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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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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발정제' 홍준표, 사퇴할 만한 일일까?
[서평] 양파(주한나) 지음 <여혐민국>


(서울=오마이뉴스) 심혜진 기자 = 23일 열린 대선후보토론회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의 '돼지발정제' 사건이 토론 시작부터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정의당 심상정은 "성폭력 범죄를 공모한 후보를 경쟁 후보로 인정할 수 없다, 사퇴가 마땅하다, 홍 후보와 토론하지 않겠다"며 첫 발언을 시작했다. 국민의당 안철수와 바른정당 유승민도 "성폭력 모의는 용서할 수 없다", "홍준표 후보는 즉각 사퇴하라"며 강하게 밀어붙였다.

홍준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45년 전 어릴 때 이야기다. 직접 관여하지 않았고 하숙생 동기들의 이야기를 쓴 것일 뿐"이라며 이전에 했던 변명을 반복했다. 하지만 이 말은 그리 효과가 없는 듯하다. 올해 초 한 방송에서 '설거지는 하늘이 정해준 여자의 일'이라 말해 공개 사과를 했고, 몇 년 전엔 '둘째 부인 아들' 운운하며 재혼 여성을 비하한 사실도 속속 밝혀지면서 그의 여성관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선관위 1차 TV토론 참석한 홍준표 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중앙선관위 대선후보 초청 1차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아이 둘 키우며 고액연봉, 다 페미니즘 덕이다

다른 대선주자들의 말마따나 그의 발언들이 대선 후보로서 큰 문제가 되는 걸까? 그는 정말 대통령 후보의 자격이 없는 걸까? 아리송할 땐 역시 책이 답이다. 얼마 전 발간된 <여혐민국>(양파(주한나)지음, 베리북 펴냄)에 이와 관련한 내용이 실렸다.

책에 나온 한 사례를 소개한다. 누군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여성이 실험실에 있으면 세 가지가 일어난다. 먼저 내가 그들과 사랑에 빠지고, 그들이 나와 사랑에 빠지고, 그들에 대해 비판하면 운다."

홍 후보의 발언에 비하면 한결 부드럽다. 이 발언을 한 사람은 영국 런던대학교 생명과학과 명예교수인 팀 헌트이다. 발언의 진원지는 2015년 6월 9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과학기자대회'였다.

당시 <문화일보> 기사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그는 자신을 남성우월주위자라고 밝히며 "(나는) 동성 과학자들만 있는 실험실을 선호하고 여성들에게 방해받기를 원치 않는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이 사실은 트위터와 외신을 타고 영국까지 날아갔다.

반응은 어땠을까. 런던대학교는 바로 다음날 "팀 헌트 명예교수가 사임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런 걸 두고 '빛과 같은 속도'라 하는 모양이다. 어쩌면 '사직'이라는 말 앞에 '권고'가 생략되었을 수도 있다.

사실, 그는 2001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저명한 학자이다. 그가 누군가를 성추행 한 것도, 성폭행을 한 것도 아니다. 노벨상까지 받은 칠십대 교수가 단 한 번의 발언으로,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명예와 직업을 동시에 잃은 것이다. 교수에게 전 세계의 비난이 쏟아진 것은 물론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 사례는 기이하게 느껴진다. 성추행, 심지어 성폭행과 협박을 일삼은 교수들이 가벼운 징계 후 다시 대학에 돌아오고, 오히려 폭력을 당한 당사자가 불안에 지쳐 학교를 떠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말이다. 성추행을 당해 분노하면서도 '내가 너무 예민한가?' '이 정도로 분노할 만한 일인가?' '괜히 문제를 크게 만드나?' 하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한다.

한국사회는 성범죄를 저지른 (남성) 가해자를 감싼다. 이런 분위기에선 무엇이 옳은 길인지 확신하기 어렵고, 설사 안다 해도 발을 내딛기 어렵다. 어차피 가해자는 덜 처벌받고, 뒷감당은 오로지 피해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성추행을 명백한 범죄로 인식한 지도 몇 년 되지 않았는데 하물며 성차별적이고 여성혐오(여혐)적인 발언이야 더 말해 뭐할까. 그 범위와 실체를 두고도 말이 많다. 특히 다음과 같은 말들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몸매가 좋은데 왜 숨기고 다녔어." "내가 딸처럼 아껴서 그래." "넌 엄마 같아서 좋아." "아주 맏며느리감이네." "네가 너무 예뻐서 참을 수가 없어." "자취하니까 남자들한테 인기 많겠어요." "너는 내가 항상 지켜줘야 할 것 같아." (303쪽)

이를 두고 "칭찬인데 왜 기분이 나빠?" "너무 예민한 것 아냐? 왜 싸우려고만 들어?"라는 말을 아주 흔하게 한다. 저자는 이것이 왜 성차별적인지 조목조목 머리 아프게 이론으로 설명하기보다 간단히 거울을 들이댄다. 역지사지, 다른 말로 '미러링'이다.

'미국 유학생으로 나간 (남성인) 당신, 백인 친구가 이렇게 말하면 과연 칭찬으로 들릴까요? "한국사람치고 너 정도면 괜찮지!" "난 공부만 잘 하는 한국애들보다 너처럼 개념 있는 한국애가 좋아." "공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한국인답지 않게 성격도 활발하면 얼마나 좋아?" "너는 너무 한국인스러워서 친구 사귀기 힘들겠어." "어유, 한국사람 있으니까 말조심해야겠네." 이런 말이 기분 좋은 칭찬은 아니죠. 그런데 기분 나빠하는 당신에게 미국인 친구가 이렇게 말합니다. "너 되게 예민한 거 같다? 난 너 기분 좋으라고 칭찬한 건데 왜 그렇게 까칠하게 굴어? 역시 한국 사람들은 너무 예민한 것 같아. 나처럼 타 인종 배려해주는 미국인도 별로 없거든?"' (301-302쪽)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마치고 부모님을 따라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이민을 갔다. 결혼 후 영국에 정착해 현재 런던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하는 IT 경력 17년 차 데이터 과학자이다. 2만5000명의 구독자를 거느린 페이스북 페이지 운영자이기도 하다. 해외에서 생활한 덕에 그는 우리나라의 성평등 인식이 상당히 낙후되어 있음을 알았다.


▲ 책 같표지

'지금 한국의 젊은 친구들을 보면 나보다 훨씬 더 열심히 사는데도 불구하고 몇 배는 더 힘들다. 남아공은 선진국도 아니고 여러 가지로 열악한 환경이지만, 나처럼 확실한 목표의식 없이 방황하는 사람에게도 여러 번의 기회를 주었다. 삼십 대 후반이 된 지금은 그래도 어릴 때 한국을 떠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여자로서, 유색인종으로서 힘든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남초 직장에서 일하는 여자 분들에 비하면 훨씬 수월했다.'(10쪽)

저자는 자신이 화려한 이력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남다른 열정과 노력이 아닌, 페미니즘 덕이라고 말한다. 그는 남아공의 대학에 입학해 적응을 못했다. 학교를 다니는 대신 직장을 구했다.

그의 첫 직장은 직원 다섯 명을 둔 작은 IT회사였다. 직장을 다니며 방송대에 들어가 학부를 마치고, 영국으로 건너가 서른 살의 나이에 다시 직장을 구했다. '고졸 유부녀'인 상황에서 게임회사 EA(Electronic Arts)에 취직했고 그 경력으로 마이크로소프트에 이직할 수 있었다.

"EA와 마이크로소프트 면접을 볼 때 아무도 내게 애가 있는지, 애를 누가 봐주는지, 아이를 더 낳을 생각이 있는지, 왜 남편이 있는데 일하려 하는지, 남편이 잘 버는데 나까지 높은 연봉을 받아야 하는지 묻지 않았다. 정당하게 내 경력에 맞는 연봉을 받았다. 엄마라고, 여자라고 덜 받지 않았다. 실제로 남자 동료들도 일이 바쁜 아내 대신 아이를 픽업하러 가거나 아픈 아이를 돌보러 일찍 퇴근한다. 그래도 '저 정신 나간 놈은 일을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라는 지적은 없다. 일하는 여자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남편도 페미니즘의 덕을 보고 있다."(7쪽)

두 아이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하고 고액의 연봉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페미니즘 덕이라 말하지만, 정작 이 책에서 어려운 여성주의 이론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자신의 시각으로 바라본 차별과 폭력, 혐오를 적절한 사례와 상황을 예로 들어가며 평범한 일상의 언어로 솔직하게 전달할 뿐이다.

홍준표 발언, 가만히 있지 말자

저자의 직설적인 표현 덕분에 그의 이야기는 피부를 통과해 곧장 가슴을 파고든다. 빛나는 칼을 휘두르며 전진하는 전사 같다. 그의 칼이 나의 심장을 관통하는 짜릿한 순간을 책을 읽는 내내 자주 맞닥뜨렸다. 공감과 깨달음의 순간이다. 뒤이어 따라오는 후련함과 든든함까지!

'회사의 여혐에 대처하는 여자들의 방식', '역차별과 그 망할 놈의 생수통', '별 게 다 여혐이네', '남자들이 강간 피해자라면', '내게 여혐하는 우리 엄마아빠', '살림과 육아에 열정페이를 요구하지 마라', '섹스와 여혐의 상관관계', '김치녀 제대로 없애는 방법'...

목차만 읽어도 과연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다리가 '후덜덜' 떨릴 지경이다. 그의 글솜씨가 칼이라면 64개에 달하는 목차는 뾰족한 창이다. 그 역시 이런 이야기를 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터.

'피곤하다. 나에게 호의와 지지를 보내는 이들도 있지만 아무래도 상처 되는 말, 욕설, 삿대질이 멘탈에 스크래치를 낸다. (중략) 나는 동료와 충돌하는 일도 극히 드문 무난하고 심심한 사람이다. 싫은 소리도 잘 못 한다. 그런 나에게 한국의 온라인 생활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하다. 몇 번이나 페이지를 잠깐이라도 닫아버릴까 고민했다. 사실은 5분에 한 번씩 한다. 계속 댓글 알림은 울리고, 나를 극단 페미니스트, 메갈 돼지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댓글들이 줄줄이 달린다.'(358쪽)

그냥 조용히 살아도 될 것을. 글 쓴다고 누가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욕을 먹어가며, 민감한 주제를 앞세워 스스로 '전사'로 나선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요즘 페미니즘이 이렇다 저렇다 '페미나치'가 어떻다 욕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 안다. 이상적인 미래를 꿈꾸며 모인 사람들이 하나 같이 다 옳을 수는 없다. (중략) 그러나 1950~60년대 여성 참정권부터 시작해 여성이 일할 수 있는 권리, 남성과 같은 보수를 받을 수 있는 권리, 출산휴가를 가질 권리, 가정 있는 여성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들을 위해 싸워온 사람들은 분명 페미니스트들이었다. 그래서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내가 가진 것, 누리는 것의 대부분은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들이 투쟁해 만들어놓은 기반 덕분이라는 것을.' (8쪽)

그는 작은 것부터 시작하자고 한다. '각각의 분노를 타파할 어떤 행동을 취하자'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사회는 아주 조금씩 바뀐다. 몇 밀리미터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간다. 사회의 부조리와 차별에 대해 묵인하지 않고 시끄럽게 난리치는 이들 덕분에. 차별을 그저 개인적인 불운으로 이해해야 했던 여자들은 다른 이들도 나와 비슷하게 나쁜 경험을 했으며 이를 참아야 하는 게 아니라 싸워서 바꿀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22쪽)

다시 홍준표로 돌아가 보자. 그는 한 나라의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섰다. 한낱 교수도 말 몇 마디로 목이 날아가는 판국에, 더 심한 모욕적인 발언과 행동을 한 이가 대통령 후보로서 자격이 있을 리 만무하다.

지금 우리가 할 행동은 분명하다. 홍준표의 발언에 분노하고, 사퇴를 요구하는 어떤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말이다. 내가 서평을 쓴 이유이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7년 5월 01일, 월 11:0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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