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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YS Critical Biography 51
제명항의, 부산·마산시민항쟁
[김영삼 평전 51] 국회제명과 부마항쟁


▲ 부마항쟁에 대해 박정희 정부는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사태가 심상치 않게 확대되자 강경책을 쓰고 나섰다. 정부는 18일 새벽 0시를 기해 부산 일원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정태원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전 대한매일신보 주필) = 박정희 정권이 김영삼을 제명한 지 12일 만인 10월 16일 그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에서 대학생들이 궐기했다.

부산대생 4천여 명은 교내시위에 이어 저녁 8시경 시청 앞에 집결, 시민들과 합세하여 유신철폐, 독재타도, 김영삼탄압 중지 등을 외치며 경찰과 대치했다. 이날 학생들은 교내에서 <민주투쟁선언문>을 살포하면서 반유신ㆍ반독재 구국투쟁의 대열에 참여할 것을 다짐했다.

부산대생들은 서울의 각 대학과 전남대학ㆍ경북대학 등에서 유신체제를 반대하는 시위가 연일 산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데도 침묵만 지켜오다가, 김영삼 총재에 대한 의원직 제명안이 변칙적으로 통과된 직후부터 심상찮은 움직임을 보이며 시위에 나서기 시작했다.

대규모의 시위대로 변한 학생들은 교내시위에 이어 시내에 진출하여 경찰과 대치하다가 폭력투쟁으로 돌입, 파출소·신문사에 투석하고 경찰차에 방화하는 등 이튿날 새벽 2시까지 유신 이후 가장 격렬한 시위를 전개했다. 이날 시위로 학생 282명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16일의 학생ㆍ시민시위를 보고받는 구자춘 내무장관은 17일 부산시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앞으로 지각 없는 경솔한 소란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해나가겠다 고 경고했다. 또 같은 날 부산시민회관에서는 부산시장을 비롯한 각 기관장ㆍ새마을운동 지도자 등 2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0월유신 7주년 기념식이 열려 참석자들은 유신으로 총화단결을 더욱 공고히 하자 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러는 동안 부산대를 비롯, 동아대ㆍ고려신학대ㆍ수산대 등 부산시내 각 대학의 학생들은 시청에서 불과 400m 떨어진 국제시장과 부영극장 앞으로 집결하고 있었다. 오후 6시 30분경 남포동에 모여 있던 400여 명의 학생들은 김영삼 제명반대 와 애국가를 부르며 일부는 국제시장 쪽으로, 일부는 충무동 쪽으로 행진했다.

이렇게 하여 시작된 17일의 시위는 고등학생들도 상당수 가담하고 어둠이 깔리자 시민들까지 가세하여 더욱 격렬해졌다. 경찰의 완강한 저지로 부산시청 앞으로의 진출이 불가능해지자 시위대는 소규모로 나뉘어 시내 곳곳에 분산하여 이동하는 전략에 경찰은 저지능력을 사실상 상실하게 되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시위는 더욱 격렬해져 충무파출소, KBS, 서구청, 부산세무소가 파괴되고 MBC의 유리창이 박살났다. 이틀간의 격렬한 시위로 경찰차량 6대가 전소, 12대가 파손되고 21개 파출소가 파괴 방화되었으며, 시민ㆍ학생 1058명이 연행되고 66명이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

경남대생 500여 명은 18일 오후 지금 부산에서는 우리의 학우들이 유신독재에 항거하여 피를 흘리고 있다 , 3ㆍ15의거 정신을 되살리자 면서 시위를 벌이고 이중 일부가 시내에 진출했다. 일부 학생들이 무학초등학교 앞에서 경찰에 연행되자 시민들까지 합세하여 공화당사를 박살내고 양덕파출소를 파괴했다.

시위군중들은 어둠이 짙어갈수록 더욱 수가 늘고 격렬해져 산호동파출소가 불탔으며, 이어 북마산파출소, 오동동파출수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밤 9시 30분경 경찰지원병이 늘어나 시위대들이 점거하고 있던 중심가 남성동파출소를 회복하여 시위군중들과 대치하게 되었다.

마산시민ㆍ학생들의 시위는 19일 저녁에는 수출자유지역의 노동자와 고등학생들까지 합세, 더욱 격렬해졌다. 19일 새벽 3시까지 학생ㆍ시민들의 시위는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부산사태가 마산으로 옮겨붙어 더욱 격렬한 양상으로 치닫자 정부는 20일 정오를 기해 마산지역 작전사령관 명의로 마산시 및 창원출장소 일원에 위수령을 발동했다. 위수령발동과 함께 마산시내에 즉각 군을 진주시켜 시청ㆍ경찰서 등 정부기관에 이어 언론기관, 각 대학교에 대한 경계에 들어갔다. 경찰은 마산ㆍ창원에서 505명을 연행하고 59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했다.

부마민중항쟁은 계엄령과 위수령으로 막을 내렸지만 불씨는 사그라들지 않은 채 16일에는 이화여대, 19일에는 서울대와 전남대, 24일에는 계명대 시위 등 학생시위가 수그러들 줄 모르고 확산되고, 마침내 10ㆍ26사태를 촉발시키는 뇌관이 되었다.

박정희는 부산에서 이틀째 김영삼 제명반대와 유신철폐 시위가 계속되는 시간에 청와대 영빈관에서 유신 7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공화ㆍ유정회 의원들을 초청하여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부산사태로 파티를 일찍 끝내고 청와대 집무실로 돌아온 박정희는 최규하 국무총리에게 부산지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할 것을 지시했다.

긴급 소집된 임시국무회의는 부산에 계엄령을 선포할 것을 의결, 18일 0시를 기해 부산직할시 일원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박정희는 계엄선포와 함께 발표한 담화문에서 부산의 시위군중을 지각없는 일부 학생들과 불순분자들 이라 비난했다.

부산지구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된 박찬긍 육군중장은 포고문을 통해 일체의 집회ㆍ시위를 금지하고, 대학의 휴교를 명령하는 한편 무장군인들을 시내 요소마다 배치했다. 그러나 계엄해제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학생과 시민들은 공수단의 무자비한 진압에도 불구하고 시위를 계속하는 가운데 시위는 마산으로 번져갔다.

부산시민들과 학생들의 유신체제에 대한 항거시위 소식이 마산에 전해지면서 학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부산에서 버스로 불과 1시간 거리에 있는 마산은 생활권이 부산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부산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은 곧바로 알려지게 마련이었다.
 
 

올려짐: 2017년 11월 18일, 토 5:38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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