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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시간: (EST) 2018년 7월 19일, 목 5:28 pm
[종교/문화] 종교
 
Professor Kim's sermon 121317
“서로 발을 씻어줌으로 사랑의 종노릇하라”
[읽는설교] 본문: 요한복음서 13:31~35


(서울) 김회권 교수(숭실대학교)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요한복음 13장 최후의 만찬 본문입니다. 요한복음 13장은 수난주간 중 목요일 밤의 정황을 기록한 본문으로 믿어집니다. 누가복음과 다른 공관복음서에서는 목요일 밤에 성만찬 제정이 이뤄진 것으로 봅니다. 누가복음과 마가복음, 그리고 마태복음은 목요일 세족식을 하면서 최후의 만찬을 한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요한복음 본문에는 성만찬 제정상황은 생략되고 오로지 한 가지 사건만 보여지고 있습니다. 주와 스승이신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장면입니다. 이 사건은 두 가지 면에서 너무 부자연스럽고 돌발적이었으며 그만큼 그 돌발적 사건이 주는 메시지의 함의도 묵직하고 큽니다.

첫째, 유대인들의 관습은 식사 전에 발을 씻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아무도 스스로 또는 서로 발을 씻어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식사 도중에 자신이 아버지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것을 아시고 잡수시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셔서 수건을 몸에 두르십니다. 식사 도중에 발을 씻었다는 것은 부자연스럽고 돌발적인 것이었습니다. 둘째, 주와 스승의 발을 제자들이 씻어주던 관습과는 달리 주와 스승되신 분이 제자들의 발을 씻었습니다. 당시 몸에 수건을 두르고 주인의 발을 씻어주는 장면은 노예적 섬김에 가장 대표적인 표상입니다. 고대 로마 제국이나 지중해 일대의 모든 문명사회에서 주인이나 주인 손님의 발을 씻어 주는 것은 당연히 노예의 몫이었습니다.

발씻어주는 대접을 받지 못한 예수님의 섭섭한 감정이 언급된 본문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7:36-50입니다. 예수님께선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초청받아 발씻어주는 섬김도 받지 못하는 푸대접을 받았습니다. 발 씻을 물도 주지 않고 그냥 하대하는 이 바리새인 집에 가서 예수님께서 식사를 하시다가 기분이 너무 안 좋으셔서 이 말씀을 하십니다. 누가복음 7장 44절입니다.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이 말씀 안하셨으면 더 좋았을 테지만 예수님은 푸대접을 받은 기분이 어떠한지 직설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시몬은 예수님께 공경과 환대의 입맞춤도 하지 않았습니다(눅 7:45). 예수님은 굉장히 모욕을 당하신 겁니다. 이런 모욕감을 느끼시면서 식사를 오랫동안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서로 발을 씻겨 주며 서로 종노릇하는 것들을 아마도 자주 반복적으로 가르치셨던 것 같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으로 종노릇하라고 가르치심으로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동아리가 가부장적 종교권력의 위계질서체로 경직화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셨을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2~45절에서 보면 이 말씀의 맥락이 좀 더 분명해집니다. 요한과 야고보는 주의 영광의 나라가 임할 때 자신들을 각각 주님의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그 길에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가 이 두 아들들의 소원을 예수님께 아뢴 것입니다(막 10:35-40). 나머지 열 제자들은 분기탱천했고 두 제자에 대한 비난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일순간에 제자공동체가 권력욕으로 부서졌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 모아 그 유명한 둘로스와 디아코노스 담화를 베푸십니다. 예수님은 42절부터 45절까지 자신의 하나님나라 복음의 진수를 선포합니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인자는 하나님의 대리통치자를 가리킵니다. 아담이 하나님에게 최초의 인자입니다(시 8). 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은 하나님에게는 인자입니다. 예언자들도 인자입니다(시 80:17 주의 오른 편에 있는 자, 곧 인자). 에스겔도 인자입니다. 종말에 하나님의 백성을 모아 하나님통치를 대신할 우편 대리통치자도 인자입니다(단 7:13). 신약에서 모두 80여 차례 언급되는 인자는 예수님이 자신의 부왕(副王)사역, 즉 하나님백성을 모아 통치하는 대리통치사역을 언급하실 때 자신을 스스로 지칭하는 말입니다. ‘종말에 와서 하나님백성을 모아 하나님의 통치를 대리하는 왕적 인물’이 인자입니다. 인자는 권력 통치적 지배군주가 아니라 섬김을 통해 자신의 통치를 수행하십니다. 이 인자의 통치행태는 예수님 당시의 통치자들의 통치행태와는 정반대입니다. 42절의 헬라어 구문을 보면 이 점이 훨씬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카이 프로스칼레사메노스 아우투스 호 예수스 레게이 아우토이스, 오이다테 호티 호이 도쿤데스 아르케인 톤 에스톤 카타큐리유우씬(katakurieu-ousin=카타큐리유오[overlord=과도하게 주인노릇하다]의 3인칭 복수 능동태 현재직설) 아우톤 카이 호이 메갈로이 아오톤 카텍쑤씨아주씬(katexousiazousin[카타엑쑤아(rule over forcefully)=권력위협과 통제로 통치하다] 아우톤.

호이 도쿤테스 아르케인은 직역하면 “다스리는 것처럼 보이는 자들”(those who seem to reign)이라는 뜻입니다. 여러 열방들(에스톤)을 다스리는 것처럼 보이는 자들은 로마제국의 총독이나 황제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혹은 헤롯 분봉왕들을 가리킵니다. 호이 메갈로이는 ‘큰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로 로마제국의 총독이나 고급관리, 혹은 헤롯 왕국의 강압적 지배자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의 한결같은 특징은 과도하게 주노릇하며 억압과 무력으로 눌러 순종을 짜냅니다. 복종을 짜내기 위해 무력과 권력에 의존하는 행위가 카타큐리유오(임의로 주관하다)와 카타엑쑤아조(권세를 부리다)입니다. 이런 자들에 비하여 예수님은 자신의 통치방법을 말합니다. 진짜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섬기는 자가 되고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10:43-44입니다. “누구는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섬기는 자는 디아코노스(διάκονος)이며 종은 둘로스(δοῦλος)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오신 목적을 섬김을 받으려 함(디아코네데나이)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디아코네싸이)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막 10:45).

여기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말이 “섬기러 왔다”는 “종이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디아코노스’ 섬기는 자와 둘로마이 즉 노예 노릇하는 ‘둘로스’ 가 되려고 왔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 중에 으뜸이 되려고 하면 반드시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라 하는 디아코노스가 되면서 둘로스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로스가 그 당시 어떤 일을 했는가를 생각하면 이 가르침의 충격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습니다. 고대 로마제국은 노예들의 무상공여 노동봉사에 의해 지탱되는 사회였습니다.

둘로스라는 말은 로마제국의 모든 삶에 토대를 이루는 무상 노동을 끊임없이 제공하는 노동력 그 자체입니다. 노예들에게는 인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노예는 옷을 입지 않았고 좋은 신발도 신지 않았습니다. 노예는 자신의 비무장 상태를 늘 드러내기 위해서 간결한 옷차림으로 민첩하게 움직였습니다. 특히 남자 노예는 웃옷을 100% 입지 못했습니다. ‘내가 칼과 어떤 흉기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절대로 무해하고 안전한 사람입니다.’ 이런 메시지를 주인에게 항상 주기 위해 노예는 상반신을 어느 정도 드러낸 채 다녔습니다. 그래서 노예는 로마의 모든 자유민 신분인 남자가 입는 튜닉과 토가와 같은 멋진 옷은 입지 못하고 옷을 벗고 허리에 수건을 차고 몸을 구푸리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로마제국을 지탱시키는 그 수고로운 노동력의 무한공여자들인 노예노동의 본질을 꿰뚫어보신 예수님이 스스로 둘로스가 되겠다고 선언할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서로에게 대해 섬기는 둘로스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로마제국을 궁극적으로 이기는 방법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로마제국은 왕이 되려는 자들, 지배자가 되려고 하는 자들, 권력을 남용하려는 자들의 나라입니다. 권력 남용과 압제적인 권력 행사욕망 그 자체의 궁극에 로마제국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로마제국으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는 길이 무력항쟁으로 로마의 예루살렘 및 갈릴리주둔군을 격퇴하는 것이 아니라 로마제국의 근본토대를 허물어뜨리는 사랑과 자기희생적 섬김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셈입니다.

내가 세우려고 하는 교회의 궁극적 본질은 둘로스가 되려고 하는 자원적인 결단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이스라엘을 로마제국으로부터 해방하는 길이다. 서로에게 종이 되고 섬기려는 자가 되려고 하는 이 결단, 이 행동이 로마제국을 분쇄하는 길이다. 로마제국의 권력을 이스라엘의 일부의 엘리트들에게 배분하여 권력을 이전하는 것이 진정한 구원이 아니라 로마적 삶의 방식을 완전히 끝장내고 이스라엘적 삶의 방식, 즉 서로에게 사랑의 노예가 되어 주고 섬기는 자가 되어주는 것이 로마제국으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하는 길이다. 로마제국이 살아가는 그 방식을 더 이상 채택하지 않고 사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이다. 내가 원하는 해방은 바로 이것이다. 탐욕적인 권력행사와 압제적인 타자지배적이고 약탈적인 삶의 방식들을 전부 다 제쳐놓고 이웃에게 그리고 자신의 공동체지체들과 서로에게 종이 되고 섬기는 자가 되려는 이 삶이야말로 이스라엘의 본질이며 하나님나라 백성의 근원적인 자기해방력이다.

실로 우리는 기독교 복음이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바로 전달되었는지 끊임없이 의심을 해 보아야 합니다. 기독교복음은 예수님 자신에게도 가르치기가 어려운 난제였습니다. 기독교복음은 노예들과 섬기는 자들에게 세워지는 하나님나라 복음입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하나님나라 복음이 제자들에게 아직 납득되거나 각인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삼년간이나 하나님나라복음을 가르쳤지만 아직도 제자들은 서로 섬겨 주지 않고 서로 돌보아 주지 않고 서로 사랑하지 않는 이런 무자비한 냉혹함으로 경직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도 서로에게 발을 씻어주지 않는 이 상태가 예수님에게 깊은 좌절감과 실패감을 안겨주었을 것입니다. 삼년간 교육을 했는데도 이 상태라는 말은 예수님도 몹시 이 기독교의 근본을 당신의 제자들에게 바로 전파할 때도 고생이 심했다는 겁니다.

이처럼 기독교 진리는 로마 제국적 약탈사회, 권력 공학적 조작사회에서 사는 자들에게는 이해되기 힘들고 낯선 복음이었습니다. 기독교의 하나님나라복음은 우리 자연인들에게 습득되기 매우 어려운 것이고 정상적인 이성을 가진 사람에게는 매우 낯선 것이며 용납이 안되는 그 무엇이기 때문에 예수님도 제자교육에 어려움을 겪으신 것입니다. 사실은 그래서 프랑스 개신교사상가인 쟈크 엘룰 같은 사람도 “기독교는 우리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 그 무엇이다.”라고 말했습니다(뒤틀려진 기독교). 그런데 이렇게 받아들이기 힘든 기독교를 많은 사람들이 믿고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는 매우 의심스러운 현상이라고 봐야 합니다. 인구의 4분지 1이 이런 기독교복음의 소화하기 힘든 점을 영접하고 기독교인이 되었다면 그 사회는 로마제국 사회를 극복하는 이상적인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로마제국적인 사회 방식을 궁극적으로 초극하고 부정하고 이겨내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섬겨주고 둘로스가 되어 주어 발을 씻어주려는 이 급진적인 자기부인의 삶이야말로 로마제국을 토대부터 붕괴시키는 힘, 로마제국에게 승리하는 삶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하는 저 자신마저도 얼마나 기독교의 하나님나라복음을 얼마나 철저하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왜냐면 기독교복음은 인간의 이성과 정신적 사유의 힘으로 파헤치기 어려운 심오가 있습니다. 하나님나라 복음은 깊고 깊습니다. 벌거숭이 이성과 합리적 교양으로 살아가는 자들에게 도달하기 어려운 깊이가 있습니다. 확실히 기독교복음은 충분히 깊고 깊은데 어느 정도까지 깊은지를 제가 아직 감지를 못하겠습니다. 왜냐면 제 자신이 기독교복음의 심오를 체득하고 기독교 하나님나라복음을 온 삶으로 영접하며 살아내는 좋은 기독교인 사이에 많이 있어 보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좋은 기독교인, 즉 하나님나라복음 비밀을 체득하여 깊은 경지까지 이른 좋은 기독교인 사이에 살았다면 우리도 좋은 기독교를 식사하듯이 섭취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기독교신앙의 신비와 심오를 신학서적을 가지고 깨달아 알려고 하니까 굉장히 어렵습니다. 저 자신의 근원적인 좌절감입니다. 성경공부와 신학강의로 가르치는 기독교보다 식탁에서 밥먹듯이 가르쳐지는 기독교가 그립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안타깝게도 예수님의 하나님나라복음, 둘로스와 디아코노스의 하나님나라 복음에 저항하는 주류이데올로기에 포박당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자되라고 부추기는 세상에 살면서 디아코노스가 되고 둘로스가 되기란 어렵습니다.

‘부자(富者)’라는 말은 라틴어 ‘렉스’(rex)에서 나왔죠. 라틴어 렉스는 왕을 의미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붙여졌던 라틴어 죄패 INRI에 있는 철자 R이 Rex를 의미합니다. 라틴어로 INRI는 'Iesus Nazarenum Rex Iudaeorum'의 축약입니다. 이 Rex가 고대영어 richs로 발전되었다가 현대 영어 Rich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부자’는 뭡니까? 왕, 즉 지배하려는 사람입니다. 왕 대접을 원하는 모든 사람이 부자니까 국가적으로 부자가 많아지면 그만큼 둘로스와 디아코노스가 많아져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왕처럼 살려고 마음먹고 중산층이 되고 부자가 되려고 하면 엄청난 무상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예가 그만큼 필요합니다. 노예를 요청하는 사람이 바로 부자이기 때문입니다. 노예적인 무상공로 노동력을 한없이 징발하겠다고 하는 것이 왕입니다. 이것이 부자입니다. 그런데 정확하게 지금 부자하고 옛날의 왕들이 똑같은 대접을 원하기 때문에 부자중심사회는 무상 노동력은 끊임없이 징발하려고 합니다. 저임금, 사회적 모멸감을 견디면서도 저항하지 않는 순하고 순한 노예들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자들이 부자들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왕 대접을 받으려고 하는 자들이 이룬 사회가 로마제국입니다. 이러한 로마 제국적 삶의 방식은 우리 인간성의 심연에 사는 사탄적 권력욕을 활성화시킵니다. 사탄이 우리인간을 비인간화 시키는 방법 중 하나가 타인을 지배하고 복속시키려는 근원적인 권력 향수를 촉발시키는 거죠. ‘내가 네게 천하만국의 영광을 줄 테니까 내게 절하라.’ 이 음성은 예수님을 로마제국 황제 같은 군사적 정복군주로 만들려고 시험한 악마의 유혹속삭임입니다. 천하만국의 영광은 악마에게 절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인간존엄 파괴권력이죠. 악마에게 절하면 천하만국의 영광을 얻습니다. 그 악마에게 부여받은 천하만국 다스리는 권세는 통치자 자신의 인간성을 즉각 파괴하는 것은 물론이요 인류 혐오적 문명 대량 파괴 권력으로 귀결됩니다. 악마가 주는 천하만국 통치 권력은 우리 각자의 인간성을 와해시킨 후에 얻는 권력입니다. 그것은 천하만국을 외적으로 군사적으로 지배 복종시키는 권력이요 타자를 약탈하는 포식하는 자기 파괴적 권력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종류의 천하만국통치 권력을 단순히 거부하면서 십자가를 지고 인간의 마음을 영구적으로 다스리는 인자통치의 길을 결단하여 선택합니다. ‘인자는 천하만국의 권세와 영광을 누리러 오지 않고 십자가를 지고 종의 도를 실천하러 왔다.’ 인자는 섬기는 것, 즉 십자가를 지고 죽음에 이르는 그 순간이 만민의 마음을 감화시켜 다스리는 순간임을 아신 것입니다. 인자의 영광은 십자가 지심입니다. 예수님의 하나님복음은 인자의 하나님나라복음입니다. 그것의 근본선언은 이렇습니다.

나는 진짜 로마제국을 기초부터 무너뜨리러 왔다. 나는 단지 지중해 한 모퉁이에서 일어난 그런 로마제국만이 아니라 모든 나라 모든 족속 안에 있는 로마제국을 무너뜨리러 왔다. 역사 안에서는 항상 로마제국은 갈릴리인을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나님나라에서는 갈릴리인이 로마제국의 그 뿌리 깊은 제왕적 지배 권력을 극복하고 해체하고 부셔버린다.

역사는 갈릴리인과 로마인의 대결입니다. 역사는 십자가를 져서 모든 약탈적 권력 의지를 스스로 분해하여 둘로스가 되려고 하는 갈릴리인 예수의 길과 남을 지배하고 약탈하고 포식자처럼 살려고하는 로마인들의 길이 각축하는 현장입니다. 로마제국적인 삶은 타자착취적인 삶입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가장 근원적인 좌절감을 안겨주는 사람이 갈릴리사람 나사렛 예수입니다. 그의 인자의 길, 십자가의 굴욕감수, 자기 하강적 섬김의 삶이 로마제국의 토대를 붕괴시켜 버립니다. 지금 세계갈등의 두 축은 미중갈등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 아닙니다. 미국 안에 있는 갈릴리인들과 미국 안에 있는 로마인들의 갈등입니다. 중국안의 로마인들과 중국안의 갈릴리인들의 갈등일 뿐 입니다. 인류역사의 모든 대결은 갈릴리사람과 로마사람의 대결입니다. 역사 안에서 항상 전개되는 모든 대결은 갈릴리 사람과 로마사람의 대결입니다.

그런데 역사 안에서는 항상 로마사람이 갈릴리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안에서는 갈릴리 사람이 십자가에 못이 박힌 채 로마제국의 심장부터 해체하고 이깁니다. 어떤 무력에 호소하지 않고 진리의 권능으로 하나님나라는 로마제국을 이겨냅니다.

그런데 “섬긴다”는 말은 뭡니까? 김장 한번 담으러 오는 것이 아닙니다. 타인에게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존재라는 말입니다. 섬긴다는 말은 뭐죠? 덜 위협적인 사람에게 이웃의 접근을 어렵지 않게 만드는 사람의 행동거지입니다. 너무 똑똑하면 매우 위협적입니다. 모든 것을 많이 알면 매우 위협적입니다. 돈이 너무 많으면 매우 위협적입니다. 그리고 아파트가 3채면 매우 위협적입니다. 너무 잘생겨도 매우 위협적입니다. 여러분 모르는데 너무 똑똑한 사람이 얼마나 덜 똑똑한 사람을 위협하는지 여러분 알아야 합니다. 때로는 그 똑똑함 자체가 악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이 너무 걱정하지 맙시다. 길이 있습니다. 정말 똑똑한 사람은 하루 종일 금식기도하면서 바보처럼 보이도록 기도해야 됩니다. 아니 바보가 되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정말 돈이 많은 사람은 내가 정말 가난한 사람처럼 그렇게 일순간 변화되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돈 많은 사람이 심령 가난한 사람이 되어야만 섬김이 가능합니다. 여러분 섬김은 몸을 구푸리는 것이고 상대방의 발 냄새를 맡고도 당혹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 저 사람 이런 냄새를 가졌네. 고약한데’라고 하면서 가십을 하고 SNS에 올리는 것은 섬김의 정반대입니다. 섬김은 허물을 품고 필요하면 은닉해주는 것입니다. 사회적 공익을 해치는 허물과 죄가 아니라면 견디고 참아주는 것이 섬김입니다. 타인의 허물을 보고 죄를 목격할 때 고해성사를 받은 신부처럼 “아! 이런 아픔이 있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듣지 못한 사람처럼 행동해 주는 것이 섬김입니다. 타인의 죄를 기억하지 않고 용서하는 것도 큰 섬김입니다.

여러분께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와 스승이 되어 몸을 구푸려 여러분의 둘로스가 되었습니다(요 13:15).” 여러분, 기독교는 내가 여러분에게 보여준 그대로 본받는 사람들의 동아리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다른 어떤 것도 기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약탈자적 포식자적 로마제국적인 압제로 타인의 행복을 가로채서 나를 부요케 하는 사람들의 삶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친히 부요하신 자로서 자기를 가난케 함으로 종이 되신 그분을 본받는 것입니다.

마무리합니다. 우리 모두가 몸 구푸려 우리 형제자매들, 즉 내가 자주 보는 사람들, 내가 얼굴을 맞대는 사람들의 냄새나는 자아를 씻어주고 끌어안아 주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이런 곳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런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두세 사람이 모여도 나는 그 사람들과 함께 있다’(마 18:20). 두세 사람이 모인 교회라도 예수님이 계시면 충만한 거죠. 두세 사람으로 충만한 교회, 서로 발을 씻어주고 서로 둘로스가 되어주는 교회가 바랍니다. (서울 새길교회 주일설교)
 
 

올려짐: 2017년 12월 15일, 금 11:0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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