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Weekly of Florida   로그인  등록하기

 현재시간: (EST) 2018년 4월 25일, 수 12:03 pm
[칼럼/기고/에세이] 기고
 
YS Critical Biography 56
역류하는 시국에 '역사심판' 경고
[김영삼 평전 56] '서울의 봄' 공간에서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전 대한매일신보 주필) = 김영삼은 역류하고 있는 정국을 우려하면서 성명과 강연을 통해 정치일정의 단축을 거듭 촉구하는 한편, 과도정부가 국민의 여망에 반하여 엉뚱한 야심을 갖는다면, 국민적 거부와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 이라고 경고하고,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사명 이라고 역설했다.

김영삼은 4월 29일 충남 유성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물결을 역류시킬 수 없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고 밝혔다. 이어 5월 3일, 국회에서 신현확 총리와 만나 정부는 학생ㆍ노동자들의 주장을 힘으로 밀어붙일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고 강조하고, 계속되는 노사.학원문제 등 사회적 불안정은 정부가 구체적인 정치일정을 밝히지 않고 계엄해제, 정치범 석방 및 복권조치 등을 취하지 않기 때문 이라 지적했다. 또 연내로 정권을 이양한다는 정치일정을 제시, 국민들로 하여금 민주화에 대한 희망과 신념을 갖도록 해야 한다 고 촉구했다.

5월 15일의 서울역 앞의 대규모 시위와 사북사태까지 겹쳐 위기설은 더욱 증폭되어 갔다. 이런 상황에서 최규하는 5월 11일부터 15일까지 사우디와 쿠웨이트를 공식방문하기 위해 10일 출국했다. 그가 중동을 방문하고 있는 동안 대규모 학생시위가 도심지까지 진출하여 안개정국 은 위기정국 으로 치닫게 되었다. 서울의 봄 공간에서 김영삼과 김대중은 어느 때 보다도 대권에 유리하다는 판단 아래 협력을 통한 민주화보다 견제와 갈등관계를 보였다.

유신체제 아래에서 이처럼 상호협력하며 야당의 선명투쟁을 이끌었던 김영삼 -- 김대중의 관계는 유신체제의 붕괴와 함께 다시 세간의 관심을 모으게 된다. 박정희가 죽고 80년 서울의 봄 이 무르익으면서 양김은 각기 대권고지를 향한 결전의 채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80년의 불투명한 안개정국에서 아직 한법개정의 방향이나 내용이 결정되지 않았는 데도 이미 대통령 출마를 경쟁적으로 시사하기 시작하였다.

김영삼은 당권을 쥔 유리한 상황에서 예비역 장성, 재야인사, 학생 등을 영입하고 사고당부의 처리를 통해 공개적인 세력확장에 박차를 가하였다. 한편 김대중도 신민당 의원들에 대한 개별적인 설득 작업과 함께 재야민주인사 등을 중심으로 민주헌정동지회를 구성하여 전국적인 조직확대 작업에 나섰다.

이 때 김영삼은 신민당을 구심으로 재야에 대한 흡수통합을 주장한 반면, 김대중은 재야의 전면적 영입을 통한 민주진영의 단합을 주장함으로써 당내세력판도에 대한 입장차이를 드러냈다. 양측의 이견이 좁혀지지 못한 상태에서 4월 7일 김대중이 신민당 입당포기를 선언함으로써 서울의 봄에서의 범민주통합은 결렬되고 만다.

이 때 김대중은 "우리는 신민당이 재야인사들에 대한 적극적인 영입의사가 없는 것으로 판단, 입당교섭을 포기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하며 오늘을 기해 재야인사와 본인의 신민당 입당문제를 더 이상 거론치 않기로 했다 고 밝혔다. (주석 1)

5월 10일을 전후하여 김영삼에게 신군부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는 제보가 여러 경로를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사태가 급박했다. 군부가 강경수단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에 나는 연일 대책마련에 골몰했다. 정국이 더욱 불투명해지고 있음에도, 5월 6일 최규하는 10일 중동 방문을 위해 출국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나는 5월 9일 오전 마포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확신을 가지고 슬기롭게 전진하자>는 제목의 회견문을 발표했다. 나는 우리의 당면목표는 평화적 정권교체를 위한 선거를 있게 하는 일 이라고 강조하고, 이런 시기에 또 다시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태가 온다면, 이 투쟁을 우리 신민당이 맡고 나설 것을 선언한다 고 경고했다. (주석 2)


5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위기설 이 나돌자 학생운동 지도부는 시위를 중단하고 학교로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16일에는 이화여대에서 제1회 전국 대학총학생회장단회의를 개최, 17일부터 정상수업을 받기로 결정했다. 군부에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한 조처였다.

김영삼은 5월 16일 동교동으로 김대중을 방문하고, 당시의 상황을 비상시국으로 판단하고 3개항의 공동발표를 했다. ① 비상계엄의 즉시해제, ② 정부가 주도하는 개헌포기, ③ 정치일정의 연내완결을 위한 일정 발표요구가 그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두 사람은 공동보조를 취한다고 선언하고, 학생들에 대해서도 질서와 평화를 지키면서 최대한 자제력을 발휘해 달라고 호소했다.
<주석>
1> 유영선, <숙명의 라이벌 김영삼·김대중의 30년>, <말>, 1992년 6월호.
2> 김영삼, 앞의 책, 193~194쪽.
 
 

올려짐: 2017년 12월 21일, 목 10:55 pm
평가: 0.00/5.00 [0]

답글이 없습니다.

   

   
   
www.sharingkorea.net
www.ksm.or.kr
www.koramtour.net
http://www.geo10.com/krus/fl/g/0401/954/orientalmart.htm
www.smiledentalfl.com
www.koreahouseorlando.com
www.thefountainsalonandspa.com
www.orlandotour.com
www.miju24.com/market_info/12701
www.ohmynews.com
www.saegilchurch.net
www.newsm.com
www.newsnjoy.or.kr
www.protest2002.org
www.biblekorea.org
dabia.net/xe
www.okja.org

get FireFox
www.korean.go.kr/front/foreignSpell/foreignSpellList.do?mn_id=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