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Weekly of Florida   로그인  등록하기

 현재시간: (EST) 2017년 12월 14일, 목 12:45 pm
[칼럼/기고/에세이] 기고
 
YS Critical Biography 43
비주류 이철승에 당권 빼앗겨
[김영삼 평전 43] 박정희와 회담 후 궁지에 몰려


김영삼의 박ㆍ김회담과 김옥선의원 사태에 대한 미온적인 대처는 신민당 비주류에 공격의 빌미가 되었다. 선명과 강경을 캐츠프레이즈를 내걸고 당권을 거머쥔 김영삼의 노선에 일대 타격이 된 것이다. 이철승ㆍ고흥문ㆍ신도환 등 비주류 측에서는 김총재의 사퇴를 들고 나오고 고흥문 정무회의 부의장, 박영록 훈련원장 등 당직자들은 사퇴하면서 책임을 물었다. 비주류는 박ㆍ김회담 이후 김총재의 지도노선이 변질됐다고 주장하면서 당권도전을 선언, 이른바 고양이논쟁으로 발전하게 된다.

김총재가 76년 4월 지구당개편대회 치사에서 쥐를 잡지 못하거나 잡으려하지 않는 고양이가 있다면 그것은 고양이가 아니며 정권을 잡지 못하거나 잡으려 하지 않는 정당이 있다면 그건 정당이 아니다 면서 박 김회담에도 불구하고 정권에 도전하는 야당인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비주류 측은 고양이가 동맥경화증에 걸려 발 앞에 있는 쥐를 잡으려 하지 않고 있다 (이철승),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필요한 것이지 쥐를 잡는다고 뛰어만 다니는 고양이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정운갑), 고양이가 대마초를 먹었다 (신도환)는 등 김총재의 고양이 론(論) 을 야유했다. (주석 8)

비주류의 완강한 비판에 몰린 김영삼은 여전히 함구하면서 1975년 8월 4일 동남아 순방에 나섰다.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 일본의 미키(三木武夫) 수상 등을 만나 회담하고 19일 귀국했다. 8월 23일은 총재 취임 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김영삼은 동남아 순방 결과와 지난 1년이 국민의 기대에 미흡했다는 자평과 더불어 여전히 개헌논의를 금하고 있는 긴급조치 9호의 해제를 촉구했다. 검찰은 이튿날 기자회견 내용 중 긴급조치 9호에 위반되는 발언을 이유로 불구속 입건했다. 그리고 서울지검에서 출두 요구서를 발부한 데 이어 비서실장 김덕룡을 구속했다. 기자회견문 작성 배포가 긴급조치 위반이란 혐의였다.

검찰은 1976년 1월 21일 김영삼 총재를 불구속 기소했다. 청와대 회담 8개월 만에 박정희는 김영삼을 기소한 것이다. 김옥선파동 을 겪은 신민당의 이철승ㆍ고흥문ㆍ신도환계 및 정일형ㆍ김원만ㆍ정헌주 등 당내 비주류인사들은 이 사태에 대한 김영삼의 총재직 인책사퇴와 명확한 지도노선 제시를 요구하면서 일대공세를 벌였다.

이렇게 포문을 열기 시작한 신민당 비주류 측은 1976년 3월 9일 합동 기자회견을 갖고 집단지도체제만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신민당을 만드는 최선의 방향이라고 선언했다. 비주류 측은 집단지도체제의 당헌개정을 들고나와 주류와 한판 대결을 시도했다.

5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4월 1일부터 시작한 전국 72개 지구당 개편대회를 계기로 당권경쟁이 본격화됐다. 지구당 개편대회 과정에서 충북 영동에서 폭력사태가 발생했는가 하면, 5월 22일 전당대회 대의원의 접수를 시작하자 비주류 청년당원 150여 명이 중앙당사를 점거하는 난동사건이 일어났다.

일부 대의원의 자격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한 양파의 대결은 5월 22일 서울시민회관에서 열린 전당대회가 각목대회의 난투극으로 변하기에 이르렀다. 주류측이 먼저 대회장을 장악하여 전당대회를 개최하려 하자 비주류측 청년당원들이 대회장을 점거하고 전당대회를 치렀다. 이 과정에서 주류와 비주류의 청년당원들 사이에 각목을 휘두르는 등 폭력사태가 발생, 당원들이 부상하는 사태로 번졌다.

비주류 측에 의해 전당대회장을 빼앗긴 주류 측은 이날 관훈동 중앙당사에서 전당대회를 따로 열어 총재인 김영삼을 만장일치로 재선출했다. 주류 측의 전당대회에는 21명의 의원과 415명의 대의원이, 비주류 측의 전당대회에는 34명의 의원과 372명의 대의원이 참석했다.

신민당 주류와 비쥬류는 각기 당대표 변경등록신청을 중앙선관위에 제출했지만, 선관위는 5월 31일 양측의 신청을 모두 각하시켰다. 그러나 중앙선관위는 76년 5월 말이 경과함으로써 김영삼의 총재임기가 소멸되었다고 통고하여 김영삼은 6월 11일 총재직 사퇴를 발표하고 전당대회의장 이충환을 총재권한대행으로 지명했다.

신민당 주류와 비주류는 이충환을 중심으로 중도계 의원들이 제시한 7명의 최고위원과 1명의 대표위원을 두도록 하는 당헌개정안에 합의하여 9월 15일, 16일 이틀 동안 서울시민회관 별관에서 수습전당대회를 열기로 했다.

이에 따라 반당대회 각목대회 이후 112일 만에 수습 전당대회를 열어 집단지도체제의 당헌을 채택하고 먼저 최고위원의 선출에 들어갔다. 주류 측은 대표최고위원에 김영삼, 최고위원에 이충환ㆍ유치송ㆍ김재광, 비주류 측은 이철승ㆍ신도환ㆍ고흥문ㆍ정해영 등 7명이 최고위원에 출마, 최다득표자를 대표최고위원으로 추대하기로 결정했다.

대의원 767명이 투표하여 최고위원을 선출한 결과 주류의 이충환(103), 유치송(98), 김재광(72), 비주류의 이철승(142), 신도환(118), 고흥문(87) 등 6명이 당선되었다. 이 밖에 정혜영 68표, 최형우 56표, 김옥선 21표, 무효 2표였다.

9월 16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대표최고위원 선거는 김영삼ㆍ이철승ㆍ정일형 등 3명이 경합하여 1차 투표에서 김영삼이 349표, 이철승이 263표, 정일형이 134표를 얻었으나 과반수 득표자가 없어 2차 투표에 들어갔다. 2차 투표에 앞서 정일형은 이철승의 추대를 선언하고 사퇴했는데, 투표결과 이철승이 389표로, 364표를 얻은 김영삼에게 25표 차로 역전승, 과반수 득표로 대표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

김영삼은 2년여 만에 중도통합론자 이철승에게 당권을 빼앗겼다. 김옥선 파동 당시 56명의 의원들이 총사퇴를 결의했을 때 승복할 수 없다고 성명을 낸 16명의 국회의원이 비주류였다. 이들은 대부분 이철승ㆍ신도환 계열이다.

주석
8> 이경재, 앞의 책, 307쪽.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7년 9월 22일, 금 9:13 pm
평가: 0.00/5.00 [0]

답글이 없습니다.

   

   
   
www.okja.org
www.sharingkorea.net
www.ksm.or.kr
www.koramtour.net
http://www.geo10.com/krus/fl/g/0401/954/orientalmart.htm
www.smiledentalfl.com
www.kinghealthcenter.com
www.koreahouseorlando.com
www.thefountainsalonandspa.com
www.orlandotour.com
www.miju24.com/market_info/12701
www.ohmynews.com
www.saegilchurch.net
www.newsm.com
www.newsnjoy.or.kr
www.protest2002.org
www.biblekorea.org
dabia.net/xe

get FireFox
www.korean.go.kr/front/foreignSpell/foreignSpellList.do?mn_id=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