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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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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 쑤는 보수 후보들, 결국 하나 터뜨렸구나
[게릴라칼럼] 안보 실패 정권 부역자들의 '안보장사'


(필라델피아=오마이뉴스) 강인규 기자 = 그럼 그렇지, 왜 안 나오나 했었다. 때가 때인데 '종북' 이야기가 안 나올 리 없던 것이다.

선거가 코앞에 다가왔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보수 후보들이 죽 쑤는 꼴을 보면서, 곧 뭔가 하나 터뜨리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고작 터뜨렸다는 게 철 지난 논란의 재탕이었던 걸 보면, 꽤나 다급했던 모양이다. 잘 알려져 있듯, 소동의 출처는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쓴 회고록이었다. <빙하는 움직인다>라는 제목으로 지난해 10월에 출간된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2007년 대북인권결의안 표결에 기권표를 던진 노무현 정부를 비판적으로 언급했다. 자신은 끝까지 찬성을 고집했으나, 청와대 참모 가운데 우려를 표하는 이들이 많았고, 최종적으로 대통령에 의해 기권 결정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가장 큰 논란을 부른 부분은, 정부가 기권을 결정하기 전에 북한 측의 의사를 타진했다는 주장이었다. 이 부분은 "북한 인권, 흔들린 원칙"이라는 부제가 붙은 채 12장에 수록되어 있다. 문제가 된 회고록 부분을 읽어보자.

"2007년 다시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번에는 내가 외교부장관으로서 책임을 져야 했다. 1년 전에 심한 논쟁 끝에 대통령의 결정을 받아 찬성 투표했는데, 인권의 보편적 원칙은 물론이고 국가 정책의 일관성은 유지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중략) 나의 주장이 계속되자 국정원장이 그러면 남북 채널을 통해서 북한의 의견을 직접 확인해보자고 제안했다. 다른 세 사람도 그 방법에 찬동했다."

송씨의 주장에 따르면, 북한의 의견을 들어보자는 국정원장의 제안에 동의한 세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라는 것이다. 지난해 가을, 책이 서점에 풀리자마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최순실 게이트' 날자 회고록 떨어지다


▲ 화제의 책 송민순의 <빙하는 움직인다> 책 겉표지. ⓒ 창비

당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의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문재인에게 융단폭격을 가했다. 가장 먼저 팔 걷어붙인 이는 정진석 전 원내대표였다. 그는 대표로 선출된 지난해 5월 "새누리당 전원이 친박이 돼야 한다"고 말했던 사람이었다.

정진석은 "노무현 정권과 그 수뇌의 행태는 정말 충격"이라며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온전하다는 사실에 안도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청문회, 국정조사, 특검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국민 앞에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같은 당의 이장우 당시 최고위원도 "충격 그 자체"라고 운을 뗀 뒤, "문 전 대표는 공개 사죄하고 신속하게 정계에서 은퇴"하라고 촉구했다. 공교롭게도 당시는 최순실 게이트의 전모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던 때였다.

회고록이 나오기 한 달 전 <한겨레>에 의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최순실이 관여했다는 사실이 보도되었고, 그로부터 다시 한 달쯤 뒤에는 <경향신문>이 최순실의 독일 회사 비덱의 실체를 폭로했다. 곧이어 JTBC <뉴스룸>은 최순실이 대통령 연설문을 고쳤다는 보도와 함께 태블릿 피시 특종을 터뜨렸다.

정진석이나 이장우와 달리, 대다수 시민들 눈에 '충격 그 자체'는 "박근혜 정권과 그 수뇌의 행태"였고, '청문회, 국정조사, 특검'을 통한 진상조사는 그들이 모시던 박근혜를 향했다.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이 전혀 '온전'하지 않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정계은퇴'도 그의 몫이 되었다.

북한과 의견 교환이 문제?

남과 북의 지도자가 '핫라인'으로 통화할 수 있던 시절에는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고, 또 실제로 일어났다.

예컨대 남한의 유력 정치인이 북한 지도자에게 "위원장님의 건강을 기원하며"라는 살가운 편지를 보낼 수도 있고, 북한을 향해 "약속 대부분을 지키는 믿을 만한 파트너"라며 우애를 과시할 수도 있었다. 심지어 김일성 생가가 있는 만경대를 찾을 수도 있고, 주체사상탑도 방문할 수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02년부터 2005년 사이에 그랬듯이 말이다.

회고록의 주인공 송씨는 지난 21일 자신의 메모를 공개했다. 거기에는 "문 실장이 물어보라고 해서"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그는 "잉크와 메모지를 조사해보면 언제 썼는지까지 알 수 있다고 한다"면서, "해 보면 내가 9년 전에 쓴 것이란 게 나올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기술로는 잉크와 종이를 화학적으로 분석해서 정확한 작성 연대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메모가 그가 말한 시기에 작성되었다고 내용의 정확성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다른 사람들이 작성했다는 회의록과 메모를 보라.

이 문서들이 믿을 만하다면, 송씨는 날짜만 착각하는 것이 아니라, 발언 내용도 잘못 기억하고 있으며, 심지어 자신이 말한 것까지도 타인의 발언으로 간주한 셈이다. 이들의 기록을 비교해보면, 청와대를 배경으로 다시 찍은 <라쇼몽>같다. 실제로, 반박 문서들이 공개된 후 송씨의 주장은 미묘한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책 제목처럼 빙하가 움직이는지는 모르겠으나, 저자의 입장만큼은 분명히 움직이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어떤 기록이 객관적 현실에 가까운지를 따지는 데 관심이 없다. 설사 보수세력이 주장하듯 (혹은 소망하듯), 노무현 정부가 기권하기 전에 북한과 접촉했다 해도 입에 거품 물 일은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은 북한의 허락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북 관계를 손상시키기 않기 위한 제스처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의할 수 없다고? '반공 대통령'이었던 박근혜에게 물어보라.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북한에 물어본 대통령' 박근혜와 이명박

2002년 <신동아> 7월호에는 흥미로운 인터뷰가 실렸다. 당시 북한을 방문했던 박근혜를 인터뷰한 것이다. 김기영 기자가 "북한의 인권문제 등 남북한 간에 갈등의 소지가 될 만한 이슈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자, 박근혜는 이렇게 시원하게 답했다.

"대화를 하려고 마주 앉아서 인권이 어떻고 하면 거기서 다 끝나는 것 아니냐."

북한을 대화 상대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도 답변은 명료했다. "지금 북한의 지도자인 이상 대화 상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김대중의 햇볕정책을 지지한다고도 했다.

그는 2005년 7월, 김정일에게 친서를 보내기도 했다. "더운 날씨에도 위원장님은 건강히 잘 계시는지요?"로 시작되는 편지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한민족의 하나됨과 진한 동포애를 느끼게 했던 '2002년 북남 통일 축구 경기'를 비롯해서 북측의 젊은이들이 유럽의 대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북측 장학생 프로그램'등 다양한 계획들이 하나씩 실천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따뜻한 이야기인가. 박근혜는 북한의 '보천보 전자악단'의 남한 공연과 평양에 건립하기로 한 '경제인 양성소'의 진행이 늦어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재단과 북측의 관계 기관들이 잘 협력해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관련 기관에 위원장님의 지시를 부탁드립니다. 북남이 하나 되어 평화와 번영을 이룩할 수 있도록 저와 유럽-코리아재단에서는 다양한 활동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박근혜와 그의 측근에는 문제가 안 되는 게 왜 유독 노무현과 그의 측근에게만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 2007년 당시 북한 인권결의안은 한국이 반대하거나 기권하더라도 통과될 것이 분명했다(찬성 101, 반대 22, 기권은 한국을 포함 59개국이었다). 한국의 기권은 관계 악화를 막기 위한 상징적 제스처에 불과했다는 말이다.

이런 정부를 '북한과 내통했다'느니, '종북정권'이니 비난한다면, "위원장님의 지시를 부탁드린" 박근혜는 뭐가 되고, 청와대 비서관을 시켜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대표에게 돈 봉투를 건네려 했다가 북한의 폭로로 망신만 당한 이명박은 뭐가 되는가. 지금 '종북몰이'로 신난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는 이명박 정부에서 당 대표를 역임했다. 더불어 최근 토론회에서 '북한 주적' 등의 발언으로 주목을 받은 바른정당의 유승민 후보도 같은 당 소속이었기에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선거가 올 12월이 아닌 5월에 치러지는 까닭은, 앞의 두 정부가 빚어낸 끔찍한 부패와 실정 때문이다. 그들이 초래한 가장 큰 재앙 중 하나가 파탄 난 남북 관계였다. 가장 실패한 두 정부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와 있는 것만도 민망한데, 그런 그들이 가장 평화로웠던 시절의 정부의 '안보관'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어야 하는가. 기막힌 경험은 지난 9년으로 충분하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7년 5월 01일, 월 3:2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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