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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Massacre in Korean war 071217
"어릴 적 집집마다 같은 날 제사인 것 알고 충격"
[인터뷰]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의 기록> 펴낸 정찬대 기자


(서울=오마이뉴스) 김성수 기자 = 정찬대 기자는 대학에서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뒤 시사월간지 정치부 기자로 언론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다양한 매체에서 정치 현장의 기록자로 지내왔다. 특히 지난 2007년부터 여순사건과 관련해 전남 구례 지역 민간인 학살 사건을 취재하면서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의 역사' 문제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현재에도 전국을 다니면서 민간인 학살 관련의 역사를 취재·발굴 중이다.

나는 정찬대 기자를 직접 만나 본 적은 없다. 단지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와 함께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 작업에 참여하면서 한국현대사 문제에 대한 생각과 의견을 교환할 수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그가 쓴 민간인 학살에 대한 글을 전부 탐독할 수 있었다.

지난 노무현 정부 시절 나는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문제를 조사한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일한 적이 있다. 당시 정찬대 기자가 민간인 학살 사건 조사관으로 진실화해위원회에 합류했더라면 민간인 학살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많은 공헌을 했을 터인데라는 아쉬움이 든다.

그런 그가 최근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에 관한 책을 펴냈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으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다음은 지난 5월부터 약 한 달간 '텔레그램'으로 그와 인터뷰 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저자 정찬대 기자 ⓒ 정찬대

- 최근 <꽃 같던 청춘, 회문산 능선 따라 흩뿌려지다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의 기록: 호남·제주편>을 출간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에 관심 갖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아울러 저자의 고향인 전남 영암에서도 학살의 피해가 컸던 것으로 안다. 집안 어른이나 이웃들 중 억울하게 희생된 분이 있다면 말해 달라.
"책에 소개된 영암 금정면 연보리(연산부락)가 고향이다. 냉천부락에서의 피해는 (책에 잘 나와 있어) 따로 언급하진 않겠다. 어릴 적 집집이 같은 날 제사인 것을 알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어른들이 '해병대가 사람들을 죽였다'고 했을 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학살'을 좀 더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2007년 여순사건 관련, 구례지역 민간인 학살을 취재하면서 이 문제에 더욱 빠져들게 됐다. 전국적인 취재를 기획한 것도 이때 시작됐다. 실천에 옮기기까지는 몇 년의 시간이 더 걸린 것 같다."

- 어떤 이유에서 시간이 걸린 것인가?
"제도권 언론에서 이 문제를 장기 프로젝트로 다루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의미 있는 작업이지만 여러 측면에서 쉽지가 않다. 2015년 인터넷 매체인 <커버리지>를 창간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더 늦기 전에 학살 문제를 다뤄야겠다는 생각에 내가 직접 언론사를 만든 것이다. 물론 재정적인 측면에서 회사를 유지하는데 큰 어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커버리지> 덕에 30대의 끝자락을 아주 뜨겁게 보냈던 것 같다."

- 책에서는 호남·제주지역 학살 사건만 다뤘는데, 이유가 있나? 아울러 향후 타 지역의 학살 사건도 다룰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의 기록>은 애초 전5권으로 기획됐다. △호남·제주편 △영남편 △충청편 △서울·경기편 △강원편이 그것이다. 매년 6월, 순차적으로 책을 낼 계획인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늘 변수는 있기 마련이니. 영남지역 일부는 이미 취재에 들어갔고, 본격적인 지역 취재활동은 8월 이후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현장에 다녀보면 생존자 대부분이 돌아가셨거나, 한국전쟁 당시 나이가 어려 그날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늑장을 부린 만큼 그분들과 만날 기회 또한 줄어든다고 생각하니 더욱 조바심이 난다."

"이 책은 역사 기록이 아니다. 사람의 이야기이다"


▲ <꽃 같던 청춘, 회문산 능선 따라 흩뿌려지다> ⓒ 한울

- 책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
"'사람'이다. 이 책은 역사 기록이 아니다. 사람의 이야기이며, 그 질곡에서 출발했다. 그분들의 한(恨), 슬픔, 상처, 눈물을 기록하는 것이 이 작업의 본질이다. 그래서 한 분 한 분의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분들의 삶이 또 다른 역사란 점에서 이 이야기는 가슴 저미도록 시린 우리 역사이자 통한의 기록인지도 모르겠다."

- 책에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 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책과 연관 지어 설명해 달라.
"삶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는 것만큼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는 것, 결국 한 인간의 소멸을 의미한다. 존재의 이유를 대단한 것에서 찾을 필요는 없다. 내 가족, 친구, 또는 나 스스로를 위한 그 어떤 것도 존재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선배 수감자' 브룩스는 가석방된 뒤 자살로 생을 마감한 반면, 앤디(팀 로빈슨 역)와 레드(모건 프리먼 역)는 끝내 자유의 몸이 된다. 이들의 가장 큰 차이는 삶에 대한 희망과 인간다움의 갈망이다. 비전향장기수만 하더라도 2년 갱신, 2년 갱신으로 평생을 한 평 감옥에서 생활했다. 가족을 만날 수 없다는 비통함, 평생 감옥에서 살아야 한다는 절망감이 결국 삶의 끈을 놓게 만들었다."

-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의 현장에 미군들이 함께 있었거나 학살 장면을 목격 혹은 방조했다는 기록이 있다. 학살 당시 미군의 관여는 어느 정도였을 것으로 파악하나?
"미군정기에 일어난 제주 4·3사건이나 미군의 진압작전이 개입된 여순사건, 한국전쟁 당시 작전지휘권이 미국으로 넘어간 상황에서의 학살 사건은 분명 미국에 책임 소재를 물을 수 있는 부분이다. 미군에 의한 직접적인 학살 사건도 다양하게 보고되고 있다. 영동 노근리 사건, 단양 곡계골 사건, 예천 산성동 폭격 사건, 이리역 폭격 사건, 포항 미군 폭격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니 북한은 또 오죽했겠는가. 미군은 이른바 '교살작전'을 통해 북한 전역을 원시 상태로까지 돌려놓으려 했다. 미군에 의한 북폭의 범위와 대량 살상을 짐작케 한다.

인천상륙작전의 전과만 기억되지 당시 자행된 인천·강화지역 미군 폭격 사건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남한이 미(美)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보관된 '베트남전을 위한 한국전쟁의 교훈'(1966년 CIA 작성문건)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사용된 네이팜탄만 무려 3만2천357t에 달한다. 어떤 지역은 미군 폭격에 산봉우리가 사라진 곳도 있다. 그럼에도 미국은 여전히 책임지지 않고 있고, 한국 정부도 여기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비뚤어진 역사관을 지닌 이들이 정계, 재계, 공직, 학계에 무수히 박혀 있다"


▲ 제주 다랑쉬오름에서 바라본 아끈다랑쉬오름. 1948년 10월 제9연대장 송요찬은 5km 이상 중산간지역의 통행금지를 명령하면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대토벌 작전을 본격화했다. ⓒ 정찬대

- 이명박 정부 시절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이던 이영조씨는 미국에서 열린 국제학회에서 제주 4·3항쟁을 "공산주의자들이 주도한 폭동"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관련기사: "제주 4.3은 폭동·광주 5.18은 민중반란"). 현장에서 제주4·3의 목소리를 직접 취재한 기자로서 관련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과거사 청산을 한 적이 없다. 친일 부역자가 해방 후 친미로 둔갑했고, 이것이 다시 보수 기득권화됐다. 그와 같은 역사 인식을 가진 이들이 버젓이 사회 지도층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분노하고 두려워해야 한다. 뉴라이트 친일 역사관이나 박근혜 정부 시절 논란이 된 국정교과서 문제도 마찬가지다.

비뚤어진 역사관을 지닌 이들이 정계나 재계, 공직, 학계에 무수히 박혀 있다. 그런 인식을 갖고 있는 자들이 과거사를 올바르게 규명하고 밝히기 위한 수장 자리에 앉혀진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지난해 일본의 한 역사학자와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 학자는 "해방 후 친일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한국은 지나왔고, 과거 친일파로 활동했던 이들이 여전히 부를 축적하고 권력을 쥐는 현실이 가장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관련기사: 일본인 노학자도 위안부 한일협정에 분개했다). 권력은 그렇게 해방 후 우리 역사를 희롱하고 윤간해왔다."

- '감옥 안 감옥'이라고 불리던 '대전형무소 특별사동'은 어떤 곳인가?
"1955년 대전형무소에서 좌익수에 의한 '조직 사건'이 일어났다. 각 작업장에 세포조직이 만들어졌고, 집단 탈옥조가 꾸려지기도 했다. 탈옥은 미수에 그쳤지만 '조직 사건'은 어쨌든 사회적으로도 적잖은 충격을 던져줬다. 이후 비전향자들만 따로 수감된 '특별사'가 만들어졌고, 좌익수들은 더 엄격하고 엄혹하게 다뤄졌다. 당시 특별사동 보루대 지하에는 취조를 위한 별도 공간이 마련돼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비전향장기수들 증언에 따르면 이곳에서 온갖 구타와 고문이 이뤄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박정희 정권의 전성기인 지난 1970년대 초 교도소 안에는 '떡봉이'가 있었다고 했는데 '떡봉이'가 무엇인가?
"1970년대 초중반 '20년 형'을 받은 좌익수들의 출소를 앞두고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의 전향 공작은 본격화됐다. 1973년 8월2일 법무부 예규 108조 '좌익수형수전향공작전담반운영지침'이 시달됐고,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전향 공작을 직접 통제·관리하기 시작했다. '떡봉이'가 생긴 것도 이즈음이다. 교도소 내 폭력범으로 채워진 떡봉이는 '사람을 떡매질하듯 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향공작 담당 반원으로 불린 이들에게는 전향서 한 장당 얼마만큼의 수고비까지 따랐다.

비전향장기수들은 밤낮 떡봉이에게 불려나가 살인적인 폭행과 고문, 학대를 당했다. 온갖 구타와 고문으로 살갗이 벗겨지고 기절하는 이들도 속출했다. 그러면 감방 안에 쳐 넣고 또 다른 좌익수를 불러내 '전향하라'며 족쳤다. 1974년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최석기씨는 폭력범 재소자에 의해 폭행당한 뒤 사망했고, 박융서씨도 온갖 구타와 바늘에 찔리는 고문을 받고 옥중 자살했다. 교도소 내 좌익수들은 죽어도 그만, 살아도 그만인 존재였다."

"목이 베어 덜렁거린 상태에서 분뇨를 먹었다"


▲ 국립임실호국원 왼편 산기슭에 위치한 임실군 강진면 백련리 구운광산 입구. 이 굴에서 주민 수백 명이 매캐한 연기에 질식해 목숨을 잃었다. 희생자 중에는 갓난아이도 포함돼 있었다. ⓒ 정찬대

- 책 본문 중에 '분뇨 먹고 나는 살았다'는 생존자 얘기가 있던데, 이 분은 어떻게 분뇨를 먹고 살아났는지 궁금하다?
"남원에서 있었던 일본도 참수 사건인데, 19명의 참수자 가운데 유일하게 생존한 분이었다. 목이 잘리고 뒷덜미가 모두 파인 상태에서 화장실까지 벅벅 기어가 사신 분이다. 목이 베어 덜렁거린 상태에서 분뇨를 먹었는데, 식도에 변이 넘어가는 순간 살았음을 실감했다고 한다. 현재는 작고하셔서 그 분의 아드님과 인터뷰 했는데, 군인들에게 아버지가 끌려갔을 당시 7살 나이로 현장에서 이를 지켜본 분이다. 그들의 한(恨)과 상처는 우리가 쉬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깊다."

- 지난 2015년 인터넷 매체 <커버리지>를 창간했는데 안타깝게도 지난해 말 이 매체가 폐간된 것으로 안다. 어떤 사연이 있었나?
"박근혜 정부가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신문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5인 미만 인터넷 언론사 강제 폐간'을 입법화했다. 정부 비판적인 목소리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란 각계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를 강행했다. 그리고 관련법 규정에 따라 <커버리지>가 폐간됐다. 그런데 폐간 사흘 만에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내려졌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복간을 문의했지만, 재등록해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개점휴업' 상태가 됐다. 조만간 홈페이지를 리뉴얼해서 <커버리지>의 재기능을 찾을 계획이다. 그것이 블로그냐, 인터넷 매체냐는 중요하지 않다."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현재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에서 민간인 학살 분야 조사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다음 학기부터 성공회대학교 일반대학원 사회학과에 다니게 되는데, 관련 작업을 하면서 공부하는 시간도 함께 가질 계획이다. 이외에도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의 기록-영남편>을 준비해야 하고, 아직은 요원하지만 '호남·제주편'에 소개된 조선노동당 각 도당(전북 순창편)의 스토리를 중심으로 한 소설도 계획 중이다.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바쁘게 움직일 것 같다."

* 정찬대 기자는 대학 졸업 뒤 줄곧 정치부 기자로 활동했다. 2015년 인터넷 매체 <커버리지>를 창간했으며, <프레시안>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기사와 칼럼 등을 쓰고 있다.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의 기록'은 저자의 고향인 전남 영암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한 궁금점에서 출발했다. 이후 2007년 여순사건 관련, 전남 구례지역 민간인 학살 사건을 취재하면서 이 문제에 더욱 천착하게 됐다. 현재 전국을 다니며 관련 사건을 취재·발굴 중이며, 성공회대학교 한홍구 교수와 함께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 작업에 참여 중이다. 성공회대학교 민주자료관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한 바 있는 저자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수집 자료를 정리·분석하는 작업을 도맡기도 했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7년 7월 14일, 금 6:2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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