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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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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높은 양반들에게 물어봐줘, 우릴 왜 죽였냐고"
[연꽃 아래에서 평화를 말하다①] 한베평화재단 구수정 상임이사 인터뷰


(서울=오마이뉴스) 손희원 기자

<연꽃아래>는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젝트로, 가장 낮은 곳에서 진실을 밝히고 평화를 외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기자 말

한국은 1964년부터 1973년까지 베트남 전쟁에 연인원 32만 명을 파병했다. 미군 다음으로 많은 수였다. 대부분 국가는 반전이라는 세계적 흐름 속에서 참전을 거부하거나 구색만 갖추는 소수의 인원을 보냈다.

한국 역사교과서는 가르치고 있지 않지만, 한국군은 전쟁 중 베트남 중부지역에서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 베트남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약 80여 건, 피해자 수는 9000여 명으로 추정된다. 여성, 노인 그리고 어린이가 주된 피해자였다. 학살의 장면은 잔혹했다.

한베평화재단의 구수정 상임이사는 1999년 <한겨레 21>의 르포 기사를 통해 한국 사회에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를 처음으로 공론화하고,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을 이끌어왔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젝트 <연꽃아래> 서포터즈들이 올해 초 무턱대고 활동을 시작할 때도 그에게 자문하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관련 기사: "'한국군 만행' 진실 덮은 연꽃무늬를 아시나요").

토크콘서트 에 구수정 상임이사를 초청하면서, 12일 다시 한번 그를 만났다. 인터뷰는 서울시 성동구에 위치한 한베평화재단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 한베평화재단 구수정 상임이사 ⓒ 연꽃아래

"우리 힘으로 과거를 확인하자" 아주 작은 결의

-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를 알리는 데 앞장서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두 가지 계기가 있었는데, 하나는 일본의 피스보트를 타고 온 한국인 작가들을 만나게 된 것이었어요. 제가 한국군의 베트남 전쟁 개입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을 때, 우연히 '남베트남에서의 남조선군의 죄악, 범죄'라는 자료를 입수하게 됐어요. 한국군이 주둔하던 베트남 중부 푸엔성, 카노아성, 빈딘성, 꽝하이성, 꽝남성 지역에서 있었던 학살들에 대한 종합 보고서였어요.

약 5천여 명의 민간인들이 한국군에 의해서 학살당했다는 사실과 학살의 과정에서 일어났던 잔혹 행위들에 대한 기록이었죠. 그 자료를 처음 접하고 나서 '정말 이런 일이 있었을까?'하고 반신반의했어요.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학살을 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데다가, 내용이 너무나 잔혹해서 굉장히 충격을 받았거든요.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해 볼 엄두가 나지 않아서 자료를 책상 서랍에 그냥 넣어놓고만 있었어요.

그러다가 98년 즈음, '피스보트'라는 일본 시민단체의 현장 활동에 함께하는 한국의 젊은 작가들을 만나게 됐어요. '피스보트'에서는 과거 일본 제국주의의 점령국들을 다니면서 역사를 대면하는 여행을 하는데, 첫 기착지가 베트남 중부의 다낭이었어요. 그곳에서 한국군 민간인 학살 문제를 처음 접하고 충격이 너무 큰 나머지 떠나질 못하고 다낭에 남았대요. 이후 힘들게 호치민까지 찾아온 작가들에게 저는 가지고 있던 자료를 보여줬어요. 그리고 그날 '우리 힘으로 과거를 확인하는 노력을 해보자'고 아주 작은 결의를 하게 됐죠.

또 다른 하나는, 시점 때문이었어요. 그때가 99년인데, 20세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를 21세기로 끌고 가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한국군 학살 현장을 찾아다니는 45일 동안의 여정을 떠났어요. 그 결과물이 99년에 <한겨레21>에 쓴 르포기사였고, 그걸 계기로 한국 사회에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가 공론화됐어요."

- 민간인 학살 피해 마을을 찾아다니는 여정을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은 어땠나요?
"사실 길을 떠나기 전에는 두려웠어요. 우리는 역사 속 피해 경험에 대해서 많이 배우지만, 가해 경험에 대해서는 배워본 적 없잖아요. 그때 저는 가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자를 만나러 갈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고,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일단은 전 재산을 털어서 그분들을 만나러 갈 준비를 했어요. 그 당시만 해도 한국의 인삼차가 베트남에서는 고급 선물이어서, 한국의 경동시장에서 인삼차 한 트럭분을 샀어요. 그리고 큰 봉고차를 빌려서 한국군 주둔지가 있던 베트남 중부로 갔죠.

그런데 전쟁 이후에 남베트남의 체제가 바뀌면서 도시의 이름도 모두 바뀌었거든요. 제가 가진 자료에는 바뀌기 전의 이름들이 적혀 있어서 굉장히 걱정되더라고요. 그때 제가 만난 모든 사람이 이정표가 되어줬어요. 무작정 길을 달려서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차에서 내려서 사람들에게 과거 한국군이 학살을 저지른 곳을 찾고 있다고 말하면, '이쪽으로 가면 어디가 나올 테니 거기 가서 또 사람들에게 물어봐라'라고 했어요. 그렇게 사람들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가다 보니 위령비를 만날 수 있었어요. 그때 '아 학살이 지천이구나'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높은 양반들에게 물어봐 줘, 그때 왜 우리를 죽였냐고"

- 내년이면 학살 50주기가 되는 꽝남성 지역은 어떤 곳인가요?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정말 많은 마을을 다녔지만 그중에서도 꽝남성 하미마을에서 들은 이야기는 더 충격적이고 가슴이 아팠어요. 하미마을 사람들은 학살 이전에 한국군들과 친하게 지냈다고 해요. 그런데 하미학살이 일어난 날 갑자기 한국군들이 돌변했대요. 지금은 돌아가신 팜티호아 할머니가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우리에게 친절했던 따이한이 어떻게 하루 만에 그렇게 돌변할 수 있었는지, 도대체 나는 우리가 왜 학살을 당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으니까 네가 한국에 가거든 한국의 높은 양반들에게 좀 물어봐 줘. 그때 왜 우리를 죽였냐고.'

그리고 하미마을의 피해자 한 분은 학살이 일어나던 날 친구처럼 지내던 한국군이 찾아와서 오늘은 절대 마을에 있지 말라고 이야기해줬다고 증언하기도 했어요. 게다가 하미학살에 관련된 자료에는, '학살을 끝나고 나서 시신을 불도저로 밀어버렸기 때문에 한 손에는 커다한 대나무 채반을 쥐고 한 손에는 기다란 대나무 젓가락을 가지고 여기저기 흩어진 살점과 뼛조각들을 모으려는 행렬들이 길게 줄을 이뤘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요."

-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은 어떤 형태로 일어났나요?
"한국군에 의한 학살은 66년에 많이 일어났는데, 65년 말에 한국군 전투부대가 베트남에 부대 기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을 이주시켜야 했기 때문이죠. 학살은 토끼몰이를 하는 것처럼 일어났어요.

한 마을에 여러 개의 학살 지점들이 있는 건 이리저리 도망치는 마을 사람들을 토끼몰이하듯 한곳에 모아서 학살하는 과정이 여러 번 일어났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같은 마을의 학살이더라도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학살을 경험했는지에 따라 학살의 경험이 모두 달라요. 하미마을의 경우도 학살 지점이 여러 군데이기 때문에 피해자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 보면 경험들이 제각각이에요. 어떤 분은 땅굴에 숨어 있다가 한국군이 올라오라고 해서 총에 맞았다고 하고, 어떤 분은 집에 있다가 수색하는 한국군에게 끌려가서 학살을 당했다고도 해요.

또 다른 증언에 의하면 여느 때와 같이 한국군들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했는데, 보통 연설이 끝난 뒤 쌀이나 밀가루를 나눠주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의심 없이 모였다고 해요. 그런데 연설이 끝나자 고함소리와 함께 수풀 속에 숨겨져 있던 중기관총들이 갑자기 나타났고 학살이 일어났어요. 수풀 속에다가 무기들을 숨겨놨다는 정황을 보면 계획적인 학살이었을 가능성도 있는 거죠."


▲ 9월 19일 프란치스코 회관 앞 <베트남과 함께 여는 평화 ‘만만만’ 캠페인> 선포식. 한베평화재단, 연꽃아래, 보건의료노조, 5678 도시철도노동조합, 서울지하철 노동조합이 참여했다. ⓒ 연꽃아래

만일의 전쟁, 만인의 희생, 만인의 연대

-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부터 '한베평화재단' 설립까지 20년 동안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나요?
"한국 사회에서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이 시작된 건 99년부터예요. 처음에는 2000년에 14개 정도의 시민단체들이 모여서 결성한 '베트남전진실위원회(아래 진실위원회)'가 지금의 한베평화재단과 같은 역할을 했죠. 한국 사회에 이 문제를 알리고, 정부를 향해 한국군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과 베트남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활동을 했어요. 그런데 진실위원회가 약 3년 뒤에 평화박물관으로 바뀌면서 한국 사회 안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연대체가 사라지게 됐어요. 이 문제는 한국과 베트남의 역사 문제인데, 지원사업만 남고 역사적으로 해결하려는 운동은 사라졌다는 고민이 생겼죠.

구심점이 없는 상황에서 재단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려면 사람들과 기금이 필요하잖아요. 저는 20년 동안 베트남에서 살았기 때문에 사람도 없고 빈손이어서 굉장히 막막했어요. 일단 제가 꼭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의 명단을 쭉 적어 봤죠. 그리고 이분들을 한 분씩 만나가면서 설득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대부분은 얼굴을 직접 뵌 적이 없는 분들이어서 전화도 드리고, 서너 차례 만나면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전화를 하는 족족, 그동안 그런 문제에 관심을 못 가져서 미안했다,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시면서 이 일에 함께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반나절 만에 백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고, 한베평화재단 추진위원회가 빠르게 결성됐어요. 그리고 대구에서 만난 독지가가 한베평화재단은 우리 사회에 꼭 있어야 할 재단이라면서 흔쾌히 1억 원을 기부해주셔서 기금을 마련할 수 있었어요. 그게 씨앗자금이 되었고 추진위원회가 정식으로 재단법인 인가를 받는 데까지 한 1년 반 정도 걸려서 작년에 설립이 됐죠."

- '한베평화재단'에서는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한베평화재단은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을 계승해서 베트남 피해자 지원사업들을 이어서 하고 있는데요. 먼저 추도사업이 있어요. 학살이 일어났던 그날이 오면 해마다 피해 지역에서는 위령제나 제사를 지내는데, 한국군에 의해서 한날 한시에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에 그 마을 전체가 합동 제사를 지내는 경우가 많아요. '따이한'이 베트남어로 '대한'인데, 한국군에 의해서 죽은 분들을 기리는 제사이기 때문에 제사 이름이 '따이한 제사'예요.

그런데 위령제는 보통 관에서 해서 예산이 있으니까 해마다 할 수 있는데, 유가족들이 지내는 제사는 해마다 하기가 어려워요. 제가 마을을 다니다 보면 제일 많이 듣는 얘기가, '올해는 제사를 못 지내서 변고가 왔다, 태풍이 왔다, 흉작이다' 이런 것들이에요. 그래서 한번은 '저희가 형편이 안 돼서 백만 원밖에 못 보내드려요' 하면서 지원금을 보내드린 적이 있었는데 그 뒤로 마을 사람들이 갹출해서라도 그 제사를 이어갔어요. 제사 비용의 일부만을 한국인들이 지원했을 뿐인데 이게 마을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된 거죠. 저희가 제사지원금을 지원한 이후부터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마을 사람들의 힘으로 제사가 이어지고 있어요.

그리고 장학사업이 있는데, 이번 11월에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함께 빈호아 장학사업과 더불어 학살 피해 지역의 학교에 자전거를 지원하기로 했어요. 또 하나 중점적으로 하고 있는 일은 아카이빙 사업인데요. 한국군 민간인 학살 자료를 찾기 힘들다고 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한국군 민간인 학살 관련 자료들을 아카이빙하고 있어요. 또, 학살 지도나 위령비 지도를 만들어서 베트남을 여행하는 한국인들이 학살 현장이나 위령비들을 찾아가 우리의 과거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고 해요. 이 자료들을 모아서 사료관을 만드는 게 저희의 꿈이기도 하고요.

피해자 지원사업이나 복지사업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피해자들의 권리구제사업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분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인권의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피해자들의 권리구제사업의 일환으로, 한국과 베트남 간의 과거사 문제를 정의롭게 해결해 나가기 위해 현재 준비하고 있는 것은 내년 4월에 있을 시민평화법정이에요. 베트남 평화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연꽃아래 등 참여단체가 많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한베평화재단은 피해자들과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베트남 피해자를 모셔오는 일, 그분들이 법정에서 잘 증언할 수 있도록 돕는 일, 그리고 시민평화법정의 법적 근거가 될 수 있는 피해조사, 자료나 증언 확보 업무를 중심적으로 할 계획입니다.

얼마 전부터 '만만만' 캠페인도 진행 중인데요. 피해자들의 문제뿐만 아니라 가해자들의 문제까지도 한국 사회의 의제로 삼으려면 전 국민적으로 알리는 캠페인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만만만'은 '만일의 전쟁, 만인의 희생, 만인의 연대'라는 뜻이에요. 베트남은 만일 동안 전쟁을 겪었거든요. 전쟁 과정에서 2002년까지 집계된 한국군 피해자의 숫자가 9천여 명이었고요. 그리고 만인의 연대는 많은 이들이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해나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죠. 기금 모금 사업뿐 아니라 베트남 대사관 앞 1인 시위와 고경태 기록전 및 토크콘서트를 하고 있어요."

"10년, 50년, 100년... 계속 '해결되어가야 할' 문제"

-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의 진정한 해결'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역사 문제에 해결은 없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사죄와 배상을 한다고 하더라도 과거를 지울 수는 없어요. 어떤 물질적 배상을 하더라도 그것이 이 아픔을 다 해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가 이 역사문제를 대할 때 매듭을 짓겠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이 문제는 우리가 껴안고 가야 할 문제예요. 궁극적으로 우리가 잊지 않고 10년, 50년, 100년이 지나도 우리의 후대들에 이 문제를 계속 이야기하고, 알리고, 전해야지요. 그럴 때에만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게 될 거예요."

- 평화 활동가로서 최근 한국 사회에서 일어났던 세월호나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베트남 민간인 학살이 없었다면 광주학살도 없었을 것이라고 봐요. 지금 베트남, 광주, 세월호, 그리고 최근에 사드배치까지 쭉 이어지고 있는데, 사실 한국 사회의 문제를 책임자까지 처벌하면서 완벽하게 해결하기는 어려워요. 왜냐하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한국 사회 내에 있거든요. 예를 들면 광주 문제가 해결됐다고 하지만 광주 학살에 가담한 사람들을 모두 처벌하지는 못했잖아요.

제주 4·3사건이 내년이면 거의 70년이 돼요. 이제는 피해자도 가해자도 생존자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을 거예요. 결국 처벌할 수 없어요. 반면 베트남 문제는 우리의 문제이긴 하지만 한국 사회로부터 좀 거리가 있죠.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국 사회 내에 같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베트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오히려 더 수월할 수가 있어요. 우리의 이 노력이 한국 사회의 폭력의 고리를 끊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해요."

- 그렇다면 국가폭력 문제를 접하는 이들의 마음가짐은 어때야 할까요?
"평화나 국가폭력 같은 의제들이 커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 일상 속에 있는 작은 문제라고 생각해요. 저의 경우, 제가 살고 있는 환경 속에서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를 만났고, 그 피해자들이 나와 같이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분들이 아프시거나 돌아가시는 걸 함께하니 외면할 수 없었어요.

평화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세월호 참사에서 그들이 참 추웠겠구나, 가족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겠구나, 하고 공감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세월호 가족들이 단식하는 옆에서 햄버거를 먹는, 타인의 마음에 전혀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타인의 고통과 나의 고통을 연결시키는 마음가짐이라면 어떤 문제를 만나도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연꽃아래>에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어른 세대가 과오를 저질러서 미래 세대에게 짐을 주고 있구나, 이런 말씀들 많이 하시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우리는 기억하려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이보다 더 먼 역사의 일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단순히 과거의 일을 떠올리는 것은 기억이 아니에요. 그것이 누구에 의한 과오이든 간에 이런 잘못에 대해서 사회적 책임을 공유하는 것이 기억이에요. 그리고 이 사회적 책임을 계승해가는 게 기억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함께 계승해나가야 하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청년들이 있어서 굉장히 든든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희망을 보게 되죠.

제가 베트남에 있다 보면 한국에서 평화기행을 오거나, 진료를 하러 오거나, 평화캠프를 하러 온 사람들을 맞이했다가 공항으로 다시 돌려보내요. 그런데 공항에서 한국으로 돌아갈 때 등을 보이면서 떠나가잖아요? 그 등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저들이 있어서 우리가 이 문제를 껴안고 건널 수 있었구나' 싶은 거예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고, 이 일은 한 사람 한 사람이 함께하는 일이구나. 그리고 한 사람이 두 사람이 되고, 두 사람이 세 사람이 되고, 그렇게 백 명이 되고, 천 명이 되고, 만 명이 되고. 이렇게 해결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아까도 말했지만 역사문제라는 건 해결되지 않는 문제거든요. 하지만 우리가 그 문제를 기억한다면, 100년이 걸리든 200년이 걸리든 세월과 상관없이 '해결이 되어가는' 거예요. 지금 베트남 문제를 알고 함께 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굉장히 소중합니다. 이 한 사람이 둘을 만들고, 셋을 만들고, 백을 만들고, 천을 만들어갈 사람이니까요."


▲ 구수정 상임이사, '평화란 공감이다' ⓒ 연꽃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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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짐: 2017년 10월 27일, 금 9:59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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