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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YS Critical Biography 45
야당 1.1% 앞서, 부산서 7선 의원
[김영삼 평전 45] 이철승 체제에서 당권 탈환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전 대한매일신보 주필) = 12·12 총선거는 여야의 쟁점이 부각되지 않고 표면적으로 무기력하면서 음성적인 탈법과 위법이 자행되었다. 야당후보들은 선거기간 중 유세를 통해 정부의 비정을 집중공격하면서 유신헌법의 개정과 긴급조치 9호의 해제를 요구했다. 그리고 정부 여당의 각종 비리와 스캔들을 폭로하면서 견제세력의 확보를 호소했다.

신민당은 선거구호인 "신민 위에 서민 있고 공화 위에 재벌 있다"는 내용이 선거법상 특정정당 비방조항에 해당된다는 중앙선관위의 사용금지 통보가 있었음에도 이를 무시하면서 재벌문제를 지적하고 공격, 선거 이슈로 삼았다.

이런 가운데 선거결과는 그야말로 예상 밖으로 나타났다. 선거인 총수 1,948만 9,490명 중 77.1%의 투표율을 낸 가운데 공화당 68명, 신민당 61명, 통일당 3명, 무소속 22명이 당선되었다. 53개 지역에서 공화·신민당 후보가 같이 당선되어 동반당선 사태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신민당이 32.8%의 득표를 차지하여 공화당의 31.7%보다 1.1%를 앞섬으로써 사상 처음으로 야당이 여당의 득표를 앞서는 이변을 가져왔다.

그 결과 공화당은 9대 때의 73석보다 5석이 줄고 신민당은 52석에서 9석이 늘었다. 게다가 공화당은 대도시인 서울과 부산에서 고전했다. 한편 제3기 유정회 의원 77명의 추천은 12월 19일 밤 발표되었는데 신규가 52명, 재추천이 25명이었다.

유신체제의 여러 가지 모순구조 중의 하나는 선거제도였다. 대통령선거는 어용기관인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단일후보를 두고 투표하여 99.9%의 득표 당선자를 내는가 하면, 국회의원의 3분의 1석을 대통령이 추천하도록 하고, 임기 6년제의 지역구 의원은 여야의 동반당선 구조를 갖고 있었다.

이런 구조상의 모순 때문에 신민당이 투표율에서 1.1% 앞서고도 3분의 1 의석도 차지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김영삼은 부산에서 당선되어 7선의원이 되고 10대 국회에서 최다선을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신민당은 12ㆍ12총선에서 공화당보다 많은 득표를 한 것을 대여투쟁과 대정부 비판을 더욱 적극적으로 전개해야 한다는 국민의 요구로 받아들이면서 원내투쟁을 강화해나갔다. 1.1%의 승리를 등에 업고 등원한 신민당 의원들은 여권이 국회의장 후보로 유정회 출신 백두진을 내정하면서 강경한 입장을 천명했다.

공화당과 유정희는 이 같은 신민당의 방침에 대해 유신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면서 의장선출 과정에서 퇴장할 경우 '심각한 사태'가 초래될 것이라고 역시 강경하게 맞섰다. 신민당은 이에 대해 반대할 방법까지도 강요하는 여당의 태도는 민주주의 원칙을 무시하는 처사 라고 대응했다.

그러나 타협안이 마련되어 국회 본회의의 의장선출에는 대표최고위원인 이철승을 비롯한 신도환ㆍ이충환ㆍ유치송ㆍ고흥문ㆍ김재광 등 최고위원과 원내총무 송원영만이 참석, 백지투표로 반대의사를 밝혔으며, 비주류의 김영삼 등 14명은 본회의장에 들어왔다가 투표 전에 퇴장했다. 나머지 신민당 의원들과 친야 무소속 의원 7명은 본회의장에 입장하지 않았다.

'백두진 파동'은 다가올 대격동의 오픈 게임에 불과했다. 1.1% 승리는 결국 10ㆍ26사태로 연결되어 박정권의 종언을 고하는 새벽의 나팔소리와 같은 역할을 했다. 김영삼은 제10대 국회가 개원되기 전, 1979년 2월 8일부터 약 1개월간 미국과 일본을 방문했다.

2월 15일에는 미국 예일대학 폴리티컬 유니언(Political Union)에서 '한반도 통일과 민주주의'를 주제로 연설했다. 과거 케네디, 닉슨 등도 이곳에 초청되어 연설했다고 한다. 2월 24일에는 로스앤젤레스의 힐튼호텔에서 연설했으며, 29일에는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과 요담했다.

미국 방문기간 중 내가 한 발언들은 국내신문엔 한 줄도 보도되지 않았다. 그 중 몇 가지 생각나는 대목을 보면, 2월 13일 뉴욕 힐튼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나는 "진실로 박대통령에게 권하는 것은 국민의 마음이 이미 현정권에서 떠나 있음을 직시하고 빠른 시일 내에 정권이양 준비를 갖추라는 것"이라고 했다. 중도통합론의 이철승을 겨냥, "야당은 야당다워야 하며 정권을 잡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함으로써 나는 총재경선에 나설 뜻을 시사하기도 했다.

예일대학 연설에서도 나는 1978년 12.12총선 때부터 박대통령은 자신이나 국민을 위해 자유민주주의를 회복시켜 정권을 이양할 준비를 갖추는 것이 좋겠다는 충고를 계속해 왔다 고 밝혔다.

이란(Iran) 팔레비정권의 몰락을 예로 들면서, 어떤 정부가 군대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할지라도, 국민의 지지를 잃은 정권은 결단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이란사태가 우리에게 보여 준 역사적 교훈 이라고 주장했다. (주석 2)


제10대 총선에서 실질적으로 패배한 정부여당은 국민의 소리에는 눈을 감은 채 국회의장으로 유정회 의원 백두진을 내정하고 힘으로 밀어부쳤다. 유정회는 박정희가 일괄 지명하여 통대에서 선출된 사이비 국회의원 집단이었다.

반대하는 여론이 높았다. 심지어 공화당 지역구 출신의원들도 반대의 심사를 숨기지 않았다. 신민당은 처음에는 반대 당론을 모았으나 유신체제에 대한 도전 이라는 정부 여당의 협박에 쉽게 무너졌다.
신민당(지도부)에 대한 국민의 지탄은 갈수록 높아졌다. 재야ㆍ학생들은 ‘사쿠라지도부’라 비판하고 각종 집회에서 유신체제 3중대 규탄이 쏟아졌다.

주석
2> 김영삼, 앞의 책, 99쪽.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7년 10월 08일, 일 10:1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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