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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Eugene Peterson's position to homosexuality 072617
유진 피터슨의 최근 행보와 동성애 문제
김영봉 목사 "우리는 모두 다른 죄와 깨어짐이 있는 존재"


(워싱턴=뉴스앤조이) 김영봉 목사(와싱톤 사귐의교회)

1.
지난 7월 12일 <릴리전뉴스서비스>에 "Best-selling author Eugene Peterson changes his mind on gay-marriage"("베스트셀러 작가 유진 피터슨이 동성 결혼에 대한 입장을 바꾸다")라는 기사가 나왔다. 조너선 메릿 기자와의 대담을 정리한 기사인데, 유진 피터슨은 그가 속해 있는 PCUSA(미국장로교회)가 동성 결혼에 대해 입장을 바꾼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 문제는 이미 논쟁이 끝난 문제이고,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메릿 기자는 그 대답에 이어 "만일 당신이 지금 목회를 하고 있고 교인 중에 아주 신실한 동성 커플이 있어서 그들이 당신에게 결혼 주례를 부탁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피터슨은 다른 말없이 Yes라고 답했다.

이 기사가 나오자마자 미국 기독교계가 들썩였다. 특히 동성애 및 동성 결혼 문제로 예민해 있는 복음주의권에서 흥분했다. 이것은 2015년 미국 복음주의권의 또 다른 오피니언 리더였던 토니 캠폴로가 동성애와 동성 결혼을 인정한다고 입장을 발표했던 것과 비교할만한 사건이다. 사회학자인 그는 부흥사적인 열정으로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의 복음을 설파하여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동성 결혼에 대한 입장을 바꾼 후에 그는 신속하게 잊혀진 인물이 되었다. 캠폴로는 입장 발표 후 진행한 어느 인터뷰에서 홀로 버려진 느낌이라고 술회했다. 그럼에도 자신의 입장 변화가 자신의 믿음과 양심에 옳은 일이라고 믿는다고 고백했다.

유진 피터슨도 동성 결혼 입장 발표 후 곧바로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가장 큰 반응은 미국 최대의 교단인 남침례교회 산하의 '라이프웨이'(Lifeway) 서점 측에서 나왔다. 미국 최대의 기독교 서적 및 물품 유통사인 라이프웨이 대변인은 피터슨의 모든 저서를 전국의 서점에서 빼겠다고 성명을 냈다. 라이프웨이 온라인 서점에서는 유진 피터슨의 이름으로 책 135개와 물품을 검색할 수 있다. 라이프웨이 서점은 그동안에도 아무리 인기 있는 저자의 책이라 해도 교단의 교리적 입장과 맞지 않는 저자들의 책은 판매하지 않았다. 조엘 오스틴, 윌리엄 폴 영, 마크 드리스콜 등이 그 예다. 미국 복음주의권의 분위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놀랍게도 피터슨은 이튿날 즉 7월 13일 오후에 자신의 입장을 <워싱턴포스트>에 전달했다. 이 발표문에서 피터슨은 동성 결혼을 집례 하겠다는 자신의 발언을 철회하면서 자신은 결혼과 성에 대한 전통적인 입장을 지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치 자신이 인터뷰 과정에서 기자의 유도 질문에 실언한 것처럼 상황을 설명했다. 자신의 발언에 대해 하루 동안 기도하고 생각한 결과 철회하는 것이 옳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러자 같은 날 메릿 기자가 또 하나의 글을 올렸다. 글의 요지는 피터슨이 실언을 한 것도 아니고, 자신이 유도신문을 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인터뷰 후에도 그는 피터슨에게서 동성 결혼에 대한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고 했다. 사실, 메릿은 피터슨이 사적인 자리에서 가까운 친구들에게 동성 결혼을 받아들인다고 이야기했다는 소문을 듣고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동성 결혼과 관련해 질문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단 피터슨이 동성 결혼에 대한 최종 입장을 공식화했으니 그 입장을 존중하겠다고 썼다.

피터슨의 공식적 입장 표명으로 사태가 진정되는가 했는데, 같은 날 메릿 기자는 어느 목회자에게서 전해 받은 정보를 공개했다. 2014년에 웨스턴 신학대학원에서 강연한 영상이었다. 영상에서 피터슨은 성소수자 자녀들을 둔 가정들을 도와 그것을 받아들이게 한 일화를 나누었다. 그는 이 강연에서 자신은 동성애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는 문화 안에서 자랐으나 이 문제에 대한 다양한 서적을 읽고 연구한 결과 이제는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이르렀다고 밝혔다. 그 이후로 사흘 동안의 격한 풍랑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유진 피터슨 동영상 갈무리

2.
나는 유진 피터슨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그의 대표작인 <한 길 가는 순례자>(IVP)를 읽은 이후로 그의 저서들을 찾아 읽었으며, <메시지>(복있는사람) 한국어판 신약을 감수했다. 가장 최근에는 유진 피터슨의 회고록 를 깊이 공감하며 읽었다.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그가 걸어온 길이 나의 길을 탐색하는 데 표지판의 역할을 해 왔다.

피터슨이 동성 결혼에 대해 입장을 바꿨다는 첫 번째 뉴스를 접했을 때 나는 별로 충격을 받지 않았다. 과거 토니 캠폴로가 입장을 바꾸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는 약간 충격을 받았다. 사회 정의에 대한 캠폴로의 관심을 생각하면 그럴 법도 했지만, 그의 설교와 강연을 통해서 내가 느낀 복음에 대한 열정을 생각하면 그럴 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확신에 따라 살아온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 입장 변화에 이르기까지의 그의 고민을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자신을 추종해 왔던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떨어져 나갈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입장에 정직하게 말하고 행동하려 한 그의 태도에 존경이 느껴졌다. 그런 경험을 이미 거쳤기에 그랬는지 모르지만, 이번에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피터슨의 영성과 신학적 경향에 그런 여지가 있음을 느껴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개 영성가들은 교리적인 문제에 대해 느슨한 편이다. 그것이 영성 전통의 강점이면서 또한 약점일 수 있다. 그는 성서에 대해서도 문학적인 관점에서 읽고 해석하여 적용해 왔다. 신학과 교리에 대해서도 유연하고 창조적으로 설명해 왔다. 그것이 교조주의적인 신학과 교리에 회의를 느낀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었고 그들을 다시금 영적 여정으로 돌아오게 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그런 전통 속에서 살아온 그이기에 동성 결혼 문제에 대해 유연하게 대할만한 여유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게다가 그의 나이가 84세다. 노년에 이르면서 시야와 생각이 더 좁아지고 굳어지는 사람도 있지만 더 넓어지고 유연해져서 젊은 시절에 붙들고 싸웠던 옳고 그름의 문제를 너그럽게 보는 변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내가 정작 놀라고 실망한 것은 다음 날 내놓은 입장 때문이었다. 자신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며 자신의 발언이 얼마나 큰 파장을 몰고 올지 그가 몰랐을 리가 없다. 첫 번째 인터뷰에서 메릿 기자가 "나중에 무엇으로 기억되기를 원합니까?"라고 물었을 때, 피터슨은 "사람들이 나를 기억해 준다는 사실 자체에도 아직 적응이 안 되었습니다"라고 대답할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에 붙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동성 결혼 문제에 대한 자신의 발언이 어떤 파장을 만들어낼지 짐작 못 했을 리가 없다. 그런데 지금처럼 예민한 상황에서 그처럼 하루 만에 발언을 뒤집은 것은 책을 통해 알고 있던 그의 모습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피터슨만한 사람이 그동안 동성애와 동성 결혼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 결과 지금쯤 어느 정도의 '잠정적 결론'에 이르렀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 만에 입장을 번복한 것이 더욱 납득이 안 된다. 이번의 사태 후에 그의 대표작인 <메시지>가 다시 조명받고 있다. 소위 '동성애 구절들'에 대한 피터슨의 번역에 이미 그의 입장이 반영되어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동성애 구절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로마서 1장 26-27절과 고린도전서 6장 9절의 번역이 그렇다. 여기서 피터슨은 동성애를 지지하는 성서학자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동성애가 아니라 전반적인 성적 타락을 문제 삼은 것처럼 번역해 놓았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결국 최근 인터뷰에서 그가 한 대답은 동성애와 동성 결혼에 대한 그의 입장이 표현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아 보인다. 메릿 기자가 지적했듯이 그것은 실언이 아니라 그의 속마음이 표출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최근의 인터뷰로 인해 거센 비판과 저항에 직면하자 공식 입장을 바꾼 것이다.

거기에는 필경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비난하는 것처럼 라이프웨이에서 그의 모든 저서를 빼겠다고 해서 입장을 철회한 것은 아니리라 믿고 싶다. 그 나이에 수입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 염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동안 받은 인세 수입만 해도 나머지 인생을 사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에 대해 염려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리라고 믿고 싶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그렇게 경솔한 처신으로 몰아넣었는가? 그의 입장 변화로 인해 상처받을 신자들에 대한 배려였을까? 아무래도 이 질문은 피터슨 자신 외에는 답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차라리 그가 캠폴로처럼 그 입장을 그대로 고수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동성애와 동성 결혼이 내가 믿는 신앙적 이상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것이 한 사람의 신학 전체를 부정할 정도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 교리에서 그는 나와 같은 자리에 있다고 믿는다. 정통과 이단을 가르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우리는 자신의 양심과 신앙에 정직하게 설 자리를 찾고 그 자리에 서서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 동성애와 동성 결혼에 대한 입장이 나와 달라도 나는 캠폴로를 좋아한다. 마찬가지 이유로 이번 해프닝에도 불구하고 나는 유진 피터슨을 계속 좋아하겠지만, 실망감은 어쩔 수 없다. 평생토록 영성을 추구해 온 사람으로서 하루 만에 입장을 번복하는 행동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3.
2014년 강의에서도, 이번 인터뷰에서도, 피터슨은 목회적 돌봄의 관점에서 성소수자 문제를 접근하려 했다. 목회 현장에서 이런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성소수자 혹은 그 가족을 만나는 것은 매우 귀한 경험이다. 신학적 주제 혹은 교리적 문제로서 이 문제를 대하는 것과 실제로 그런 문제를 겪는 사람을 대하는 것은 우리를 전혀 다른 상황에 놓이게 한다. 뉴스나 다른 매체를 통해 이 문제를 대하는 것과 어둠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한 사람을 대하는 것은 전혀 다른 반응을 불러온다.

이번에도 서울에서 열린 퀴어 축제에 대한 다양한 사진과 영상이 SNS에 올라오고 있다. 어떤 사람은 좋아 보이는 장면들을 찍어 올리고, 어떤 사람들은 거북해서 볼 수 없는 사진들을 찍어 올린다. 한 편에서는 억압된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한 아름다운 축제라고 말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성적 타락과 방종, 왜곡의 전시장이라고 말한다. 이 중 어느 하나가 진실이고 다른 하나는 거짓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이 두 이미지는 이 문제의 복잡성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둘 다 진실이기에 어느 면을 보느냐에 따라 입장이 달라진다. 아주 선명하게 그리고 아주 강렬하게.

비유하자면, 성소수자 문제는 이슬람 문제와 아주 닮았다. 이슬람도 극명하게 대조되는 두 얼굴을 가졌다. 무슬림 중에는 매우 인격적이고 평화적인 사람들이 있다. 내 아이 중 하나는 대학 4년 동안 인격적으로 존경할만한 교수를 한 명 만났는데, 그 사람은 아주 신실한 무슬림이라고 했다. 이런 사람이라면 경계할 이유도 없고 배척할 이유도 없다. 친구가 되어 서로의 믿음을 나누면서 진리의 길을 찾아갈 수 있다. 하지만 뉴스를 통해 더 자주 우리의 마음을 자극하고 지배하는 것은 전투적인 무슬림이다. 그런 이미지에 압도당하면 무슬림을 모두 배척하고 혐오하게 된다. 지금 미국과 한국의 보수 기독교계가 이슬람에 대해 혐오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투적 무슬림에 대한 대책에 마음을 쓰면서도 평화적인 무슬림들의 생존과 인권을 보장해 주어야 하는 것이 다원주의 사회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어렵더라도 지치지 말고 눈을 부릅떠야 하는 일이다. 이 균형을 잃어버리면 전투적 무슬림의 세력을 키워 주는 잘못에 빠지거나, 평화적인 무슬림이 설 자리를 빼앗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원주의 사회를 사는 평범한 시민의 과제일 뿐 아니라 모든 믿는 사람들의 과제다.

성소수자 문제에도 동일한 과제가 우리 앞에 주어져 있다.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토론에서 항상 제기되는 명분은 두 가지다. 첫째, 성예외성(LGBTQI)의 문제는 '주어진 것'이다. 스스로 좋아서 선택한 것이 아니라 누구에겐가 혹은 무엇에겐가 선택된 것이다. 둘째, 성인과 성인 사이의 '합의된' '일대일의' '헌신된' 관계는 인정받아야 한다. 이 두 가지의 명분을 제시하면서 성소수자의 존재와 권리와 선택을 존중해 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실제로 퀴어 축제나 다른 성소수자 권익 단체의 행보를 보면 전혀 다른 인상을 받을 때가 많다. 양심적이고 고뇌하는 소수의 성소수자들을 인정하고 보호해 달라는 요청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성적 욕구와 표현을 인정해 달라는 요구처럼 보인다.

상황이 이러므로 이 문제에 대한 어떤 입장을 정하는 것이 쉽지 않고 그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토니 캠폴로가 지지하기로 한 대상은 고쳐지지 않는 성적 지향의 문제로 고민하다가 일대일의 지속적 관계 안에서 동성애를 추구하기로 선택한 사람들이다. 메릿 기자도 '성적 지향에 문제가 있으나 다른 점에서는 신실하게 살아가는' 교인의 경우에 어떻게 하겠느냐고 질문했고, 피터슨은 그 전제에서 주례를 맡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 입장은 "유명 작가 유진 피터슨이 동성 결혼을 지지하기로 입장을 바꾸다"는 제목으로 대중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이 기사를 읽은 사람 혹은 소문을 들은 사람들 다수는 그가 모든 종류의 성적 왜곡과 방종을 지지하는 것처럼 받아들였다. 그로 인해 잠시 동안 SNS에서 난리가 났던 것이다.

나는 그동안 목회 여정 중에 성소수자 가정 넷을 만났다. 한인 이민자들은 전반적으로 보수적이기 때문에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특히, 아버지들은 그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도 않고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에서 자란 탓에 자녀의 행복보다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는 것을 더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어머니들은 그렇게 모질지 못하다. 믿음 안에서 살아온 어머니들은 처음에는 "동성애는 죄다"라는 전제에서 자녀의 성정체성 문제를 대한다. 그로 인해 자녀와 심한 갈등을 겪기도 하고 심각한 우울증과 자살 충동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그러다가는 결국 "하나님, 죄송합니다. 제 자식을 일단 살려야 하겠습니다" 하고 마음을 바꾼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분들이 나를 찾아 주었다. 나는 중요한 선택의 고비에서마다 그분들의 고뇌와 갈등과 아픔을 함께할 수 있었다. 네 어머니 중에 두 분은 지금 자녀를 따라 성소수자 모임을 적극 지지하고 있고, 두 분은 조용히 자녀를 돌보면서 믿음의 길을 가고 있다.

나는 이들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한 교리적 접근과 목회적 접근이 달라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래전, 남편의 자살로 힘겨워하는 자매를 상담하면서 자살에 대한 교리적 접근과 목회적 접근이 달라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과 같은 경험이었다. "자살은 죄다"라는 교리적 가르침이 믿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살 충동의 위기에서 제동 장치의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자살한 사람의 가족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마음의 짐이 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구원받지 못한 결정적 증거를 가지고 사는 사람의 마음을 한 번 생각해 보라. 마찬가지로, "동성애는 죄다"라는 선언이 고쳐지지 않는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사람과 그 가족에게는 무거운 짐이 된다. 앞에서 말한 대로, 성적 쾌락을 위해 동성 섹스를 선택한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는 "동성애는 죄다"라는 선언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성소수자로 '선택된' 사람들에게는 그런 선언이 부당하고 잔인하게 느껴질 수 있고, 그래서 하나님에게 등지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목회자로서 그분들의 아픔에 동참하여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분들의 영혼을 짓누르고 있는 죄책감의 짐을 제거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 사회에서 성소수자로 혹은 성소수자의 부모로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감당하기 힘든 짐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긍휼한 심정이 끓어올라 그들이 하나님께 대해 가지고 있는 죄책감을 벗겨 주고 싶어진다. 아마도 캠폴로도, 피터슨도 그런 마음을 따라간 것이리라. 그렇게 하는 것이 목회적이고 예언적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그것이 죄인들을 대하셨던 예수님의 마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마음의 끌림을 느끼면서도 끝내 그렇게 말해 줄 수는 없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그중 하나다. 심신이 지친 상태로 찾아와 눈물로 아픔을 쏟아 놓는 사람에게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건 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라고 말해 주고 싶지만, 그것은 내가 믿음과 실행의 표준으로 믿는 성서가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말없이 같이 울어주고 기도해 주고 품어 준다. 나머지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기를 기대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스스로 그렇게 선택한 것이 아니므로 긍휼한 마음으로 함께 있어 주고 들어주고 아파하며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에 맡기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느 면에서든 죄로 인한 깨어짐을 가지고 산다는 점에서 같은 처지에 있다.

따라서 우리는 동성애 문제를 생각할 때 표적을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 보수 기독교인들이 이슬람과 동성애에 대해 강경한 혐오적 태도를 가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이슬람과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에 압도되어 있다. 그런 전제에서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평화로운 무슬림과 고통받는 성소수자에게 큰 상처와 아픔을 주어 왔다. 무슬림을 대할 때 전투적 무슬림과 평화적 무슬림을 구분하여 생각하고 말해야 하듯, 동성애자 혹은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분별해 보아야 한다. 성소수자의 권리를 명분으로 삼아 수치스럽고 파괴적인 성적 욕망을 표출하는 것에는 찬동할 수가 없다. 미국 사회가 그렇듯 한국 사회도 그 명분에 밀려 성적 해방구를 보호해 주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 현실에 대해서는 충분히 염려하고 반대해야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성소수자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까지 포함하여 정죄하고 차별하고 억압하는 것은 정의에도, 사랑에도 위배된다.

4.
그리스도인은 다 각기 다른 깨어짐을 가진 자들로서 서로의 연약함을 품고 거룩함을 향해 나가라는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른 면에서, 서로 다른 죄를 안고 사는 존재들이다. 서로를 향한 우리의 책임은 서로의 죄를 두둔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죄를 죄로 보고 서로 품어 주어 거룩함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갈 6:1)

사도는 믿는 사람들을 '신령한 너희'라고 부른다. '영적인 사람' 혹은 '성령의 사람'으로 번역할 수 있다. <새번역>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인 여러분'이라고 번역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 안에서 실존 상태가 변화된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지고 인생관도 달라진다. 무엇보다 성령의 사람은 자신의 죄성에 예민해지고 거룩함을 향한 부름을 소명으로 받는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의 죄를 보고 정죄하지 않는다. 대신에 '온유한 심령으로' 그 깨어짐을 아파하며 회복하도록 돕는다. 아울러, 자신을 살피는 일에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자신에게도 다른 종류의 깨어짐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죄를 문제 삼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야말로 성령의 사람이 빠질 수 있는 가장 심각한 시험이다. 동성애 문제도 이렇게 접근해야 옳지 않을까. (본보 제휴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7년 8월 02일, 수 11:13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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