막대한 자금과 정보력으로 언론공작을 꾀하면서 정권을 찬탈했다.

신군부는 5월 초순부터 이른바 충정작전 의 구실로 충정부대의 서울 인근 투입을 5월 17일 이전에 이미 완료했다. 특히 광주에는 공수부대의 가장 핵심부대를 은밀히 투입했다.

신군부는 치밀하게 짜여진 작전계획에 따라 5월 18일 0시를 기해 지역계엄을 전국계엄으로 확대 선포하고 계엄포고령 제10호를 발표, △모든 정치활동의 중지 및 옥내외 집회ㆍ시위의 금지 △ 언론ㆍ출판ㆍ보도 및 방송의 사전검열 △전국 각 대학에 휴교령을 내렸다.

이어서 18일 저녁에는 김대중, 김상현, 김종필, 이후락 등 26명의 정치인들을 학원, 노사분규, 선동과, 권력형 부정축재 등의 혐의로 합동수사 본부에 연행하고, 20일에는 김영삼을 가택연금시키는 등 정치적 일대탄압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김영삼은 서울의 봄 정국을 지나치게 낙관하다가 쿠데타를 당했다. 전두환이 보안사령관의 위치에서 금지된 중앙정보부장을 굳이 서리 라는 꼬리표를 달고 감행 할 때도 김대중과는 달리 시국을 낙관하였고, 신민당은 마치 집권당이나 된 듯이 독주하면서, 김대중과 재야를 경계했다.

김영삼은 4월 15일 강원도 설악산 관광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전 장군의 중정부장서리 겸임이 민주화 일정에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느냐 는 질문에 상관없다. 민주화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 이라고 잘라 말했다.

글라이스틴 주한 미대사는 전두환의 중정부장 서리 임명에 대해 워싱턴에 하룻밤 사이 그는 12ㆍ12 이후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던지고 (신문의) 1면 뉴스로 등장하면서 자신을 서부개척시대의 영웅과 같은 고결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고 보고했다. 또한 글라이스틴은 전두환의 중앙정보부장 서리 임명이 뒷날 1980년대 역사를 뒤틀리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말했다.

전두환은 5월 18일부터 전국계엄 확대와 김대중 구속 등에 대한 저항에 나선 광주시민들을 무참히 학살하면서 5월 20일 이미 소집공고된 임시국회를 무산시키기 위해 수도군단 30사단 101연대 병력으로 국회의사당을 봉쇄하고, 헌법에 규정된 국회통보 절차조차도 밟지 않은 채 사실상 국회를 해산시켜버린 국헌문란을 자행했다.

실질적인 물리력을 장악한 신군부는 정치사회 일반에 대한 모든 권력을 찬탈하고자 국가보위비상대책위를 설치하고 전두환이 상임위원장에 취임했다. 국보위는 초법적인 권력기관으로 등장하여 정권을 탈취하고 5공 정권 수립에 받침대 노릇을 했다. 이로써 유신보다 더 포악한 5공시대가 시작되었다. 김영삼의 고난과 치열한 저항의 계절이 되었다.
 
 

올려짐: 2018년 1월 05일, 금 3:2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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