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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Professor Lim's Column 042617
정공채의 반미 장시 ‘미8군의 차’
[필화 70년: 27회] 주한미군 문제 드러낸 서정시, 일본서 대서특필 되자 반미·용공 몰이


(서울=코리아위클리) 임헌영 교수(민족문제연구소장)


▲ 1962~1969년 MBC 프로듀서로 일하던 시절의 정공채 시인. 임헌영 문학평론가 제공

“자기 나라 국방을 외국에 의존하는 시대는 지났다. 우리는 미 지상군 철수가 거론되기 전부터 불원간 이런 사태가 올 것을 예측, 그동안 조용하게 준비”해왔다고 한 건 김대중이나 노무현이 아니라 1978년 1월18일 박정희의 연두회견에서다.

과연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할까? 그건 아마 박근혜를 청와대에서 떠나보내는 투쟁과는 차원이 다른 복합적인 난제일 것이다. 갈 듯이 운자를 띄워 숭미파들의 애간장을 녹여 몸값을 올린 게 몇 번이던가. 일본의 방어선이자 중국의 전진기지이고 감시탑의 최적지인 한반도를 미국이 스스로 포기할 리야 없겠지.

“1958년 북한에서 중국군이 철수한 후에도 미국이 한국에 주둔시키고 있는 수만의 외국 군사력은 한국전쟁 이후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남북 간 군사문제의 대외적 종속을 구조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중략) 주한미군사력의 존재로 인하여 한반도 군사문제는 전적으로 미국의 세계전략에 부속되어 미국의 결정사항으로 일관되었다.”(이삼성, <미국의 대한정책과 한국민족주의>, 한길사)

미8군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특히 사드의 배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명가도(征明假道)’ 겁박이나, 영국이 러시아를 견제하고자 거문도에 설치했던 포대처럼 황당하다. 남북한은 이런 강대국들이 만든 무대 위 검투사처럼 서로 증오하며 싸움질인 이 민족의 비애! 사드는 한·미·일과 북·중·러의 두 삼각 대립구도를 형성해 동아시아를 신냉전시대로 몰아가진 않을까. 아, 그리운 평화.

일본 진보층을 격동시킨 정공채의 시


▲ 1971년 1월 현대문학상 시상식에서 조연현 문학평론가(가운데), 평론 수상자인 이유식 문학평론가(오른쪽)와 기념촬영한 정공채 시인. 임헌영 문학평론가 제공

그 평화를 시인 정공채(鄭孔采, 1934~2008년)는 전 31장으로 구성된 장시 ‘미8군의 차’(‘현대문학’ 1963년 12월)에서 서정성 짙은 기법으로 구현했다. 한국을 지킨다는 미군이 도리어 전쟁을 야기해 민족 주체성을 훼손한다는 이 시는 2년간의 구상 끝에 1963년 정초 연휴 때 사흘 만에 200자 원고지 156장으로 열매 맺었다.

아름다운 이 서정시가 필화로 비화한 건 일본에서 널리 소개되면서였다. 신미일(新美日)안보조약 반대 투쟁(1960년)의 좌절로 주한미군 문제를 자신들의 처지와 동일시했던 일본이었다. 사회당계로 최대 문학단체였던 신일본문학회 기관지인 월간 ‘신일본문학(新日本文學)’을 비롯해 공산당 신문 ‘아카하타(赤旗)’ 등이 이 작품을 대서특필했다. 조총련의 각종 매체들이 가세했고, 시민운동 대표작가 오다 마코토(小田實)까지 앞장선 이 시의 일어 번역은 ‘미8군의 지프(米8軍のジㅡプ)’였다.

1550여행의 이 시는 ‘남자’와 ‘여자’를 주인공으로 설정, 한국인의 집체적인 전형성으로 삼았다. 미군이 주둔하면서 어린 아들을 둔 여자는 양공주가 되었고, 남자는 임학(林學)의 꿈을 접고 나락에 떨어져 헤매다가 4·19혁명을 겪으며 정신을 차려 귀향, 아들에게 이 땅의 평화를 노래하는 시인으로 투쟁할 것을 다짐한다. 여자도 외국인들에게 둘러싸여 지내다가 홀연히 한국 남자가 그리워진다. 파괴되어가는 반도의 대지와 산림을 키워 미8군의 차를 이겨 자유와 평화의 대지를 이루는 상징으로 시는 끝난다.

‘우리나라는 힘센 호랑이다’

“주둔/ 버드나무에 말을 맨/ 주둔./ 18년(1945년부터 63년까지)의 강하(江河)와 그/ 일월./ 옛날에는 힘센 장수가/ 무딘 손으로/ 말고삐를 매었다./ 버드나무가 줄줄이 늘어선/ 우리 조선 땅에.” 미8군의 차가 밀려온다. 평화스러웠던 마을은 전쟁에 휩싸여 ‘나’는 진주농림학교에서 존경하던 임학(林學) 선생이 민족과 국토를 위해 나무를 심자는 가르침에 감동한다. 그러나 “교실에서는 조림과 삼림보호를 배우던/ 친구들이./ 산에서/ 흐르는 작은 별과 같이/ 총을 맞아 죽어갔다.” 바로 지리산의 비극이다.

시인 역시 “까맣게 자라야 할 머리카락이 없어지고/ 빨가벗은 대머리가 되었다.” ‘나’는 “임학을 버리고// 찬물을 마시고 취하는 외교와/ 거짓 술잔을 높이 들고 미소 짓는/ 그런 정치외교학과에” 투신했다. 실제 정공채는 수원농대 대신 연세대 정외과에 들어갔다.

미8군의 차 “바퀴는 굴러가다가 용산/ 바퀴는 굴러가다가 영등포”, 이어 부평, 오산, 서면, 운암, 의정부, 동두천, 전곡, 파주, 문산, 운천 등으로 굴러가 머물렀다. 18년간 “바퀴가 몇 만, 몇 십만 번을 굴렀는데도/ 꽃같이 아름다운 자유는/ 빵과 의복과 따뜻한 주소의/ 열매를 달지는 않았다./ 다만 텅 빈 마른 나뭇가지”일 뿐인 한국.

전범국가 독일과 일본에도 미군의 “바퀴가 궁굴었는데 패잔병은/ 잔병은/ 바로 우리다.” 두 나라는 도리어 기적을 이뤘으나 우리는 “빈 나뭇가지”뿐이다. “내가 태어난 나라, 숙명의/ 어머니” 조국의 참담함. 그래서 여자는 “나에게서 떠나/ 가면/ 꽃이 되겠지./ 돌아/ 가면서/ 당신은/ 꽃이 되겠지. 꽃이 되어 주겠지./ 항구가 되겠지./ 참 여러 항구를 많이 돌아/ 다닌/ 여자가” 된다.

그러나 “나는 4월에/ 결코 죽지 않는다는 것”을 배워 내 연인(조국)을 찾고자 “잔인해야지./ 잔인하라. 잔인하라. 잔인하라”라고 투지를 다진다. 잔인한 투쟁으로 나는 ‘패잔병’ 신세를 청산하고 귀향, 목관악기로 조국을 노래한다. “우리나라는 토끼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힘센 호랑이다/(…)/ 판도를 주린 신라의/ 여자 위로/ 우왕거리던 호랑이/ 고구려 위로 나의/ 손이/ 임학 위로 바쁘게 불고 있었다.” 그래서 “노오란 자산/ 미8군의 차보다 큰/ 교목림으로/ 이 땅, 우리 조국에 가득히/ 자유의 밭을 이루라./ 기쁜 밭을 이루라./ 삼림을 이루라”로 시는 끝난다.

‘반공사상계몽연구소’를 출퇴근하다

1964년 초, 정 시인은 직장인 일성신약 상무실로 불려가 중앙정보부 직원을 만났다. 그는 시인을 서울 명동 장미다방으로 데려가 신상명세서를 작성해 갔다. 그 뒤 다른 중정 직원이 다녀가곤 하더니 3월에 녹번동 자택으로 ‘반공사상계몽연구소’ 명의 등기우편물이 왔다.

“정공채 귀하/ 귀하는 반공법 피의자로 문의지사가 유하오니 내 30일(금요일) 오전 9시까지 당소에 출두할 사./ 추신: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 것. 귀하에게 극히 불리함. 출두 시 인장을 지참할 사./ 중앙정보부 수사관 서**.”

민족일보 기자로 시경 출입을 했고, 문화방송 프로듀서를 거친 정공채는 세상사에 밝았다. 그는 동대문운동장 건너편 반공사상계몽연구소에서 하루 종일 조사를 받고도 이후 6일 동안 아침부터 조사를 받다가 12~1시에 밖으로 나와 점심을 먹고는 다시 들어가 퇴근시간까지 조사를 받았다. 조사관은 그를 반미주의자에다 ‘교도민주주의자’로 몰아세웠고, 자신은 ‘민족주의자에 민주주의자’라 답했다.

4월 초 수사 6일째인 토요일 아침, 그는 구속될 것 같은 낌새로 두툼한 내의에다 외투까지 갖고 출두했다. 정오가 지나도 점심시간을 안 주더니 1시경 수사를 끝내고는 서류에 무인을 찍게 하고는, “이제 집에 가도 좋습니다”라고 했다. 그간 문인 4명에게 시 감정을 의뢰했는데, 한 분만 반미적이라 했고 나머지는 민족주체성을 서정적 장시로 엮은 훌륭한 작품이라고 평했다는 귀띔이었다. 앞으로는 정치적 참여시를 쓰지 말 것을 당부하며 ‘기소 중지’ 처분으로 석방된 것이다. 감정사 넷은 김용호·김현승·조연현·조지훈이었다.

이후 그에게는 중정이 매주 1회 모든 활동을 조사해 갔고, 이로 말미암아 그는 분방했던 시인적인 삶으로부터 노장적(老莊的) 세계관으로 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내가 그 사건을 겪지 않았다면 자유실천문인협의회(한국작가회의 전신)가 생길 무렵 누군가로부터 가입 권유를 받았을 때 아마 참여했을 것”이라고 시인은 말했다.

<꼬리기사>
“손님들이 갖고 온 것은…전쟁에의 날카로운 초대장”


3장

“마을에 살구꽃이 구름처럼 피고/ 만산에 가득히 깔린 진달래가 피었느냐./ 조선에/ 돌아온 것은/ 봄이 아니다./ 이 강산에 돌아온 것은/ 무자비의/ 도가니./ 찢어서 죽이고 터져서 죽이는/ 전쟁의/ 빨간 딸기밭과/ 끓는 화약고의./ …꽃에 나비가 앉습니까./ 나비가 꽃을 찾아가면/ 꽃이 좋아서 조용히 그의 젖가슴에/ 젖과 꿀을 흘리우며 나비를 재웁니까./(…)// …전쟁의 나날. 전쟁의 마당./ 바람도 소리를 죽였고 산야도 옷을 벗었죠./(…)// 그래, 그 손님들이 우리에게 갖고 온 것은/ 한 장의 무자비한 청장(請狀)/ 타오르는 가마솥/ 전쟁에의 날카로운 초대장.”

23장

“나는 4월에/ 결코 죽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어린 소년들도/ 청년들과 더불어 조국의/ 깃발을! 나는 비둘기의/ 나래처럼 활짝 펴 들고/ 전차를 그들의 발아래 밟고 서서/ 빛나는 개가(凱歌) 부르짖음을./ 그때 한번/ 눈물을 나는 찾았다./ 그리고 오오래 잠궈 둔 녹슨 자물쇠를 열고/ 자유와/ 그 자유의 강에 넘쳐흐르는/ 도도한 4월.” - ‘미8군의 차’에서 발췌 (*경향신문에 먼저 올려졌습니다.)
 
 

올려짐: 2017년 5월 01일, 월 3:1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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