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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Pastor Choi 092717
모름과 겸손
[호산나 칼럼]

(로스앤젤레스) 최태선 목사

행자가 상좌에게 공손히 다가와 물었다.
"사람다운 삶이란 무엇입니까?"

상좌는 스승이신 큰스님의 책을 뒤적여 큰스님 자신의 말씀으로 자신 있게 대답했다.
"사람다운 삶이란 모름지기 부처님의 넘치는 공덕을 드러내는 삶일 따름이니라."

행자가 큰스님 자신을 만나 같은 질문을 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모른다."

행자는 "모른다" 하여 정직을 택했고. 큰 스님은 "모른다"하여 모름으로 만사를 말하는 신비주의 정신을 취했으며. 상좌는 "안다" 하여 빌려온 지식을 팔아 무지를 샀다.
-앤소니 드 멜로 <종교 박람회>, 스승은 모른다 p.66-67

이야기 속에는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안다'는 한 사람과 '모른다'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모르는 두 사람 모두가 안다는 사람보다는 나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에게 이 글이 다가온 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대부분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이나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느냐고 물으면 거의 모두가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대답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것이 그토록 간단한 문제일까요? 제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분에게 다가가려 하면 할수록 그분은 제게서 멀어졌습니다. 제가 그분에 대해 아는 것이 있지만 그것은 가장 근본적인 관계에 대한 이해일 뿐 그분은 제가 예측할 수 없고, 다가갈 수 없는 분이셨습니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분이라는 것이 이제 하나님에 대한 저의 이해입니다. 저는 그분을 모릅니다. 그분은 알 수 없는 분이십니다.

다만 제가 아는 것은 제가 그분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제가 언제나 느낄 수 있는 객관적인 사실이 아닙니다. 다만 제가 그분을 바라보며 그분 안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에만 의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일종의 믿음입니다. 그래서 저는 왜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을 그토록 많이 사용했고, 오직 그 말만이 그에게 평안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었고, 그것은 오직 유일하게 그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주님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이었습니다. 역설적으로 그가 '그리스도 안에'라는 말을 사용할 때 그의 상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힘들고 어려웠다는 사실 또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안다'는 사람

오늘날 기독교는 경박하기 이를 데 없는 피상적인 종교가 되었습니다. 깨끗한 물 한 그릇을 떠놓고 복을 빌던 옛 할머니들의 믿음과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개신교를 가장 그런 기독교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간증이라고 생각합니다. 간증이라는 그릇 자체가 경박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지만, 그 간증이라는 그릇에 담기는 내용들을 보면 기승전결이 있지만 결론은 늘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좋은 결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간증을 보고 사람들은 자신도 간증한 사람처럼 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거나 자신의 불행이 결국은 자신의 적은 믿음 탓이라는 생각을 하며 가뜩이나 힘든 자신을 채찍질하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간증 자체나 간증으로 인해 경박한 기독교가 되는 것보다 더 근본적으로 잘못된 점입니다. 사람들은 간증이라는 과정을 거쳐 자신이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간증을 한 사람도 간증을 보고 들은 사람도 모두가 다 자신이 하나님을 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안다는 사람들이 경박한 기독교를 만들어냅니다.

물론 '안다'는 사람들의 대표는 목사들입니다. 일전에 박철수 목사님께서 공부하기 싫은 사람은 목사 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은 공부하기 싫어하는 목사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하신 것입니다. 목사들이 너무나 무식하기 때문에 하신 말입니다. 비단 6개월짜리 속성 목사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3년 신대원 과정을 제대로 마친 목사들의 경우도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는 목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읽어도 폭 넓은 독서가 아니라 제한된 독서로 닫힌 마음을 가진 편협한 신앙을 가진 경우가 더 많습니다. 박사 목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도 다양한 책을 안 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또 읽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자신이 가진 지식의 기준으로 책의 내용을 저울질하거나 판단만 하기에 처음부터 들을 귀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목사들의 지도를 받는 성도들이 깊은 신앙의 체험을 할 수 없습니다. 폭넓은 이해를 가질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말 그대로 경박한 종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피상적인 종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모두가 '안다'는 사람들의 덕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이렇게 '안다'는 사람들로 넘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안다'는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모른다'는 사람 1

윗글에는 두 종류의 '모른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행자입니다. 행자는 초보이기에 당연히 '모른다'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야기 속의 행자는 그러나 솔직함을 칭찬 받았습니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이 모른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사실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행자와 같습니다. 자신들의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받았거나 성경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도 실제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충실하게 배우고 훈련을 받았다고 해도 그것은 매우 제한적인 지식에 지나지 않고, 그것을 실생활에서 실천하고 검증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일 뿐만 아니라 더 깊고 더 넓은 다양한 세계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행자와 같은 이 사람들이 '모른다'고 하지 않고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며 대세입니다. 그 이유는 그만큼만 알아도 아는 척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교회에 나와도 성서를 일독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날마다 성서를 읽거나 묵상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에 그렇게 조금 아는 것으로 아는 행세를 하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최소한의 교육도 받지 않은 사람들은 그냥 입을 다물고 묻어갑니다. 입을 벌렸다가는 자신의 무지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는 행자와 같이 솔직하지 못한 교인들과 적은 지식으로 아는 척 하는 교인들로 넘쳐납니다. 그런데 그렇게 입을 다물고 지내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고 교회생활에 익숙해지면 어느새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모든 것을 아는 사람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그렇게 모르면서도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예외 없이 매우 엄격하고 사나운 심판자의 모습이 됩니다. 오늘날 교회를 오래 다니면 다닐수록 더 사납고 폭력적인 성향을 가지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경박한 기독교의 초석이 된다는 것은 두 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른다'는 사람 2

이 이야기의 반전은 큰스님에게 있습니다. 상좌가 본 책을 쓴 큰스님은 막상 행자가 찾아와 물었을 때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큰스님은 모른다면서 왜 책까지 썼던 것일까요?

여기서 우리는 아포파시스(apophasis)라는 단어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겉으로는 어떤 일을 부정하면서 실제로는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큰 스님의 '모른다'는 일종의 반어법적이 수사로서 아포파시스와 같은 의미입니다. 종교학자인 카렌 암스트롱 역시 아포파시스를 중심적으로 부각하여 종교의 진정한 의미를 밝히고자 한 적이 있습니다. 아포파시스란 우리가 신이나 도, 깨달음 등을 논하며 인간 언어와 정신의 한계를 만날 때 다가오는 침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종교이건 그 종교의 깊은 경지에 다다르면 누구나 이 아포파시스적인 침묵과 조우하게 됩니다. 기독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신학자 칼 라너는 하나님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그가 한 말의 의미는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대로의 하나님은 없다'라는 의미이지만 그의 전제는 하나님은 사람이 다 알 수 없다는 내용을 함의하고 있습니다. 유영모 선생은 하나님을 '없이 계신 이'라고 칭함으로서 아포파시스적으로 하나님을 표현했고 중세의 신비주의자 엑크 하르트 역시 '진리와 다른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다'라는 말로 하나님을 부정함으로써 하나님을 부각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기독교 영성의 대가들은 십자가의 요한이 말하는 '영혼의 어두운 밤'을 언급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인 하나님을 알 수 있는 한계 내지는 깨달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침묵 내지는 모름이야말로 하나님을 체험하고 알게 된 모든 사람들의 진정한 신앙이며 겸손이라고 믿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것은 은총 속에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드러내는 경우에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인간 체험은 하나님에 대한 매우 제한적인 일부이며 따라서 그렇게 하나님을 알게 된 인간은 하나님을 모른다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믿음을 표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사람은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앎은 매우 제한적이며 무한하신 하나님의 아주 적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알게 된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모른다고 말함으로써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을 알아가고 신앙하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깊은 깨달음에 도달한 그런 사람들의 진정한 앎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상좌와 같은 초보의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 부인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하나님에 대한 깊은 체험을 인정하기는커녕 그러한 사람들을 이단으로 규정하는 일에 몰두함으로써 경박한 기독교를 가일층 심화하는 악순환이 기독교 역사 속에서 반복된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겸손한 동행

글을 쓰면서 떠오르는 성서 한 구절이 있습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6:8)

이전에는 그다지 주목해 보지 않았던 '겸손'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옵니다. 만일 인간이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알게 된다면 모름지기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고 떠들면서 마치 하나님을 다 아는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과연 그들이 말하는 대로 하나님을 알까요? 그것도 다? 그것은 가당치 않은 말입니다. 누구랄 것도 없니 모든 진지한 그리스도인들은 깊은 고통이나 절망의 한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결코 자신들이 알게 된 하나님을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특히 자신이 하나님을 다 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시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불행은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는 겸손하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함부로 안다고 말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알게 된 부분보다 알 수 없는 부분이 항상 더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인간의 인지능력으로는 도무지 담아낼 수 없는 크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겸손히 그분과 동행하며 함께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겸손히 자신이 만난 여전히 알 수 없는 하나님과 함께 공의를 행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땅에 그분의 뜻을 이루어가는 성령의 역사가 면면히 흐르기를 소망해봅니다.
 
 

올려짐: 2017년 10월 02일, 월 11:23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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