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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YS Critical Biography 53
박정희 암살로 총재직 회복
[김영삼 평전 53] 서울의 봄 공간에서



▲김재규 중정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한 궁정동 현장. 박정희 대통령은 김재규 중정부장의 총탄에 숨을 거뒀지만, 유신정권은 1970년대 내내 각종 위기상황을 겪어야 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한 장면. ⓒMBC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전 대한매일신보 주필) = 절대권력자의 비명횡사는 자칫 국가적 위기로 연결되는 경우가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제도에 따라 정권교체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과 대비된다. 10ㆍ26사태는 개인 박정희의 죽음과는 별개로 국가적 위기상황이었다.

1979년 10월 27일 새벽 헌법(당시) 제48조의 규정에 의해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최규하는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별 볼일 없는 국무총리에 불과했다. 여기서 굳이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 의 국무총리를 별 볼일 없는 것으로 표현한 것은 유신체제의 3권을 장악하고 있는 박대통령 밑에서 국무총리는 그야말로 대독총리 의전총리 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규하는 정치적 야심이나 정치세력이 전혀 없는 직업 외교관 출신이라는 것이 장점이 되어 1975년 국무총리에 기용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느닷없이 만인지상 이 되었으니 어떤 면에서는 행운 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최규하는 79년 10월 26일 밤 10시 20분경 김계원 대통령 비서실장으로부터 급한 전화연락을 받고 10시 45분경 청와대에 도착했다. 김계원은 수석비서관들을 옆방으로 내보낸 뒤 최규하와 내무장관 구자춘에게 대통령의 유고 사실을 보고했다. 그리고 밤 11시 50분 경 국방부 회의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한 최규하는 대통령의 서거를 직접 확인하지 않고는 계엄령을 선포할 수 없다 는 일부 국무위원들의 주장에 따라 27일 새벽 1시 20분경 국군서울 지구병원에 도착하여 박정희의 유고 사실을 확인한 후 다시 국방부로 돌아와 27일 새벽 4시를 기해 계엄령을 선포하고 대통령권한대행에 취임하여 대권 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의 취임으로 우리나라는 4ㆍ19 후 20년 만에 또 한 차례 과도정부 를 맞게 된 것이다.

김영삼은 박정희의 장례식 직후인 11월 5일 기자회견을 통해 유신헌법은 이제 의미가 없어졌다 고 주장하고, 향후 정치일정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제3공화국 헌법으로 돌아가는 것을 원칙으로 3개월 안에 개헌하고, 그후 3개월 안에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거토록 하자 고 제안했다. 김영삼은 권력의 공백기가 길어질수록 사회혼란이 가중될 것을 걱정했고, 그럴 경우 예측 못할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4ㆍ19 직후 허정 과도내각은 신속하게 민주당으로 정권을 이양한 바 있었음을 상기시켰다.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부응하고 안정을 되찾기 위해서는 과도기가 길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최규하는 엉뚱한 야심을 보였다. 11월 10일 <시국특별담화>를 통해 현행 (유신)헌법에 의해 규정된 시일 내에 대통령선거를 실시하되, 선출된 새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의 임기를 채우지 아니하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한 빠른 시간내에 헌법을 개정하고, 그 헌법에 따라 선거를 실시해야 한다 고 밝혔다. 국민의 뜻이나 김영삼의 생각과는 딴 판이었다.

김영삼은 11월 17일 공화당 총재 김종필과 만난 데 이어 22일에는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최규하와 장시간 시국문제를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최규하에게 시간을 끌면 자꾸 혼란을 일으키는 사태가 온다. 당신의 임무는 3개월 내에 선거를 하는 것 이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이에 최규하는 제게 무슨 욕심이 있겠습니까. 저는 그저 권투 경기장에서 심판이나 하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최규하는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 제3차 회의에서 단독 입후보하여 재적대의원 2560명 중 11명이 불참한 2549명 가운데 2465표(무효 84표)를 얻어 제10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최대통령의 임기는 당선 즉시 개시되어 박정희 대통령의 잔여임기인 1984년 12월 26일까지 재임할 수 있으나 11월 10일 특별담화를 발표, 잔여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 가능한 빠른 기간 내에 헌법을 개정하고 11대 대통령 및 국회의원 총선을 실시, 정권을 이양하겠다고 밝혔다.

최규하는 12월 8일 긴급조치 9호를 해제하고 구속된 민주인사 68명을 석방한 데 이어 김대중의 가택연금을 해제했다. 12월 12일에는 김영삼의 신민당 총재직무 가처분신청이 취하되었다. 정운갑의 총재직무대행 등록이 말소되고 총재단의 법적 지위가 회복되었다. 이로써 박정희가 묶었던 올가미가 그의 죽음과 더불어 풀린 것이다.

박정희의 암살과 함께 이른바 ‘서울의 봄’이 찾아왔다. 한겨울에도 가끔 개나리가 피어나듯이 엄동설한에 느닷없이 봄이 온 셈이다.

박정희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10월 27일부터 이듬해 신군부에 의한 5ㆍ17쿠데타에 이르기까지 정확히 203일 동안은 조금 빨리 시작되기는 했지만 계절의 봄과 더불어 ‘정치의 봄’이었다. 10ㆍ26사태로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정국의 추이에 불안을 느끼면서도 절대독재자의 사망으로 다수의 국민은 해방감을 느끼게 되었고, 해동과 더불어 날이 갈수록 민주화의 갈망은 확대되었다.

서울의 봄 은 체코의 프라하의 봄 에서 연유되어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민주회복을 기대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그러나 프라하의 봄이 소련군의 탱크에 짓밟혔듯이 서울의 봄은 머잖아 신군부의 장갑차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올려짐: 2017년 12월 01일, 금 5:1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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