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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생활 에세이
 
The Korean ramie clothes which the first lady wore 071217
김정숙 여사의 푸른 모시에... 그녀들을 떠올렸다
[사는 이야기] 모시 짜서 생계 꾸렸던 저산팔읍 여인들의 이야기



▲ 저포조합 건물- 등록문화재 제364호 11900년대 부여군 홍산면에서 모시를 거래를 위해 세웠던 건물 ⓒ 오창경

(서울=오마이뉴스) 오창경 기자 =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패션이 연일 화제에 오르고 있다. 방미 중에 입었던 독특하면서도 세련된 의상들이 '패션도 정치다'라는 말까지 만들어 냈다.

트럼프 대통령 부부와 만나던 날 김정숙 여사가 입었던 기품 있는 한복의 자태가 멜라니아 여사와 대비를 이루면서 외교의 품격을 한층 높여주었다. 김정숙 여사가 입었던 한복은 천연 염색을 한 모시옷인 것 같아서 알아보니 역시 그랬다. 김정숙 여사의 모시 한복 두루마기는 우아함과 기품이 넘쳤다. 무엇보다도 충청도 산골 마을의 이름 모르는 어르신이 짠 모시옷이 외국 유명 디자이너의 브랜드 명품 옷과 나란히 서 있는 모습에 더 감동했다.

자연스러운 색감과 몸이 움직이는 대로 생기는 구김마저 멋이 있는 게 모시옷이다. 옷이 바람을 품고 있는 것 같아서 여름에 시원하고 멋이 있다.


▲ 임양순 (84세) 부여군 홍산면에서 유일하게 모시를 짜는 여인. 노령연금이 지급되면서 모시를 짜는 여인들이 급격히 줄다가 현재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 오창경

내가 모시옷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동네에서 모시를 짜는 여인들을 직접 보게 되면서다. 시골살이하러 충남 부여에 처음 정착한 20여 년 전에는 동네 집마다 베틀이 있었고, 농사일보다 모시를 짜서 파는 일이 가계 경제 활동의 중심이었다. 아직도 베틀에 앉아 모시를 짜는 여인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도 신기했고, 모시를 짜서 시장에 내다 파는 경제활동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더 신기했다.

지금은 한산 세모시가 국가적인 브랜드가 됐지만 모시는 '모시 저(紵)'자가 들어간 저산팔읍에서 보부상들을 통해 주로 유통됐던 옷감이다. 저산팔읍이란 홍산, 부여, 임천, 비인, 한산, 서천, 남포, 정산(은산) 등 8개 지역을 말한다.

이 지역의 여인들은 낮에는 밭일을 하고 밤에는 모시를 짜서 생계에 보태며 살아왔다. 모시를 재배해서 짜는 여인들이 얼마나 많았으면 지명에까지 '모시 저'자를 넣을 정도였다. 지금도 모시를 짜는 여인들은 손주들의 피아노를 사준다거나 대학 등록금을 보태주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가지고 모시를 짜고 있다.


▲ 베틀에서 짜고 있는 모시. 모시는 천연 섬유이기 때문에 한 필의 모시를 짜기 위해서는 습도 조절 등이 잔손질과 품이 많이 든다. ⓒ 오창경

모시를 짜는 일은 중노동이다. 베틀에 앉아서 모시를 짜는 여인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동양화처럼 우아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베틀에 올라가서 씨실과 날실을 교차하면서 한 필의 모시를 만드는 일은 마지막 공정이다.

그 한 필의 모시를 짜기 위해 베틀에 오르기까지는 모시풀을 재배해 모싯대만 수확해서 째고 말려서 한 올씩 이어 꾸리로 감고, 콩풀을 먹여서 나르는 등의 손품이 많이 가는 과정들을 거쳐야 한다.


▲ 임양순(84세)-모시짜는 여인 모시 옷을 입고 계셔서 모델 포즈를 취해보게 했다. ⓒ 오창경

모시를 짜는 과정을 지켜보면 차라리 모시옷을 입지 않고 말겠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노동력이 소모된다. 요즘 세대들은 결코 감당하지 못할 노동력과 정성에 수학적 지능도 겸비해야 한다. 가는 모시실을 한 올씩 세어 북과 바디에 끼우는 일을 과연 오늘날의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을까.

저산팔읍에 사는 여인들이 며칠씩 밤을 지새우며 짠 모시는 장날이 오면 남자들의 봇짐에 실려 장터로 떠난다. 충남 부여군 홍산면에는 저포조합이 있어서 홍산 장날마다 3천여 필의 모시가 거래됐다고 한다. 모시를 짜는 3월에서 6월까지의 모시 거래 실적이 그 정도였으니 당시의 홍산 장의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한산 장에서는 가는 모시로 짠 세모시를 주로 유통해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홍산 장은 모시 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모시 짜는 여자를 아내로 둔 남자들은 장날마다 모시를 판 돈이 주머니에 두둑했다. 예나 지금이나 일부 남자들은 주머니가 두둑하면 '딴 마음'을 먹기 마련이고, 그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이들이 따르기도 한다. 홍산 장에서 각 마을로 돌아가는 길목에는 맛 좋은 술을 파는 주막이 많았다고 한다.

지금도 모시를 짜는 동네 할머니들에게 젊은 시절 모시 판 돈을 주막에 갖다바치던 남편들의 만행을 물어보면 입에 거품을 물곤 한다.

"잠자리 날개같이 짠 모시를 뽀얗게 표백해서 모시 두루매기(두루마기)까정 해 입혀서 장에 보냈더니 주막 여인하고 눈 맞아서 내가 을매나(얼마나) 보글이를 챘나 몰러(속을 끓였나 몰라)…."

"쫓아가서 머리끄덩이를 확 잡아서 작신 두들겨놓지 그랬어요."

"시어른들도 계시고 애들 체면도 있구헌디 그럴 수가 있나. 내가 손에서 모시를 내려놓으면 식구들 다 굶기는 줄 알았지…."


▲ 모시 옷을 입은 남성 조수연(61세) 홍산면 사무소에서 만난 모시 옷을 입은 분으로 아직도 저산 팔읍에서는 모시 옷을 입을 분을 만날 수 있다. ⓒ 오창경

모시는 여인네들의 한이 담긴 옷이다. 아니, 방직기계가 나오기 전 모든 옷감을 짜는 행위, 길쌈질은 옛날 여인들의 한과 눈물까지 씨실과 날실로 엮는 일이었다. 일일이 수작업으로 해야 하는 까다로운 공정과 극심한 노동력이 요구되는 모시옷은 오늘날에는 대중적으로 입을 수 없는 옷이 되었다.

모시옷을 찾는 사람도 줄었지만 모시를 짜는 여인들도 점점 찾아보기가 어렵다. 우리 동네에서도 한 때 잘 나가던 모시를 짜는 여인들이 더 이상 베틀에 오를 수가 없게 됐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제는 모시 축제에서나 모시 짜는 공연을 하는 배우들만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7년 7월 13일, 목 10:4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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