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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YS Critical Biography 36
김대중 납치사건 대정부 첫 질의
[김영삼 평전 36] 긴급조치 시대의 야당총재



▲납치생환 직후의 김대중 73년 8월 당시 납치 생환 직후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 위로하는 고 정일형 박사. 김 전 대통령의 야윈 팔이 도쿄에서 납치되어 서울에서 풀려나기까지 3박4일 동안 얼마나 절박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 김대중도서관 자료사진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전 대한매일신보 주필) = 김영삼의 동지이자 영원한 정치적 라이벌인 김대중이 해외에서 반유신 투쟁을 벌이다 1973년 8월 8일 일본 도쿄에서 납치되어 엿새 동안 생사를 넘나들다가 동교동 자택으로 끌려왔다. 중앙정보부의 소행이었다. 김대중은 훗날 박정희 대통령의 지령에 따른 납치였다고 증언했다.

납치사건이 발생하자 박정권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정부의 개입설을 완강히 부인했다. 그러나 일본경시청이 사건현장에서 범인의 지문을 채취하는 등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포착하고 사건관련자의 출두를 한국정부에 요구하자, 이를 잡아때기로 일관했다.

이에 따라 일본에서는 국권침해 에 대한 비난여론이 대두, 한일정기각료회의 연기, 대륙붕 석유탐사를 위한 한일교섭 취소, 경제협력 중단 등, 오랫동안 밀월관계를 유지해오던 한일관계가 냉각상태에 빠져들었다.

김대중 납치사건은 유신체제 핵심이 개입하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외국의 수도 한 복판에서 야당의 전 대통령후보를 납치해온다는 것이 막강한 국가권력이 아니고는 불가능했다. 따라서 주눅이 든 한국의 언론은 정부발표나 보도하고 야당은 침묵했다.

사건이 외교분쟁으로 국제문제화되면서 국회가 더 이상 방관하고 있을 수 없었다. 사건발생 한 달여 후인 9월 22일부터 25일까지 이 사건과 관련 대정부 질의를 벌이기로 합의했다. 이에 앞서 당시 야당의 실정을 살펴보면 8대 총선을 앞두고 ‘진산파동’으로 물러났던 유진산이 5월에 열린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총재로 복귀했다.

유진산이 무경쟁상태에서 총재에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은 유신정변에 힘 입은 바 컸다. 경쟁자였던 김홍일ㆍ김대중 등 비주류 핵심이 유신쿠데타로 정계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유총재는 김영삼과 정해영ㆍ김원만ㆍ김의택ㆍ고흥문을 부총재로 지명했다.

신민당 지도부는 김대중 납치사건과 관련, 대단히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자기 당 출신 대선후보의 일인데도 그랬다. 박정희 권력과 척지지 않으려는 비열한 모습이었다. 이런 와중에 4월 24일 김종필 총리를 상대로 김영삼이 첫 질문자로 나섰다.

3년 전 초산테러를 당한 적이 있는 김영삼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테러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인식으로, 그리고 자신의 테러범을 여전히 체포하지 않고 있는 정황을 열거하면서, 이 사건이 정치테러 임을 분명히 했다. 김영삼은 30여 분 동안 다섯가지 항목을 집중적으로 질의하면서 김종필 총재의 사퇴를 촉구했다.

첫째, 김대중 납치사건에 대한 지금까지의 수사경위.
둘째, 김동운 서기관의 정체.
셋째, 이 사건에서 나타난 국가 안보상의 무정부상태.
넷째, 김대중 연금의 법적 근거.
다섯째, 이 사건으로 악화된 한일관계 대책.

김영삼은 정책질의를 다음과 같은 발언으로 마무리지었다.

인간이 인격을 갖추어야 사회적으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도 국가로서의 체통과 권위를 갖추어야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국가가 국가로서의 체통과 권위를 갖추자면 오늘날의 민주주의시대에 있어서는 대의정치와 언론의 자유, 그리고 인간의 기본권이 보장되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통치가 있을 뿐 정치가 없는……, 떳떳하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민주주의국가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으려면, 대의정치가 제 기능을 발휘하고 언론이 정부를 자유스럽게 비판할 수 있고 야당의 말을 자유스럽게 보도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말하고 있는 이 김영삼이의 말도 우리 국민에게 정확히 전달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수출 100억불, 국민소득 1,000불도 중요하지마는, 국가의 체통과 권위가 상실되었을 때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많은 해외교포들이 이국 땅에서, 그리고 우리 국민들이 외국에 나갔을 때 떳떳하게 나는 한국 사람이다, 나는 한국에서 왔다, 나의 조국은 민주주의국가다, 이렇게 자랑할 수 있는 조국을 우리는 하루빨리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김총리는 나와 세대가 같은 젊은 지성의 정치인이라 믿습니다. 지성인의 양심에 호소해서 이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주석 1)

주석
1> 김영삼, 앞의 책, 39쪽.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7년 7월 23일, 일 9:3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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