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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시간: (EST) 2019년 6월 26일, 수 5:52 pm
[칼럼/기고/에세이] 허리케인
 
Kim Ki Chun, do you have no manners for humans?
김기춘씨, 당신은 인간에 대한 예의도 없습니까?
[허리케인 칼럼] 부활한 괴벨스와 매카시... 우리 땅은 한치도 변하지 않았다


(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 요즘 고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최순실-박근혜 스캔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렇지 않아도 제법 높은 혈압이 터져버릴 듯하여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혈압조절을 이유로 휴무일에 막장 드라마류나 유튜브 웃스갯거리를 보고 있자니, 광화문과 서울 광장의 촛불시민들에게 영 미안하기만 해서 그도 끊어버렸다.

결국 특검이나 헌재에서 시시각각으로 흘러나오는 ‘단독보도’ 기사들을 다시 접하다보면 혈압이 오르락 내리락이다. 여기에다 헌재의 최종 판결을 예상하다보면 9:0이 되었다가, 6:2도 되었다가, 방정맞게 5:3이 되기도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수 십 년 동안 쓰레기통에 처박으라고 이웃에게 권유해 왔던 ‘쓰레기 신문’을 다시 보는 재미가 쏠쏠하고 유쾌하여 혈압저하에 약간의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최순실 사건이 막 터진 와중에도 휴전선을 걱정하고(”군과 경제팀 나라 지켜달라”. 2016년 10월 28일), 끝내는 ‘반미’ 알레르기 증세를 접하다보면 ‘역시 <조선>이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오지만 말이다.(“반미 본색 드러내는 촛불 세력”. 2017년 2월 4일),

독자들은 5월이든 언제든 새 정부 들어서고 금새 ‘정신 차린’ <조선일보>가 종전보다 더 강경한 자세로 ‘종북 타령’을 늘어놓으며 한줌 극우 세력을 등에 업고 사드가 '대한미국'을 보호해 준다거나, 감히 역사를 들먹이며 ‘건국절’과 ‘국부’와 ‘박정희 신화’를 전방위적으로 들고 나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스캔들 가운데서 쓰레기 신문이든 아니든 이름 석자만 나와도 혈압을 오르게 하는 인물이 있다. ‘김기춘’이란 자이다. 감히 말하건데, 해방이후 한국현대사에서 ‘순악질 한국인 10명’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김기춘이 반드시 꼽히게 될 것이다.

일제시절부터 악명을 떨친 고문 경찰 노덕술, 박정희-전두환 정권의 ‘고문 기술자’ 이근안(현재 목사), 부천 권인숙양 성고문 김귀동이 사실상 ‘저급 악질’에 속한다면, 차지철- 정형근에 이어 김기춘은 내로라 하는 ‘고급 악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최고 학벌 학력에 권력의 최고 정점에 있으면서 정책적으로 프레임을 만들어 악행을 저지른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저급 악질들이 국소적 악행을 저질렀다면, 고급 악질들은 사건을 조작하고 정책적 프레임을 만들어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악행을 저질러 장기간 수많은 피해자를 냈다는 차이점이 있다.


▲ 지난 1월 14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고급 악질’ 김기춘, 괴벨스와 매카시의 합성 인물

특히 사상 초유의 반 민주적이고 독재적인 조항으로 가득한 유신헌법의 초안 작성에 참여한 ‘법률 기술자’ 김기춘은 나치 정권하의 요제프 괴벨스와 비견될 만한 인물이다. 모두가 아는대로 괴벨스는 히틀러의 최측근으로 국가대중계몽선전장관의 자리에 앉아 나치 선전 및 미화를 책임졌던 인물이다.

하이델베르그 대학 출신 박사이며 ‘나치의 뇌’라고 불렸던 그는 선전 방법뿐만 아니라 유창한 말솜씨로 독일인들을 나치 광신자로 만들었다. 그의 두뇌와 세치 혀를 통한 선전 선동으로 죽은 사람들은 바다의 모래알 만큼이나 많다는 것은 역사가 증언하고 있다.

박정희 시절 ‘5.16 장학생’ 출신의 김기춘은 ‘세계사법사상 가장 추악한 재판’이라는 인혁당 사건에 직간접으로 간여한 것을 필두로, 유신헌법 초안 작성, 중앙정보부 대공국장 시절의 학원간첩단 사건 조작, 91년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조작 지휘, 92년 대선 당시 부산 초원복국집에서 “우리가 남이가”라며 지역감정을 조장해 선거법을 위반한 사건, 국회 법사위원장으로 노무현 탄핵소추 주도 등 외에도 무수히 많다. 그가 일으킨 사건마다 수많은 희생자들이 나왔음은 물론이다.

한마디로 압축하면, 박정희와 전두환, 노태우, 박근혜의 충견 노릇을 한 김기춘은 한국현대사를 극단적인 이념투쟁과 지역감정, 반칙과 특권, 부패와 비리로 얼룩지게 만든 주역이다. 한국현대사의 적폐와 비극에는 사악한 김기춘이 있었고, 국민의 반 이상이 정체가 없는 공안몰이와 악질적인 정치공작의 망령에 시달려야 했다.

<오마이 뉴스> 김당 전 편집국장은 <신 김기춘뎐 3편>에서 ‘법꾸라지’(법 미꾸라지 라는 뜻의 신조어) 김기춘을 이렇게 적었다.

“'법꾸라지 김기춘'의 50년 공직생활을 한 줄로 요약하면 '간첩은 조작하고, 지역감정은 조장하고, 증거는 인멸하고'이다. 그렇게 해도 위기가 닥칠 때면 지연과 학연, 그리고 법률 지식을 총동원해 법망을 빠져 나갔다.”


▲ 지난 1월 14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방송은 1970년대 학원간첩단 사건 등 억울한 피해자들을 양산한 공안사건들이 어떻게 조작되었는지를 추적했다.

21세기 한국땅에서 아직도 ‘블랙리스트’라니!

법꾸라지 김기춘은 생의 말년에 다시한번 고급 악질로서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려 했다가, 도도히 흐르는 정의의 역사 법정에 ‘딱’ 걸리고 말았는데, 이번에는 빠져나가기가 그리 수월치 않을 듯하다. 김영한 전 수석이 남긴 비망록과 증언들에 따르면, 그가 저지른 악행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뿌리채 흔드는 것으로, 국내외를 가릴 것없이 박근혜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에 ‘본 때를 보여 주고’ ‘조직적 유기적으로 대응’하도록 지시한 것과, 반정부 또는 정부에 호의적이지 않은 성향의 문화 예술인 9500명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김당 기자는 “정부에 대한 비판과 이념을 기준으로 국민을 내편과 네편으로 가르는 이런 배제와 차별의 공안통치는 본질적으로 ‘72년 체제’의 산물”이라고 적었다. 달리 말하면 박정희의 공안통치가 한창이던 시절을 지나고 87년 6월 민주화 항쟁을 지나 무려 45년이 되기까지 한국은 민주주의의 기초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당 기자의 분석을 접하면서, 21년 전 문익환 목사 서거 후에 어느 동포 언론에 한탄과 울분을 섞어 기자가 올린 칼럼을 다시 상기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2003년에 송두율 교수 사건때 수정하여 다시 올렸다.)

당시 나는 ‘빨갱이 목사’라는 레테르를 단 채 심장마비로 서거한 문익환 목사가 너무 매도되고 있는 현실이, ‘평양가는 기차표를 미리 끊고, 통일을 미리 가져다 맛보며 통일춤을 추며 살다간’ 한 인간의 평생 신념이 묻혀지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외마디 비명으로 그를 변호하고 싶었다. ‘쓰잘데기 없는’ 허구의 이념논쟁이 나 자신은 물론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얼마나 오염시켜 왔었던지!.

‘김기춘’이라는 인물을 떠올리면, 각각 교활함과 무지막지함의 '끝판왕'들인 괴벨스와매카시의 모습이 합성되어 떠오르는 바람에 혈압이 고공으로 치솟는다. 지난 1월 28일 영국의 <이코노미스트>가 한국 정부의 불랙리스트 추문을 보도하며 “이래도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라고 비아냥 거린 기사에 어떤 네티즌이 댓글을 올렸다.

"한국에서 블랙리스트의 존재는 1950년대의 냄세를 풍긴다. 내가 만약 그 리스트에 올라 있어서 지금 위협을 받고 있다면 어떤 희생을 치르고라도 투쟁하거나 온 가족을 (타국으로) 이주시켜 버릴 것이다. 누군들 (한국의) 역사적인 박씨 가족의 한 사람이 이같은 정부를 꾸릴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Being on a list of leftists in the ROK has a 1950 flavor to it. Given the current level of threat if I was on that list I would either decide -no matter what it might cost me-to struggle against this regime or move my family out. Who could have guessed a member of the historic Park family could preside over a government like this?)

아는 사람은 익숙하게 잘 알고 있는 매카시즘 망령. 1950년 미국에서 일어난 이 희대의 ‘사기 사건’과 그 인물의 복사판이 21세기 대명천지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아니 더욱 활개를 치고 있다니, 분노로도 탄식으로도 표현할 길이 없다. 출발이나 그 전개과정의 얼개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지난 1996년에 기자가 쓴 글을 다시 소개한다. 한치도 달라지지 않은 세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제목 : 애국가 부른는데 엉덩이 긁적인 넌 빨갱이
부제목 : 21세기 한국땅에서만 활개치는 매카시

"자, 여기들 좀 보세요, 지금 내 손에 들린 이것이 뭔지 아십니까?"

지금으로부터 46년 전인 1950년 2월, 위스콘신 출신 상원 의원 조셉 매카시는 웨스트 버지니아 휠링의 한 여성단체가 주최한 연설회에서 '괴문서'를 들고 호기롭게 외쳤다. 그가 손에 든 것은 소련 스파이 노릇을 하는 빨갱이 국무부 관리 205명의 명단이었다. '나비효과'를 불러온 불온한 역사의 서막은 이름없는 작은 동네에서 이렇게 시작되었다.

1,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소련과 미국이 세계 재편을 목적으로 치열한 세력전을 펼치고 있던 차에 소련 스파이 빨갱이가 미국 행정부의 심장부에 득실거리고 있다니… 두 번의 큰 전쟁에서 자식 잃고 남편 잃은 일반 미국민들에게는 경악할 일이었다.


▲ 1950년대 조작되고 왜곡된 자료를 통해 미국과 전세계에 빨갱이 광풍을 일으킨 조셉 매카시 의원(오른쪽)의 의회 청문회 광경. 21세기 한국 땅에서는 종북 이라는 이름으로 빨갱이 광풍이 계속되고 있다. (공개역사자료)

매카시의 빨갱이 리스트는 미국 정치권은 물론이고, 언론계, 학계, 산업계, 예술계 등에까지 엄청난 회오리를 일으켰다. 이 회오리가 퍼져나간 경로를 보면, 어떤 국가적 위기의식 앞에서 '집단사고(集團思考)'가 어떤 경로를 통해 형성되고, 그 앞에서 개인이 얼마나 무기력하고 비이성적 존재가 되는지, 더 나아가 한 사회가 얼마나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게 되는지 알게 된다.

이같은 경로를 이해하기 위해 당시 상황을 좀더 풀어 보기로 하자.

괴이하게도 매카시가 말하던 빨갱이 혐의자들의 면면과 숫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오락가락 했고, 심지어 그 리스트가 어떤 경위를 통해 작성되고 입수되었는지 확인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파장은 일파 만파로 번져가기만 했다.

극우 정치인들과 언론은 당시 경력 조작, 불법 금품수수, 음주추태, 명예훼손 등으로 위기에 몰려 있던 매카시의 정치적 속셈은 눈 감은 채 오로지 '폭로'에만 집중하여 부풀리기 시작했다. 매카시가 제시한 주요 인물들의 혐의 가운데 일부는 상원 조사관들에 의해 곧 사실무근으로 밝혀지기도 했지만, 맹목적 애국심에 충만해 있던 미국 사회의 분위기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증거'가 필요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빨갱이 소동의 여파로 육군장관 로버트 스티븐스가 사임했는가 하면, 트루먼의 심복 애치슨 국무장관은 위험 인물 1호로 지목되었고, 40년대 원자폭탄 제조를 지휘한 오펜하이머 박사마저 스파이 혐의자로 몰려 처벌을 받았다. 오펜하이머의 '빨갱이 혐의'란 미국의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했다는 정도에 불과했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작은 공구상 운영자에 불과한 로젠버그 부부가 스파이 혐의로 검거되어 처형당했다.


▲ 매카시 광풍에 휩쓸려 전기의자에 처형당한 로젠버그 부부. (공개역사자료)

빨갱이 사냥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른바 공직자의 사상을 검증한다며 1947년에 만들어진 '충성도 심사 프로그램(loyalty test)'을 가동하여 수많은 공무원과 교수들을 검거했다. 필자의 대학원 논문심위원이던 미국인 교수도 당시 충성도 심사프로그램에 의해 "빨갱이로 의심되는 동료의 명단을 적어 내라는 압력을 받았다"며 "모든 분야에서 공포 분위기가 미국을 휩쓸었다"고 실토한 적이 있었다.

심지어는 연예인들까지 검거했다. 작곡가이며 지휘자인 레너드 번스타인과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유명한 극작가 아서 밀러, 시인이자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도 이때 곤욕을 치렀고, 디즈니 랜드 설립자 월트 디즈니는 동료를 고발하고서야 의혹의 눈길에서 벗어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도 빨갱이 딱지가 붙여져 스위스 등지에서 무려 20여년 동안 떠돌이 생활을 한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다. <에덴의 동쪽> 등 여러 명작으로 유명한 엘리야 카잔 감독도 한때 빨갱이 의혹을 받았다.

부자 재산 빼앗은 로빈 후드는 빨갱이?


▲ 1950년대 매카시 광풍이 불며 ‘빨갱이’로 낙인 찍힌 전설적인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

당시 빨갱이 사냥은 실존 인물을 넘어 문학 작품의 가상 인물까지도 그 대상에 올려졌다. 남녀노소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아왔던 소설 속 인물 '로빈 후드'가 빨갱이를 영웅화한 것이라는 기막힌 해석도 나왔다. 부자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 로빈 후드의 행동은 마르크스 철학을 상징화한 것이란다.

<말타의 배>로 잘 알려진 스타 험프리 보가트가 당시의 상황을 "(애)국가를 부르고 있는데 엉덩이를 긁적인 사람은 모두 빨갱이 혐의를 받았다"고 익살스럽게 묘사한 일화는 유명하다. 말도 안 될 것 같은 일이 당시엔 말이 되었고, 후세 사람들은 이때의 빨갱이 소동을 가리켜 '20세기 최대의 스캔들'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처럼 온 세상에 빨간 물을 뿌려대며 기세를 부리던 빨갱이 소동은 의외로 싱겁게 종막을 고하고 말았다. 붉은 세력을 막아낸다는 명분으로 치른 한국전쟁을 거치며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매카시가 이제는 미 군부까지 공격하다 오히려 덜미가 잡히게 된 것이다.

1954년 4월 TV로 생중계 된 가운데 열린 36일간의 '육군-매카시 청문회'는 그가 지목한 빨갱이들의 무혐의를 입증해낸 재판정이 되었다. 이에 앞서 3월 9일 매카시는 CBS의 전설적인 언론인 에드워드 머로우가 진행한 <시 잇 나우>(See It Now)라는 인기 토크 쇼에서 조목조목 비판을 받는 대 망신을 당한 터여서 청문회에 대한 미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었다.

당시 청문회를 시청한 미국인들에게는 두고 두고 회자되는 유명한 논쟁이 있다. 청문회 막바지에 벌어진 이른바 매카시-웰치 논쟁이다. 청문회가 열린지 30일째 되던 날, 매카시는 육군 내부에 빨갱이가 우글거리고 있다는 종래의 주장을 되풀이하며 이번엔 조셉 웰치 육군 법률고문에게 태클를 걸었다.

비미활동위원회(Committee on Un-American Activities)를 이끌고 있던 매카시는 웰치가 젊은 시절 '좌파' 법률 단체에서 활동한 적이 있는 프레드 피셔라는 변호사를 후원해 왔으니 웰치도 빨갱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분홍색도 주황색도 ‘새빨간색’으로 보였고, 젊은 시절 일도 오늘의 일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에 빠져 있던 매카시에게 피셔나 웰치나 모두가 빨갱이였던 것이다. 그는 청문회 내내 혐의자들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고함을 지르거나 협박하는 태도로 일관해 동료 의원들과 일반 미국민들에게 의혹만 쌓고 있었다.

드디어 웰치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웰치는 부드러우면서도 냉철하고 단호한 사람이었다. 거센 폭포수를 거꾸로 올라가는 한마리 물고기와 같았던 그의 반격은, 이미 석연찮은 느낌을 갖고 있었으나 워낙 광풍이 드셌던 터라 숨죽이고 있던 동료 의원들과 미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미스터 세네터(상원의원), 나는 당신이 새파란 젊은이에게 그런 상처를 줄 만큼 잔인한 사람이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가 당신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평생 짊어지고 살게 될 것을 생각하니 통탄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나 스스로는 (당신을 용서할 수 있는) 신사라고 생각합니다만, 누군들 당신을 용서하려 들겠습니까."

얼굴이 벌개지며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한 매카시에게 반박할 틈을 주지 않고 웰치는 다시 속사포처럼 퍼부었다.

"미스터 매카시, 정치적 살인행위를 그만 중단하지 않으시렵니까? 당신은 할 만큼 했습니다. 당신은 인간에 대한 예의도 없습니까? 도대체 당신에겐 인간에 대한 센스가 남아 있지 않다는 겁니까? 신이 존재한다면, 당신도, 당신이 내세운 명분도 결코 선하다고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매카시가 우물우물 뭐라고 반박하려 들었으나 그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뚜벅뚜벅 회의장을 걸어 나갔다.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전 미국을 수 년 동안 불안과 공포, 불신 속에 잠기게 했던 '괴물'의 면전에 대고 속시원한 소리를 내뱉은 신사에게 보내는 기꺼운 지지의 박수였다.

그간 청문회 현장을 생중계로 지켜보았던 미국민들도 막판에 벼락같은 결정타를 가한 웰치에게 박수를 보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청문회 기간 동안 추리고 추려서 간첩으로 지목한 159명 가운데 '의혹'이 있는 사람은 '우연에 의해서도 일어날 수준'인 단 9명에 불과했다는 것이 역사비평가들의 해석이다.

한마디로, 50년대 매카시 광풍은 과거를 숨기고 정치적 야망에 들떠있던 ‘색맹 환자’가 엮어낸 막장 드라마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선동성 강한 이 드라마는 시류를 탄 언론의 '협조'로 마녀사냥식 집단사고(集團思考)를 만들어 냈고, 이 집단사고는 개인들의 유기적 집합체인 사회를 엉뚱한 방향으로 뒤틀며 광란의 역사를 만들어 냈다.


여기까지가 21년 전에 쓴 글이다.

매카시는 청문회에서 자신의 병역 조작과 여러건의 개인 비리까지 밝혀져 되려 탄핵을 당했고, 그 충격 때문이었는지 3년 뒤인 1957년 알코올 중독으로 세상을 하직했다. 그는 48세를 살았다. 인종 대학살의 원흉 괴벨스는 1945년 히틀러가 죽은 하루 뒤에 포위된 벙커 안에서 아내와 6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동반 자살하였다. 그 또한 48세를 살았다. 매카시와 괴벨스는 갖은 권력을 누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험한 꼴 보지 않고, 역사의 기록도 모르는 체 ‘일찍 죽는 복’을 누렸다. 김기춘씨는 모쪼록 오래 오래 살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마지막으로 조셉 웰치가 매카시에게 던진 한 마디를 김기춘씨에게도 던지고자 한다.

"김기춘씨, 당신은 할 만큼 했습니다. 당신은 인간에 대한 예의도 없습니까?"
 
 

올려짐: 2017년 2월 11일, 토 4:0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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