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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YS Critical Biography 27
악명높은 6.8 부정선거에서 당선
[김영삼 평전 27] 60년대 야당의 최전선에서



▲1967년 6.8 총선에서 4선에 성공한 김영삼. ⓒ 자료사진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 (전 대한매일신보 주필) = 1964년 10 월 11일 국회에 복귀한 민중당 의원들은 의원 총회를 열어 탈당한 정성태 원내총무 후임 선출에 들어갔다. 후보 물망에는 김영삼을 비롯, 고흥문ㆍ유성권ㆍ이상돈 등 4명이 거론되다가 차례로 사퇴하고 12일 의총에서 무기명 비밀투표에서 재석 33인 중 29표를 얻어 김영삼이 총무에 선출되었다. 37세, 의정사상 최연소 야당 원내총무였다. 이때를 시작으로 다섯 차례 야당 사령탑인 원내총무에 피선되었다.

한동안 야당의 이합집산이 계속되었다. 1965년 6월 22일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되고 8월 14일 공화당 단독으로 이 조약이 국회에서 비준되자 이에 반발하여 강경파 윤보선ㆍ정일형ㆍ 정해영ㆍ정성태ㆍ윤제술ㆍ김재광 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하고 민중당을 탈당했다.

이들은 선명노선을 기치로 내걸고 1966년 3월 30일 신한당을 창당함으로써 야당은 다시 분열되었다. 김영삼은 윤보선과 가까운 사이였으나 함께하지 않고 당에 남았다. 야당의 분열은 공멸한다는 위기감때문이었다. 민중당은 7월 19일 전당대회에서 박순천을 당수로 선출하고, 7월 25일 의원총회에서 경선을 통해 김영삼을 원내총무에 재신임하였다. 재석 49명 중 김영삼 27표, 이상돈 19표였다. 김영삼은 세번째 원내총무가 되었다.

야당의 거듭된 이합집산은 시국관의 차이와 더불어 1967년 5월로 예정된 제6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헤게모니 전략도 작용하였다. 야당은 힘을 모아 박정희의 재선을 막아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사명을 안고 있었다.

선수를 치고 나온 사람이 윤보선이었다. 1963년 제5대 대선에서 15만여 표 차이로 박정희에게 패배한 윤보선은 대정부 강경노선을 걸으며 차기 대선에 대비하였다. 윤보선 계열은 1966년 3월 30일 신한당 창당대회를 열어 윤보선을 총재 및 차기 대선후보로 지명했다. 이후 신한당은 전국 각지에서 박정희 정권의 비리를 폭로·규탄하는 대중집회를 개최하는 등 대여강경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에 비해 민중당은 제1야당이면서도 박정희에 맞설 후보를 찾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그 무렵 고대 총장에서 물러난 헌법학자 현민 유진오가 민중당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었다. 제헌헌법 초안자이며 굴욕적인 한일회담에도 반대하는 등 학계는 물론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었다. 학자의 길을 걸어온 유진오를 민중당 후보로 영입하는 임무가 김영삼 총무에게 맡겨졌다.

정무회의에서는 결국 나에게 교섭권을 백지위임했다. 현민 유진오 선생은 대학시절의 은사로 평소 잘 알던 사이였다. 필동(筆洞)에 있던 현민 선생의 자택을 방문했을 때 나는 미리 입당원서도 챙겨 갔다. 나는 현민 선생에게 당내 사정을 소상히 설명하고, 긴 시간 얘기를 나누며 민중당 입당을 간곡히 권유했다.

현민 선생도 평화적 정권교체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민중당의 거당적 협력이 보장되면 입당을 수락할 뜻을 비쳤다. 입당이라지만 사실상 대통령후보 추대교섭이었다. 당수와 대통령후보를 함께 맡길 속셈으로 나는 입당을 권유했던 것이다. 나는 당시 당수이던 박순천 여사와는 1955년 민주당 창당 때부터 함께 했고, 1956년 대선 때 신익희 후보의 지원유세를 함께 다닌 일이 많았다.

한국 여성 정치가의 선구자인 박순천 여사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명연설로 청중의 심금을 울렸다. 그러나 박순천 당수·후보체제로는 정권교체라는 커다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역부족이었다. 선생도 차츰 내 설득에 귀를 기울여, 1966년 10월 20일자로 민중당에 입당했다. (주석 5 )

악명높은 6 8 부정선거에서 당선

민주당이 유진오를 대선 후보로 영입하면서 신한당의 윤보선과 야권의 후보 경쟁이 벌어졌다. 따라서 야당재통합 문제가 제기되고, 재야의 함석헌·장준하 등이 주선하여 1967년 초 윤보선ㆍ유진오ㆍ백낙준ㆍ이범석의 이른바 4자회담 이 성사되어 야당통합과 후보 단일화문제가 합의되었다.

이렇게 하여 탄생한 것이 신민당이다. 박정희 정권시기 제1야당이었던 신민당은 1967년 제6대 대선과 제7대 총선을 앞두고 1967년 2월 7일 민중당과 신한당의 통합으로 창당되었다. 신민당은 반독재와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2대 투쟁목표를 내걸었다.

창당대회는 4자회담의 합의에 따라 대선후보 윤보선, 당수 유진오를 선출하여 다시 통합야당의 기반을 구축하고, 27일 열린 의원총회는 김영삼을 원내 총무에 재신임하였다. 유진오를 영입하는 데 책임을 맡았던 김영삼은 비록 그를 대선후보로 추대하는 데는 실패했으나 통합 야당을 만든 것에 만족해야 했다.

1967년 5월 3일 실시된 제6대 대선은 야당에 크게 불리한 지형에서 진행되었다. 박정희의 농공병진정책과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는 반면 야당 윤보선 후보는 참신성이 떨어지고 갓 통합한 신생 신민당은 체계적인 선거운동을 펴기에 역부족이었다.

선거결과 116만여 표 차이로 박정희가 재선되었다. 투표성향은 여촌야도의 전통이 무너져 도시의 지식층과 근로계층에서도 여당후보 지지도를 나타내 4년 전의 남북현상에서 동서현상으로 바뀌었다. 이때부터 경상도 지역에서 박정희의 몰표가 쏟아져 나왔다.

손쉽게 재선에 성공한 박정희는 같은 해 6월 8일로 잡힌 제7대 총선에서 3ㆍ15 부정선거가 무색할만큼 관권 부정선거를 자행했다. 공화당은 박정희 대통령이 재선된 여세를 몰아 집권당의 입장에서 행정조직의 측면지원을 받은데다 풍부한 자금을 동원해 유리한 조건 아래 선거운동을 전개했다. 신민당은 자금ㆍ조직에서 열세를 면치 못했다.
공화당은 득표를 위해 유권자들에게 들놀이ㆍ친목회ㆍ동창회ㆍ화수회ㆍ부인계 등을 벌이게 하고 타월ㆍ비누ㆍ수저ㆍ돈봉투를 돌리는 등, 3ㆍ15부정선거를 뺨치는 광범위한 부패선거가 거침없이 자행되었다.

여야당은 안전세력 확보 와 공화당 독재 견제 를 선거구호로 내세웠으나, 정책이나 선거구호는 이미 관심밖이고 선심공세와 각종 탈법ㆍ폭력행위가 공공연하게 난무하는 타락상을 보였다.

6ㆍ8총선이 이렇게 타락선거로 시종하게 된 것은 공화당이 71년 이후를 내다보고 원내에서 개헌선을 확보하려는 속셈이 있었고, 야당은 결코 개헌선을 허용할 수 없다는 데서 과열경쟁이 나타나게 된 때문이다. 박정희는 이때 이미 장기집권을 구상하면서 재선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7대 국회에서 개헌을 감행해서라도 계속 집권할 생각에서 6ㆍ8총선을 무리하게 끌고간 것이다.

6ㆍ8선거는 5ㆍ3선거 때보다 불과 한달 만에 전국의 유권자 수가 78만여 명이 증가하는 등 유령유권자 조작과 온갖 부정 속에서 공화당의 일방적인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공화당은 당초에 목표한 대로 개헌선(117명)을 훨씬 넘는 130석(전국구 27명, 지역구 103명)을 차지했으며, 신민당은 44석(전국구 17명, 지역구 27명), 대중당이 1석(서민호)를 차지했을 뿐 나머지 군소정당은 단 1석도 얻지 못했다.

김영삼은 부산서구에서 출마하여 6만2천여 표를 얻어 4만3백여 표를 얻은 공화당의 박규상을 제치고 4선을 기록했다.

장준하ㆍ서민호 후보가 옥중당선되었으며 전국적 관심의 대상이었던 목포에서는 김대중 후보가 승리했다. 신민당은 6ㆍ8선거를 사상유례없는 부정선거로 규정하고 <부정선거백서>를 만드는 한편, 전면 재선거를 요구하며 6개월간 등원을 거부했으나 무위에 그쳤다.

<주석>
5> 앞의책, 227~228쪽.
 
 

올려짐: 2017년 5월 12일, 금 5:29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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