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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족/통일
 
NK visit 23
북한 최고 여가수 딸의 탈북
[수양딸 찾아 북한으로 24] 평양에서 만난 고 정주영 회장


(LA=오마이뉴스) 신은미 기자 = 10월 11일, 아침 늦게 일어났다. 몸살기가 있다. 우산도 없이 빗속 추위에 떨었으니 그럴 수밖에. 안내원 경미에게 오늘의 일정을 물으니 오후부터 실내·실외 음악 공연 참관이 있다고 한다. 기자의 자격으로 취재차 가는 것이냐고 묻자 실내 공연의 경우 방문객 자격으로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란다. 밤에 있을 실외 공연은 개인 참관인 자격으로 가도 좋고 취재차 가도 좋다고 한다.

아직도 어제의 열병식 장면이 머리에 남아 눈앞에 어른거린다. 탱크와 장갑차 그리고 미사일을 실은 트럭에서 내뿜던 휘발유 탄 냄새가 코끝에 머물러 있다. 포탄의 불바다가 휩쓸고 간 전장에 남아있는 불씨에서 실같이 품어나오는 연기의 냄새가 바로 이런 것인가.

오전엔 아무 일정이 없다. 점심식사를 하러 가려고 호텔을 나서니 비가 내린다. 함께 추위로 고생한 경미를 위해 따뜻한 음식을 잘 하는 곳으로 안내를 부탁했다. 도착한 식당에서 온반을 잘 한다고 하여 평양온반을 주문했다.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께서 아침 식사로 드신 것으로 기억을 한다.

돌아오는 길에도 여전히 비가 흩날리고 간간이 바람이 몰아치기도 한다. 남편도 몸상태가 영 좋아 보이질 않는다. 웬만해선 약을 먹지 않는 사람이 해열제를 찾는다. 오늘 밤 야외 음악회가 있다고 하는데 날씨가 궂으니 걱정이 된다.

류경정주영체육관서 본 '모란봉악단 연주회'


▲ '류경정주영체육관' 가는 길 ⓒ 신은미

충분한 휴식을 취했음에도 어제 열병식장에서의 추위 때문에 여전히 몸상태가 좋지 않다. 다행히 실내음악회를 가려고 자동차에 오르니 비가 그쳤다. 이내 청명한 가을 하늘의 따뜻한 ㅤㅎㅐㅊ볕이 차창을 타고 들어온다. 신호등에 걸려 줄지어 서 있는 택시들을 바라본다. 마치 서울의 도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 류경정주영체육관 ⓒ 신은미

지금 가서 관람할 공연이 '모란봉악단'의 연주회라고 한다. 공연장에 도착해 보니 '류경정주영체육관'이라고 적혀있다.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넘은 현대 고 정주영 회장이 지어주신 체육관일게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여러 번 본 적은 있으나 직접 들어가 보는 것은 처음이다.

소떼를 몰고 휴전선을 넘은 실향민. 북한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고 또 내 종교적인 신념을 다해 노력해 보아도 북한을 좋아할 수 없었던 나는 그분이 소떼를 몰고 가시던 장면을 약간은 불편한 마음으로, 아무런 감흥없이 무감각하게 바라보았다. 그 분의 성함을 따 이름지어진 이 체육관 앞에 서 있는 지금 나는 조용히 고개 숙여 그 분을 회상한다.

이북이 고향(강원도 통천)인 그 분은 집안의 소를 훔쳐 판 돈으로 서울에 와서 열심히 일한 끝에 재벌이 되었다. 그리고 1001마리의 소떼를 몰고 다시는 갈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고향땅을 밟는다. 설사 사업을 위한 일이었다 하더라도 작금의 꽉 막힌 남북관계를 고려할 때 당시 그 분의 방북이 시사하는 바는 실로 대단할 수밖에 없다. 만일 그 소떼방북이 지금 일어났더라면 나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그 장면을 바라보았으리라.

공연장 입구에서 남편 옷차림이 문제가 되었다


▲ 공연을 앞두고 관람객들이 입장을 하고 있는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의 특설 무대 ⓒ 신은미

공연장 입구에서 남편의 옷차림이 문제가 됐다. 양복 정장을 하지 않은 남편에게 다음 부터는 정장을 하고 오라고 공연장 여성 안내원이 주의를 준다. 그렇지 않아도 집 떠나기 전에 '양복을 한 벌 준비해 가는 게 어떻겠냐'고 했건만, 남편이 극구 반대했던 것을 떠올리며 핀잔을 주자 안내원 경미가 다음에는 자기 아버지의 양복을 가져올 테니 그걸 입고 가잖다. 게다가 남편이 손에 들고 있는 카메라가 문제가 됐다. 공연장 여성 안내원이 남편에게 말한다.

"그리고 선생님, 카메라는 저쪽에 가셔서 맡겨놓고 가십시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남편 특유의 '억지'가 시작된다.

"사진촬영이 안 되나요?"
"네, 그렇습니다. 연주에 방해가 돼서 그렇습니다."

"저~, 사실은 외신기잔데…. 절대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을 겁니다."
"실내공연엔 기자들도 사진을 못 찍게 되어있습니다."

"저~, 사실은 멀리서 온 해외동폰데 좀…."
"아~, 해외동포시군요. 조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고맙습니다. 자, 그럼…."

남편이 발걸음을 떼자 안내원이 급히 불러 세운다.

"어, 저, 동포 선생님, 기래도 카메라는 안 됩니다."

내가 공연장 안내원에게 "미안하다"고 대신 사과를 하고 남편의 팔을 끌어당겨 물품보관소로 향했다. '심통'이 있는 대로 난 남편은 안주머니에 있는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휴대전화로 찍겠다"면서 불평을 했다.

체육관에 들어서니 관람객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체육관 한 쪽으로 대형 스크린과 함께 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텔레비전 중계 카메라들이 여기 저기 배치돼 있다. 관람객의 반은 '사민(민간인)'이고 반은 '군관(장교)'과 '전사(사병)'들이다. 막상 입장해 보니 남자들은 모두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이다. 여자들은 주로 한복으로 곱게 단장했다.


▲ 모란봉 악단 ⓒ 신은미

조선로동당 창당 기념공연이라서인지 연주하는 대부분의 곡들이 당을 찬양하는 노래들이다. 이념이나 사상을 내포하고 있는 노래라고 해서 모두가 군가풍의 경직된 곡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만일 가사를 듣지 않고 멜로디만 들을 경우 부드럽고 서정적인, 마치 영화음악같은 곡들이라고 느낄 만한 것들도 꽤 있다.


▲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는 조선인민군공훈합창단과 모란봉악단 ⓒ 신은미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치자 무대의 맨 앞줄에 도열한 가수들이 군대식 거수경례로 답례를 한다. 어렴풋이 기억하기에 모란봉악단은 인민군 소속으로 단원들도 군인들이라는 것 같다. 단원들의 군대 계급(북한에서는 '군사칭호'라고 부름)이 뭔지 궁금하다. 저 정도 실력이면 일반 병사 계급은 아닐 것 같다. 아마도 군관들이겠지 싶다.

악기를 다루는 솜씨와 노래 실력이 수준급이며 단원들의 미모 또한 빼어나다. 연주시 보여주는 몸동작도 상당히 세련됐다. 단원들의 기량을 고려해 볼 때 만약 이들이 서방의 음악을 연주한다고 해도 훌륭히 소화해 내리라는 확신이 든다.

무엇보다도 우리 민족이 갖고 있는 '끼'와 '흥'을 이들도 고스란히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이들이 서울을 방문해 남녘의 음악을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른다면 그 인기가 대단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훗날 남북관계가 좋아져 예술교류가 이루어진다면 이 모란봉악단을 제일 먼저 초청할 것을 추천하고 싶다.

강물 위에 또 다른 <아리랑 공연>

5시 조금 지나 시작한 모란봉 악단의 공연이 7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우리는 저녁식사도 거른 채 야외 공연이 벌어지는 대동강가로 향한다. 10월의 가을 밤 날씨가 영하로 느껴진다. 분명 이 정도라면 영하임이 틀림없다.

유난히 추위를 타는 남편은 발을 동동 구른면서 걷는다. "야외공연이 아마도 서너 시간은 될 텐데…"라며 경미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추위에 '서너 시간'이란 말에 나도 겁이 덜컥난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오늘 백두산의 기온이 영하 8도 라고 경미가 전해준다. 역시 북한이 춥긴 추운 모양이다. 공연자들이 걱정이 된다.


▲ 대동강물위에 설치된 초대형 무대 ⓒ 신은미

김일성 광장을 뒤로 하고 대동강가에 다다르자 강물 위에 설치된 초대형 무대가 입을 떠~억 벌어지게 한다. 강물 위에 이런 대형 무대를 설치한 것도 놀랍지만 이 야외공연의 총 출연자가 무려 만명이라고 한다. 강물 위에 떠 있는 또 다른 <아리랑 공연>을 보는 것만 같다. 어린이 출연자들이 북한의 애국가를 부르면서 화려한 공연이 펼쳐진다.


▲ 궤도에 오르는 로켓 화면 ⓒ 신은미


▲ 북송장기수들의 귀환 모습인 듯 싶은 화면 ⓒ 신은미


▲ 이인모 북송 장기수의 흉상 모습으로 보이는 화면 ⓒ 신은미

공연이 진행되는 사이 무대 뒤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는 여러 화면들이 떠오른다. 북한의 역사를 보여주는 흑백사진들로 부터 최근 쏘아 올린 인공위성이 지구를 돌고 있는 화면까지 다양하다. 그 중에는 북송 장기수분들이 송환되는 장면인 듯한 화면도 있다. 이인모 북송 장기수로 보이는 흉상의 화면도 등장한다. 북한에서 '신념의 화신'으로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 분들이다.

출연자들 중에는 내가 아는 가수들도 있다. 이탈리아의 로라 산타 세실리아 음악대학에 유학 중 제13차 주세페 디 스테파노 국제성악콩쿠르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한 알토가수 황은미가 그 중 한 사람이다.


▲ 숙청당했다고 알려진 가수 전혜영 ⓒ 신은미

'휘파람'이라는 북한가요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전혜영은 나를 깜짝 놀라게 한다. 왜냐하면 그녀가 숙청당했다고 언론에 보도됐기 때문이다. 그는 예전보다 체중이 더 늘어난 모습으로 열창을 한다. 목소리도 더 성숙해진 느낌이다.

'북한 스크린 뮤직의 여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인민배우 최삼숙도 출연했다. 북한 영화의 주제가는 대부분 그녀가 불렀다고 한다. 가수가 되기 전 공장의 여공이었다는 최삼숙은 마치 가냘픈 현악기에서 품어나오는 소리같은, 천부적으로 아름답고 고운 목소리를 갖고 태어났다. 44년 동안 무려 2800여 곡을 부른 그녀의 나이는 현재 65세. 여전히 고운 목소리를 간직하고 있다.

최삼숙은 옛 38선 이남인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언니가 서울에 살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아직도 생존해 있을런지…. 살아있다면 자신의 동생이 북한에서 유명한 '인민의 여가수'라는 사실은 알고 있을런지….

남쪽에 있는 최삼숙의 딸

2016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중국에 있는 북한식당에서 일하던 12명의 종업원들이 입국을 한다. 중국에 있는 북한식당 종업원들의 남한 입국을 놓고 남한정부는 '귀순'이라고 주장하고 북한 정부는 '유인 납치'라고 비난하는 가운데 북한에 있는 종업원들의 가족은 "어서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 달라"며 오열을 한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국가기관이 연관되지 않고서는 탈북자가 이렇게 빠른 시일내에 입국하고 또 이를 곧바로 발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입국한 지 10개월이 지난 지금 이들에 대한 의혹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더 커지고 있다. 심지어는 이들이 북송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하던 중 한 사람이 사망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한 재미언론사가 보도하기도 했다. 이렇듯 온갖 설이 난무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미 사회에 나와 한국생활에 적응해 나가고 있다는 한국 정부의 발표만 있을 뿐 이들이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하고 사는지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이들 12명 중의 한 사람이 바로 '북한 영화음악의 여왕' 최삼숙의 딸 리은경이다. 그녀는 지금 남한의 어디에 살고 있을까. 혹시 서울에 살고 있다고 알려진 그녀의 큰이모가 생존해 있다면 만나는 보았을까.

전시도 아닌 평화시에 가족과 헤어져 살아야 한다니…. 가족에게는 물론 자신에게도 크나큰 고통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남과 북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북한의 예술

북한의 음악은 사상과 이념을 떠나서는 이해할 수 없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것들도 많이 있다. 내가 한국서 강연 중 불렀던 <심장에 남는 사람>은 영화 주제가다. 공장에 취재를 나갔던 한 여 기자가 열심히 일하는 공장지배인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는 줄거리의 영화다. 그리고 여기서 '심장에 남는 사람'이란 공장 지배인을 말한다.

나는 2012년 북한 문화성의 초청을 받아 재미예술단 일원으로 평양 공연을 갔을 때 이 노래를 현지에서 급히 배워 부른 적이 있다. 북한측으로부터 불러 달라는 부탁을 받고 서둘러 준비해 불렀는데 당시 북한측의 말에 의하면, 다른 많은 남쪽 가수들도 불렀다고 했다.

가사도 좋고 또한 서정적인 멜로디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영화 주제가라고만 들었을 뿐 당시에는 이 노래가 어떤 배경을 갖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그 이후 나는 한국서 강연을 할 때 이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2014년 말 소위 '종북 콘서트'로 인해 검경의 조사를 받을 때 이것이 문제가 됐다.

검사는 내게 이 노래가 어떤 노래인 줄 아냐고 물었지만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다만 한국의 여러 유명가수들이 불렀었다는 점만 알고 있었을 뿐. 검사는 '심장에 남는 사람'이란 북한의 지도자를 말하는 것이라는 투로 나를 다그쳤지만 나는 그저 "한국의 여러 가수들도 불렀는데 왜 이게 문제가 되냐"고 반박할 수밖에 없었다. 후일 미국으로 돌아와 알아본 결과 이 노래의 배경에 대해 알게 되었다. 만일 당시 내가 이를 미리 알고 있었다면 보기 좋게 검사에게 반박을 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국악 공연 ⓒ 신은미


▲ 군복 차림의 출연자들 ⓒ 신은미
그러나 많은 곡들이 당과 지도자와 혁명을 위해 사상을 고취하는 노래들이다. 북한 음악의 키워드는 민족과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는 비단 음악뿐 아니라 모든 북한의 예술 분야 그리고 정치, 경제, 사회 분야에도 해당되지 않는가 싶다.


▲ 평양의 밤거리 ⓒ 신은미

밤 9시 정도에 시작한 공연이 다음날 새벽 1시가 넘어 끝났다. 출연자의 수, 무대의 규모, 공연시간 등 그야말로 대공연이었다. '명절'때라서 그런지 밤 늦게까지 차들이 분주히 오고간다. 저녁 식사도 거른 채 추위에 떨며 호텔로 돌아오니 새벽 2시 반이다. '쫄딱' 굶고 잠들 생각을 하며 로비에 들어섰는데, 아~, 이게 웬일인가! 밤 10시만 되면 여지없이 문을 닫는 식당이 열려 있는 게 아닌가. 행여 닫을까 싶어 뛰는 걸음으로 식당에 들어선다.

너무나 반가워 웨이트레스의 손을 부여잡고 감격해 말을 붙인다.

"아니, 어떻게 이 시간에 문을 열고 있어요?"
"오늘 공연이 늦게까지 있단 말입니다. 식사를 못하신 분들이 계실 거라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이구 고마워요. 고맙습니다."
"식사는 뭘로 하시겠습니까?"

추위를 녹이느라 시간이 좀 지난 뒤 주문한 음식은 냉면! 누군가가 냉면은 추운 겨울날 먹어야 제 맛이라더니 덜덜 떨면서 먹는 냉면맛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뜨거운 육개장을 먹으며 몸을 녹이는 안내원 경미가 떨면서 차가운 냉면을 먹는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후 난 방으로 돌아가 깊은 잠에 빠졌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7년 7월 07일, 금 5:4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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