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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Dual job pastor
낮에는 청원경찰, 저녁에는 목사
[인터뷰] 예하운선교회 김디모데 대표


(서울=뉴스앤조이) 이용필 기자 = "목사가 생계 때문에 택시를 몰아야 한다면 차라리 택시기사를 하라."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가 오래전 교역자들에게 한 말이라고 합니다. 목회를 하든 직업을 갖든 한 가지 일에 치중하라는 의미로 들립니다.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목회와 일을 병행하는 이른바 '이중직 목회자'가 적지 않습니다. 이중직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이 있습니다. '이 시대의 대안'이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 '목회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닌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김디모데 목사는 낮에는 은행 청원경찰을, 저녁에는 선교회 목사로 사역합니다. 아직 담임 목회를 해 보지 않았지만, 목회자 이중직은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힘들게 살아가는 교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고,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사역을 병행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고 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기 위해 7월 12일 고양시 화정동을 찾았습니다. 청원경찰 유니폼을 입은 김 목사가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 김디모데 목사는 은행에서 4년째 청원경찰로 근무하고 있다. 교회 협동목사로서 사역도 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올해 서른여섯인 그는 안 해 본 일이 없다. 주유소, 편의점, 식당 아르바이트를 거쳐, 힘들다고 소문난 택배 상하차, 막노동 현장을 누볐다. 지금은 은행 청경(청원경찰)을 하고 있다. 다른 일에 비해 "힘도 덜 들고, 월급도 많은 편"이라 4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자투리 시간이 많이 나서 '사역'과 병행하는 데 안성맞춤이라고 한다.

김디모데 목사는 지난해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가 속한 교회와 교단은 순복음으로 알려진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다. 그는 조금 특이하다. 같은 교단에서 신학 공부한 일부 목회자가 대형 교회를 기웃거릴 동안 가난한 '개척교회들'을 찾았다. 담임목사를 도와 교회를 섬겼다. 이미 부흥한 교회에 들어가는 것은 숟가락 하나 얹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교회에서 직접 부흥을 경험하고자 했다.

개척교회 부교역자 삶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설교, 찬양, 새신자 양육 등을 했다. 다만 교회가 작다 보니 사례비는 받을 수 없었다. 김 목사는 이중직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사회생활을 해 보니 좋은 점도 있었다. 그는 "교인들 삶의 애환을 손톱만큼은 알겠다"고 말했다. 목회하면서 돈 버는 게 가능하냐는 질문도 종종 받는다. 아직 담임을 맡은 적은 없지만 "부교역자로서 교회를 섬기고 직장을 다니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고 답한다.

물론 직업 특성상 그럴 수 있다. 김 목사는 보안 업체에 고용돼 있다.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은행에서 보안 업무를 맡는다. 야근이 없어 수요 예배나 금요 철야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할 수 있다. 주 5일 근무제라 주말에도 부담 없이 목회할 수 있다.

처음부터 이중직을 생각하지 않았다. 성과 위주로 돌아가는 기존 교회 시스템에 회의를 느꼈다. 교회 인원과 헌금 늘리는 것만을 위해서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이 싫어"서, 스스로 대안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런 김 목사에게 새롭게 와닿는 개념이 있었다. 바로 '하나님나라'였다. 흔히 기독교인은 하나님나라를 '죽어서 가는 천국' 또는 '교회 공동체' 정도로만 이해한다. 김 목사는 여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도 하나님나라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하늘의 뜻인 정의·평화·평등·공의 등의 가치가 현실에서도 실현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역과 일을 동시에 하며 하나님나라를 만들기 위한 '씨앗' 뿌리기에 나섰다.


▲ 보수 교단 소속이지만, 그의 사역은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이 땅'에서도 하나님나라를 실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2013년 추수감사절 이후 본격적인 '선교회'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 구성원은 김디모데 목사 혼자였다. 선교회 이름은 '예수그리스도와하나님나라운동'(예하운)으로 정했다. 3가지 원칙도 세웠다. △다른 선교회가 안 하는 사역에 집중하고 △후원자에 의존하지 않고 △비기독교인들이 감동받을 수 있는 일을 찾기로 했다. 선교회를 시작하면서 사무실 마련이나 전임간사 고용은 단 한 번도 고려하지 않았다.

예하운을 설립한 이듬해 2014년, 세상을 충격에 빠뜨린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다. 예하운은 다른 선교회가 하지 않는 일을 찾았다. 참사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안산 단원고 생존 학생들이 7월 15일 안산에서 국회까지 도보 행진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 목사는 지인들에게 단원고 생존 학생들과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얼음 생수와 양산을 준비해 나와 달라고 했다. 10여 명이 자원했다. 단원고에서 학생들과 함께 출발하거나, 중간 지점에서 합류한 사람도 있었다. 예하운의 첫 번째 프로젝트였다.

"그 무더위에 (생존) 학생들이 '우리 친구들의 억울한 죽음, 진실을 밝혀 주세요'라는 깃발을 들고 40km를 행진했어요. 순수하게 힘을 실어 주고 싶었어요. 옆에서 조용히 걷는데 한 친구가 '아저씨는 누구세요'라고 묻더라고요. '교회 다니는 아저씨인데, 힘이 되어 주고 싶어서 나왔다'고 말했어요. 프로젝트에 동참한 분들은 이렇게라도 도울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좋아했어요."

두 번째 프로젝트는 우연치 않게 이뤄졌다. 2015년 11월경 은행에서 일을 하던 김 목사는 파키스탄 출신 부부를 만났다. 영어로 대화를 하던 중 남편이 목사라는 사실을 알았다. 로빈 바켓 가족은 극단주의 이슬람 무장 단체의 종교 박해를 피해 2015년 10월 한국에 입국한 상황이었다. 김 목사는 반신반의했다. 파키스탄에 기독교인 목사가 있고, 핍박을 받아 한국으로 피난 온 것 자체가 신기했다. 실제로 확인한 결과, 로빈 바켓 목사는 파키스탄 기독교 방송국에서 방송 설교도 하고 왕성한 활동을 해 왔던 사람이었다.

선교 단체 중 기독교 난민을 제대로 서포트해 주는 곳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김 목사는 두 번째 프로젝트 '디아스포라'를 기획했다. 단칸방에 지내는 로빈 목사의 다섯 식구를 위해 소셜미디어에 후원자를 모집했다. 이후 방 두 칸 월세집을 마련해 주고, 의료비·생계비·교육비 등을 지원했다. 로빈 목사 가정이 한국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게 노력했지만,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로빈 목사 가정은 미국으로 이주할 예정이다. 예하운은 이를 계기로 '기독교 난민'이 존재하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알리고 있다.


▲ 김 목사는 우연히 알게 된 로빈 바켓 가족을 계속해서 지원해 오고 있다. 사진 제공 김디모데

예하운의 프로젝트는 장르를 뛰어넘는다. 이모티콘으로 말하는 시대. 김 목사는 그림으로 친구를 위로해 준 일을 계기 삼아, 이모티콘 제작에 뛰어들었다. 누군가에게 위로와 용기를 줘야 한다는 생각 아래 미디어 전문가들과 손을 잡았다. 예수 이미지 70개를 바탕으로 작업에 돌입했다. 어떤 이미지가 나은지 그때그때마다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비기독교인 1,000명, 기독교인 1,000명이 설문 조사에 참여했다.

김 목사는 처음부터 카카오톡에 예수 이모티콘을 넣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종교 색채가 들어간 이모티콘은 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내세운 카카오톡은 거듭된 설득 끝에 지난해 11월 이모티콘을 출시하기도 했다. 이모티콘 판매 수익금은 해외 선교사, 농어촌 교회 및 기독교 피난민 가정 지원금으로 사용하고 있다.

예하운의 프로젝트는 다양하다. 탄핵 정국 당시 촛불 집회에 나온 대학생들에게 손난로 5,000개를 지급하고, 성탄 카드 판매로 벌어들인 수익금 100여 만 원을 '세월호특조위'에 지원하고, 영어·일어·중국어 등 10개국 언어로 된 '만화 전도지'를 출판사와 함께 협업해 제작·보급해 오고 있다. 성경 만화를 미자립 개척교회 주일학교에 무료로 보급하기도 한다. 번듯한 사무실도, 전임간사도, 예산도 없지만, 하나님나라를 위한 '사역'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사무실은 편의점과 24시 카페로 대체했고, 프로젝트 홍보와 예산 편성은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했다.


▲ 김 목사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예수 이모티콘'. 수익금은 해외 선교사와 농어촌 교회 등에 쓰인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보수 교단에 몸담고 있지만, 김 목사 사역은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그가 생각하는 하나님나라는 이데올로기도,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그래서 예하운의 프로젝트는 정치·사회·문화·역사 등 다양한 영역의 주제를 다룬다. 이 때문에 일부 기독교 진영에서 갖은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이중직 목회 자체가 지질하니 떠벌리지 말라"부터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들과 함께했다는 이유로 "빨갱이 좌파 목사"라는 소리도 들었다. 카카오톡 예수 이모티콘을 만들 때는 "그까짓 게 무슨 문화 사역이냐 돈벌이 삼지 말라"는 욕을 먹고, 촛불 집회 때 시민들에게 손난로를 나눠 줬다가 "종북 세력에 놀아나는 또라이 목사"라는 비난을 받았다. 세월호 특조위를 도왔을 때는 몇몇 선교사로부터 "차라리 아프리카 굶주리는 애들이나 도우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이런 기독교인을 향해 김 목사는 말한다.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한 사역과 프로그램은 이미 많은 교회와 선교 단체가 잘 감당하고 있어요. 포화 상태예요. 하지만 비기독교인이 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는 '사역'은 많지 않아요. 예수님의 사랑을 알기도 전에 복음이 무엇인지 깨닫기도 전에 교회에 환멸을 느껴 '개독'이라 욕하고 떠난 사람들에게 다시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사도의 길이고, 예수를 따르는 제자의 길이지 않을까요."

예하운의 프로젝트는 계속된다. 지금은 독립운동 유가족과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일일 카페를 기획 중이다. 기획 아이디어의 원천은 다른 선교회가 하지 않는 일을 찾는 것에서 시작된다. 김 목사는 이 모든 일이 복음 전파와 관련 있다고 말했다.

"다수의 교회가 죽어서 가는 내세 천국만을 외치는 바람에, 이 땅 그리스도인이 이뤄 가야 할 하나님나라의 가치들은 소홀히 여기고 있어요. 저는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내세 천국'과 '교회 공동체', 그리고 '이 땅'이라는 3가지 개념이 서로 유기적으로 가야 한다고 봐요.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는 내용은 웬만한 비기독인들도 거의 알고 있어요. 그러나 그 천국의 가치들이 무엇인지 그들에게 직접 눈으로 보여 주는 그리스도인은 많지 않아요. 우리가 삶으로 그 가치들을 보여 줘야 하지 않을까요." (본보 제휴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7년 7월 22일, 토 9:4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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