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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
 
Life of President Mun 051017
문재인, 잘 알려지지 않은 7가지 일화
이야기로 풀어본 문재인 대통령의 발자취


(서울=오마이뉴스) 손병관 기자

5년 만의 복귀다. 18대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석패했던 문재인 후보가 19대 대통령으로 돌아왔다. 부산 지역의 인권변호사이자 시민운동가였던 문 당선자가 노무현 대통령의 권유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참여정부 국정운영의 중심에 선 지 14년 만의 일이다. 문 당선자는 어떤 사람일까? <오마이뉴스>가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7가지 일화로 그의 발자취를 정리했다. [편집자말]

① 2012년 대선 패배 후 정치를 접으려 했다?

"결과에 승복하고 패배를 인정한다. 저의 실패이지 새 정치를 바라는 모든 분들의 실패는 아니다."

2012년 12월 19일 자정을 넘기기 전 문재인은 서울 영등포 민주통합당 당사로 나와 '패배 승복' 기자회견을 했다. 많은 지지자들이 3.6%, 108만 표 차이의 패배를 두고두고 아쉬워하고 그를 만나는 자리에서 눈물을 뿌렸다.

정치권에서는 온갖 얘기들이 쏟아져나왔다. "봉하마을 노무현 묘역에 혼자 찾아가서 펑펑 울었다더라", "의원직 던지고 낙향 생각할 정도로 힘들어했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진실은 무엇일까?

문재인의 한 측근은 대선 패배 후 그의 행보에 큰 영향을 준 사건으로 한진중공업 노조 간부 최강서씨의 죽음을 꼽았다. 복직 후에도 158억 원의 회사 측 손배가압류에 시달렸던 최씨는 대선 이틀 뒤(21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후보가 2012년 12월 27일 오후 대선 패배 이후 첫 외부 일정으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최강서 조직차장의 빈소를 방문해 한 조문객에게 술을 따르고 있다. ⓒ 정민규

엿새 뒤 그의 빈소에서 신원불상의 조문객과 술잔을 주고받는 문재인의 모습을 현장에 있던 <오마이뉴스> 정민규 기자가 촬영했는데, 부산 지역구의 측근 A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때 찍은 사진에 모든 게 담겨있어요. 문재인은 그 사건을 겪으면서 책임감을 더 느꼈다고 봐야죠. 의원직 사퇴 얘기는 한 번도 입에 올린 적이 없어요. 지역구 주민들과의 약속이라는 게 있는데 그 상황에서 의원직 놓는 게 더 무책임한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아요."

해가 바뀐 2013년 1월 1일 문재인은 봉하마을 노무현 묘역 참배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다음날 문재인은 묘역에 혼자만 다녀갔다. 당시 그를 수행한 B씨는 "문재인이 속으로 울음을 삼켰는지는 몰라도 겉으로 드러내는 분이 아니다. 그때도 큰 감정의 변화를 얼굴에서 느낄 수 없었다"고 전했다.

그날 오후 문재인은 트위터에 헬렌 켈러의 말을 인용한 글을 올려 지지자들을 위로했다.

"비관주의자들은 별의 비밀을 발견해낸 적도 없고, 지도에 없는 땅을 향해 항해한 적도 없으며, 영혼을 위한 새로운 천국을 열어준 적도 없다."

B씨는 그해 2월 설 연휴에 부산 사상구의 아파트로 문재인을 찾아갔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거냐?"는 물음에 문재인은 단도직입적으로 답했다. "또 준비해야지"

2017년 문재인 드라마의 2막은 소리 없이 시작되고 있었다.


▲ 노무현재단은 2013년 1월 1일 김해 봉하마을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에서 '계사년 신년 합동 참배' 행사를 열었다. 사진은 참배를 마친 뒤 문재인 후보의 부인 김정숙씨가 시민들로부터 인사와 꽃다발을 받은 뒤 눈물을 훔치고 있는 모습. 김씨 오른쪽은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 윤성효

② "실망 말지어다. 다음 기회가...", 중학생 문재인이 '미래의 대통령'에게

"문재인은 재수 체질"이라는 우스개는 유명하다.

문재인이 서울대 상대에 떨어진 뒤 재수 끝에 1972년 경희대 법대에 입학했고, 사법시험도 한 차례 낙방한 뒤 1980년 2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문재인이 2012년 대선에서 떨어진 후에도 재도전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한 번의 실패에도 단념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는 낙천성은 타고난 것같다. 1967년 경남중학교의 문집 '쌍백선'에는 문재인의 경구가 실려 있는데, 그는 여기에 '실망하지 말지어다. 다음 기회가 또 있느니라'라고 썼다.


▲ 1967년 경남중학교의 문집 ‘쌍백선’에 실린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통령후보의 경구. ‘실망하지 말지어다. 다음 기회가 또 있느니라’라고 적혀있다. ⓒ 이재익 제공

마치 '중학생 문재인'이 대학입학고사와 사법시험, 대통령선거에 계속 미끄러질 '미래의 문재인'을 위로하기 위해 쓴 글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③ "부산은 문변에게 맡겨야...", 노무현의 '오래된' 구상

2003년 1월 12일 일요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부부는 서울의 모 한정식집에서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2012년 1월26일 작고) 부부와 오찬을 했다. 생전의 신씨는 노 대통령의 부산 후원회장이자 아들 건호씨 주례를 섰다. "그나저나 문재인 변호사는 어떻게 할 거요?"라며 먼저 얘기를 꺼낸 쪽은 신씨였고, 노 당선자의 답변은 이랬다.

"실은 내일(13일) 문변과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문변을 중앙에서 데려다 쓰려고 합니다. 내년 (총선에서) 부산 지역을 믿고 맡겨야 하는 점도 있고요."

노 당선자는 2002년 지방선거 때도 문재인에게 부산시장 출마를 권유했지만, 문재인은 끝내 거절한 전력이 있다. 그러나 문재인을 정치권에 영입해서 세대교체와 개혁의 상징으로 내세우겠다는 노 당선자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던 셈이다.

다음날 서울 사직공원 근처의 한정식집에서 노 당선자는 문재인, 이호철을 만났다. 노 당선자는 "달리 맡길 사람이 없으니 청와대 민정수석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둘의 대화는 3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문재인은 즉답을 회피했지만, 그를 옆에 두고 쓰겠다는 노 당선자의 뜻은 분명했다. 문재인도 자기 나름의 조건을 건 뒤에야 수락했다.

"민정수석으로 끝내겠습니다. 정치하라고 하지 마십시오."

문재인은 회동 이틀 뒤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내게 적합한 일이라면, 맡을 수도 있겠다. (노무현 정부가) 나를 필요로 하는 게 있다면 개혁쪽이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관련기사: 2003년 1월 15일, 문재인의 오마이뉴스 첫 인터뷰)

이후 역사는 문재인의 뜻대로 풀려가지 않았지만, 문을 이듬해 총선에서 바로 써먹겠다는 노 당선자의 구상이 실현되는 데는 그로부터 8년의 세월이 더 걸리게 된다.


▲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왼쪽)이 2007년 5월 3일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 본관을 나서고 있다. ⓒ 문재인캠프

④ "새벽부터 자정 넘도록 전화, 기자들 너무하지 않나요?"

청와대 민정수석 문재인은 참여정부 첫 해 양길승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향응 파문으로 위기를 만났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부속실장이 검찰 수사를 받던 청주의 나이트클럽 사장으로부터 청탁과 함께 술 접대를 받았다는 몰래카메라가 나오자 정치권이 들썩거렸다. 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노무현 측근비리 특별검사팀'이 구성됐지만, 특검은 2004년 3월31일 양씨가 수사와 관련해 어떤 압력이나 청탁을 행사한 정황 증거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발표했다.

사건은 흐지부지 결론 났지만, 그 과정에서 문재인과 민정수석실은 사건을 축소·은폐하려고 한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지금은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지나친 향응 접대가 법으로 금지됐지만, 청탁의 증거가 없는 한 술자리 자체를 단죄할 수 없다는 게 문재인의 판단이었다.

자기 나름대로는 취재에 성의껏 응하는 데도 청와대를 의심하고 비판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가 문재인을 더욱 격앙케 만들었다.

양길승 사건이 처음 보도된 7월 31일 공교롭게도 그는 2박3일 여름휴가를 떠난 상태였다. 오전 7시경 잠에 빠져있을 때 걸려온 석간신문 기자의 전화를 대신 받은 김정숙씨는 "(남편이) 잠을 자고 있어서 바꿔줄 수 없다"고 답했다.

이튿날 이 신문에는 '참여정부 기강해이 심각'이라는 제목으로 "휴가 중인 문재인 민정수석은 보도가 나간 지난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평창동집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공직사회를 감시하고 투명하게 만들어야 할 임무를 가진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한가롭게 휴가'다. 한마디로 도덕적 해이에 빠졌다"는 기사가 실렸다.

문재인은 8월 9일 청와대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언론에 느낀 섭섭함을 토로했다.

"저는 휴대폰 전화를 직접 받습니다. 그러다보니 기자들의 전화를 직접 받게 되는데, 그 때문에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때도 적지 않습니다. 문제는 새벽부터 밤 12시가 넘도록 전화를 하는 것입니다...(중략) 잠들어 있던 휴가일 새벽에 전화를 받지 않은 제가 잘못입니까, 그때 전화한 기자가 미안해야 할 일입니까? 취재할 때도 남의 사생활에 좀 신경을 써달라고 주문한다면 지나친 요구입니까?"

⑤ '잘 나가는 형' 때문에... 문재인 동생의 '비운'

2남 3녀 중 장남인 문재인의 다른 형제들에 대해서는 알려진 사실이 거의 없다. 특히 유일한 남자형제인 동생 문재익(한국해양대 해사대학 78학번)씨는 원양어선 또는 상선 선장을 하고 있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문재인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 들어가면서 가족들에게 말과 행동을 조심할 것을 신신당부했는데, 동료들에게도 신분을 쉬쉬하던 재익씨도 형에게 크게 혼난 적이 있다.

2007년 3월 문재인이 청와대 비서실장이 됐는데 당시 굴지의 대기업으로 승승장구하던, 재익씨 회사가 그를 해상직이 아닌 육상직으로 발령낸 것이다. 배를 타고 떠도는 해상직에 비해 출퇴근이 가능한 육상직의 매력은 분명했다. 그러나 소식을 들은 문재인은 재익씨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불호령을 내렸다.

"너를 그렇게 대우해도 너희 회사에 도움 줄 일은 없을 거다. 그러니 다시 배를 타러 나가라."

형의 호통에 재익씨는 회사에 보직 변경을 신청했고, 다시 바다로 나갔다. 문재익 선장은 사건 발생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배를 타고 있다.

⑥ 강연료 3만원 꼬박꼬박 챙겨간 문재인의 '반전'

그를 만나 함께 일해본 사람들에게 문재인은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한 사람'으로 통했다.

1994년 출범한 사단법인 노동자를 위한 연대(아래 노동자연대) 부설 노동상담소장으로 있을 때, 그를 지켜본 설동일(노동자연대 사무처장)씨는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변호사는 노조원 등을 대상으로 법률 강의를 자주 했어요. 다른 강사들은 책정된 강의료 3만 원을 사양하거나 뒤풀이 비용에 보태곤 했지만, 문 변호사는 꼬박꼬박 이 돈을 챙겨갔어요. 강의료는 자신의 합법적(?) 수입이니 꼭 받아가야 한다는 거죠. 뒤풀이에 참석해서도 그는 한번도 2차를 가는 일 없이 정해진 '1차 회비'만 내고 자리를 떴어요.

그러면서도 문 변호사가 매달 노동자연대에 개인적으로 낸 돈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전부 합쳐서 월 120만 원 정도 될 거예요. 아무리 변호사라도 1990년대 중후반에 그 금액이면 엄청난 것이거든요. 그 밖에 부산의 여러 지역단체에 낸 후원회비도 적지 않았을 거예요."

부산 변호사 시절에는 부인 김정숙씨가 아파트 청약 저축에 가입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크게 화를 낸 일도 있다. 영문을 모르는 부인에게 문재인은 "청약저축은 집 없는 사람들에게 우선 분양권을 주기 위한 제도이니 우리처럼 집 있는 사람들은 가입해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에는 아내에게 자신이 청와대에 있는 동안 백화점을 출입하지 말라는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래서 김씨는 자신들의 삶을 '부와 맞바꾼 자부심'이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⑦ 역사학자가 될 뻔 했던 문재인

학창시절 역사 과목을 가장 좋아했던 문 후보는 대학에서도 역사를 전공하고 싶었다.

그러나 담임선생님과 부모의 반대로 그는 경희대 법대에 진학했다. 나중에 변호사를 시작할 때 '나중에 돈 버는 일에서 해방되면 아마추어 역사학자가 되리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역사에 대한 그의 깊은 관심은 각종 언론 인터뷰에서도 드러났다.

1월 16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그는 "문재인이 당선되면 '칼춤'을 출 거라는 얘기가 있다"는 질문에 "최선의 복수는 적들과 다르게 되는 것"이라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스토아 철학자로 유명한 로마제국 황제)의 책 '명상록'을 인용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 로마제국 황제의 책을 언급한 이유를 묻자 그는 "어린 시절에만 해도 우리 세대는 그런 류의 책들을 필수적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고 자신을 낮췄다.

문재인 대통령은...
1953년 1월 24일 경남 거제 출생
1965년 부산 남항초등학교 졸업
1968년 경남중학교 졸업
1971년 경남고등학교 졸업
1972년 경희대학교 법대 입학
1975년 군부독재 반대시위로 투옥, 서대문구치소 수감
1978년 육군 병장(특전사령부 제1공수 특전여단) 만기 제대
1980년 경희대 법학과 졸업. 계엄령위반으로 투옥
1980년 사법시험 합격(22회)
1981년 김정숙 씨와 결혼(슬하에 1남 1녀)
1982년 사법연수원 수료(12기)
1987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부산본부 상임집행위원
1991~2003년 부산·경남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대표
1995년 법무법인 부산 설립
2002년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 부산시선거대책위원장
2003년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
2004년 대통령 시민사회수석비서관
2006년 대통령 정무특보
2007년 대통령 비서실장, 제2차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회 위원장
2009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의위원회 상임집행위원장
2010~2012년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2011년 혁신과통합 상임공동대표
2012~2016년 제19대 국회의원(부산 사상)
2012년 민주통합당 제18대 대통령 후보
2015~2016년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대표
2017년 더불어민주당 대통령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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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짐: 2017년 5월 12일, 금 6:4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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