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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Sang Man's Human Right Article
살인 누명 17년, 피해자가 던진 한마디
'나라슈퍼 사건' 재심 결정에 박수치자 법원공무원 고발 위협



▲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최모(37)씨 등 이른바 '삼례 3인조'에 대한 법원의 재심 개시가 8일 결정됐다. '삼례 3인조'와 박준영 변호사(맨 왼쪽)가 결정 직후 전주지법 법정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6.7.8 ⓒ <오마이뉴스> 기사화면 캡쳐

(서울=오마이뉴스) 고상만 기자 = 지난 7월 8일 새벽 6시, 저는 전주지방법원을 가고자 이른 아침부터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만 17년 전인 1999년 2월에 벌어진 한 사건의 새로운 진실을 확인하고자 나선 길이었습니다. 바로 삼례에서 있었던 '나라슈퍼 강도 살인사건' 3인조 사건의 재심 개시 결정 공판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은 전주지방법원 제2호 법정.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재심법률지원 소위원회(위원장 강문대 변호사) 간사이면서 '삼례 나라슈퍼 강도 살인사건'을 담당하는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법정에 들어선 시각은 오후 2시 정각.

그리고 이어진 재심 개시 여부와 관련된 약 20여 분간의 결정문 낭독. 그렇게 한참을 결정문을 읽더니 우리 모두가 그토록 간절하게 원하던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이에 다음과 같이 주문합니다. 재심 대상 판결에 대한 재심을 개시한다."

마치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던 풍선이 터지듯 순간적으로 환희에 찬 이들이 박수를 쳤습니다. 그리고 한 편에서는 지난 17년간 억울하게 살아온 피해자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며 숨죽여 흐느꼈고, 그 누군가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기자들의 컴퓨터 자판 치는 소리가 거칠어졌으며, 또 누군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만세를 외치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사건이었을까요. 시간은 다시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인 그때로 돌아갑니다.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살인범, '만들어진' 비극


▲ SBS 그것이 알고싶다 두 3인조의 수상한 자백편에 나오는 당시 삼례3인조의 현장검증 장면 ⓒ SBS 영상 갈무리

1999년 2월 6일 새벽 4시, 그날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는 엄청나게 많은 눈이 내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쌓인 눈을 밟으며 세 명의 낯선 남자가 나라슈퍼 마당을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이들 3인조는 이내 잠들어 있던 당시 30대 아들 부부와 77세 노모를 흉기로 위협한 후 각각 청테이프와 넥타이끈 등으로 팔과 다리를 묶은 후 금품을 강취했다고 합니다.

이때 돌발적인 상황이 벌어집니다. 침입한 강도들이 77세 할머니의 입을 청테이프로 감아 막던 중 그만 코까지 감아 버렸고, 이로 인해 입과 코 모두가 막혀버린 할머니가 그만 질식 사망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자 다급해진 이들 3인조는 처음엔 물을 떠 와 얼굴에도 뿌리고 인공호흡까지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할머니가 숨지자 이들은 도망을 칩니다.

한편 강도 살인사건을 신고받은 경찰은 바로 수사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사건 발생 9일 만에 경찰은 이 사건 용의자를 검거합니다. 당시 만 20세, 그리고 19세였던 그 지역 어린 청년 3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나이가 어리다는 것 외에 몇 가지 공통점을 더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모두가 전주시 삼례읍에서 태어나 한 번도 거주 지역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는 점, 그리고 두 번째는 정신지체 장애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를 더 덧붙인다면 궁핍한 가정 형편으로 가족이나 친지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사건 범인으로 경찰이 발표한 3인조는 이후 일사천리로 재판을 받게 됩니다. 비록 범행 과정을 재현하는 장소에서 이를 제대로 못 해 경찰이 답답해하고, 그래서 그 범행 동작을 경찰이 일일이 가르쳐 줘야 하는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삼례 나라수퍼 강도 살인범 3인조가 유죄 선고를 받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물적 증거는 없었습니다. 그저 이들 3인조가 자신의 범죄를 자백하는 검증조서가 유죄 증거의 전부였을 뿐입니다. 결국 부실한 사건 수사에도 3인조는 각각 징역 6년에서 4년씩 징역형을 선고받습니다. 이렇게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강도 살인 사건은 막을 내리게 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사건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검찰에게 끔찍한 악몽이 벌어진 때는 1999년 11월 24일의 일이었습니다. 삼례 3인조중 유일하게 한 명이 '나는 억울하다'며 끝까지 대법원에 상소했지만, 이것이 기각되어 최종 유죄 확정이 내려지고 불과 1달여 만에 일이었습니다. 잡아 가둔 3인조가 아니라 '사실은 우리가 범인'이라는 새로운 3인조가 등장했던 것입니다.

사건 현장에 남은 유일한 증거, '그 놈 목소리'

새로운 3인조를 체포한 곳은 부산지방검찰청. 당시 부산지검은 구속 중인 한 재소자에게 제보를 입수하게 됩니다. '삼례 나라수퍼 강도 살인사건의 진짜 범인은 부산에 거주하는 또 다른 3인조'라는 충격적 제보였습니다. 이후 부산지검은 내사를 벌였고 그 결과 제보는 사실로 드러납니다. 내사 상태로 부른 이들 부산 3인조가 자신들의 범행이라며 순순히 자백한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로 '양심' 때문이었습니다. "밤마다 죽은 할머니의 얼굴이 떠올라 너무 괴로웠습니다." 부산 3인조 중 한 명이 검찰에서 밝힌 자백 이유였습니다.

그들은 이전에 잡혀 들어간 삼례 3인조와 달랐습니다. 사건 당시 정황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진술합니다. 3인 모두를 각각 달리 불러 진술을 받았는데도 이들 부산 3인조의 범행 진술이 완벽하게 일치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나라슈퍼에서 피해자에게 빼앗아간 패물을 판매한 장물업자도 확인되었으며, 또 사건 당시 강탈해간 현금 액수까지도 정확하게 진술한 이들 역시 바로 부산 3인조였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분명한 증거가 더 있었습니다. 바로 사건 현장에 남기고 간 '그 놈 목소리'였습니다.

처음 경찰이 이 사건 범인이라며 발표한 삼례 3인조는 '진범이 아니라고'생각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건 당일 범인들에게 피해를 당한 나라슈퍼 아들 부부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건이 일어나던 날 새벽 4시,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껴 잠에서 깬 아들 부부의 목에 차가운 금속성 쇠가 닿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눈과 입에 청테이프가 감기고, 손과 발은 넥타이 등으로 묶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두려움과 공포, 절망으로 어찌할 줄 모를 때 였습니다. 범인이 피해자의 귓가에 대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움직이지 마라. 그러면 죽이지는 않겠다."

그 놈 목소리. 경상도 사투리는 아니지만 경상도 특유의 억양이 진득한 작고, 가는 목소리였다고 합니다. 사건 당시 범인들이 유일하게 현장에 남긴 증거였습니다. 그래서 피해 유족은 '이 사건 3인조 범인중 한 명은 경상도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경찰에 늘 말해 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체포되어 진범으로 구속된 3인조는 달랐습니다. 이들은 태어나 단 한 번도 삼례를 벗어나 본 적 없는, 그래서 경상도 억양을 쓸래야 쓸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3인조를 진범이라고 잡아 가두었으니, 피해자들조차 사건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맞고, 맞고, 또 맞으며 나는 범인이 되었다

그렇다면 또 의문이 남습니다. 그럼 왜 삼례 3인조는 '스스로를 범인이라고' 자백한 것일까. 결국 아무런 물적 증거도 없는 이 사건에서 이들이 범인으로 몰린 이유, 그리고 끝내 법원에서 유죄 선고를 받게 된 유일한 이유는 스스로를 범인이라고 자백한 이들 3인조의 조서였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답은 간결했습니다. "한번 맞아보세요." 삼례 3인조중 한 명이 어눌한 목소리로 터뜨린 울분이었습니다. 그랬습니다. 경찰은 체포한 그날부터 끊임없이 구타와 협박, 위협을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현장 검증 당일에도 경찰은 이들 3인조를 끊임없이 때리고 위협합니다. 사건을 잘 재현하지 못한다며 그들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구타하고 욕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구타는 경찰서 내에서였다고 합니다. 원하는 답변을 하지 않으면 고작 19살, 20살밖에 안 된 3인조에게 양말 벗고 책상위로 올라가 무릎 꿇고 앉으라 했다 합니다. 그리곤 경찰 곤봉으로 발바닥을 무자비하게 내려쳤다고 합니다. 원하는 자백을 할 때까지 그렇게 맞고, 맞고, 또 맞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범인이었던 것입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진범임을 스스로 밝힌 부산 3인조가 나왔으니 억울한 삼례 3인조가 풀려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일은 또 묘하게 돌아갔습니다. 스스로를 진범이라고 자백한 부산 3인조가 모두 '무혐의'로 풀려난 것입니다.


▲ 지난 2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한 삼례 나라슈퍼 살인사건의 진범 중 한명인 이아무개씨. 그는 자신이 살해한 할머니의 묘소를 찾아 용서를 빌었다. ⓒ 이희훈

억울하게 범인을 만든 전주지검이 부산 3인조를 인계받았습니다. 그러나 삼례 3인조를 검거하여 공을 세운 전주지검 검사는 이들 부산 3인조를 한차례 조사한 후 "이들 부산 3인조의 자백이 신빙성 없다"며 모두 나가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전주지검 검사의 '무혐의' 처분에 가장 황당해 한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이미 구속된 가짜 범인 삼례 3인조? 아니면 피해자 유족? 둘 다 아니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진짜 진범"이라고 밝힌 '부산 3인조'였다고 합니다.

처벌을 각오하고 자백을 한 상황에서 담당 검사가 그냥 가라고 하니, 부산 3인조들은 그야말로 어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이들 3인조중 한 명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검사의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너무도 이상한 말이었습니다.

"교도소에 있는 것만이 처벌받는 것은 아니다. 너희들이 나간다고 해서 떳떳한 일은 아닐 거다."

과연 검사는 이들 부산 3인조가 진범임을 몰랐을까요?

17년 만에 밝혀진 진실, 그러나...

그리고 마침내, 사건 발생 후 17년 만에 삼례 3인조에게 새로운 재판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미 밝혀진 진실인데 그 진실을 법정에서 다시 다퉈볼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를 위해 도대체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나갔나요?

사건 당시 만 19세, 20세였던 이들은 어느덧 30대 후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흘러간 것은 그들의 세월뿐이었습니다. 억울함은 여전히 그 자리에 멈춰 있는 듯했습니다. 다행히 이들 피해자들을 위해 '재심 개시 결정'을 선고하는 판사가 결정문을 읽기 전 잠시 숨을 멈추고 피해자들을 둘러 봤습니다. 그리고 이례적인 말을 덧붙였습니다.

"너무 늦어 미안합니다."

하지만 판사의 짧은 사과 한마디 후 제가 확인한 대한민국 법정은 참으로 냉정했습니다. '재심개시 결정'을 밝힌 판사의 말 한마디에 그동안 살인자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살아온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왈칵 눈물을 흘렸습니다. 누군가는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박수를 쳤고, 또 누군가는 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그 짧고 강렬한 피해자들의 환희를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달려나와 제지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법정에서 근무하는 법원 공무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내려치는 고함.

"경고합니다. 조용히 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전부 고발하겠습니다."

그 말에 제 심장이 벌떡거렸습니다. 누가 이들을 오늘 이 법정에 부른 건가요? 누가 이 자리에서 이들을 울게 했고, 누가 벌떡 일어나게 했으며, 누가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자기도 모르게 박수를 치게 한 것인가요?

17년간 억울한 살인 누명을 쓰게 한 법원이, 범인이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대한민국 법치'가 고작 그 짧은 순간에 피해자들이 법정에서 흘리는 눈물 한 방울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건가요? 피해자들이 박수 친다고 법원 천정이 무너지나요? 그렇게도 법원 권위만 대단한 건가요? 법원의 태도에 저는 참을 수 없는 화가 났습니다.


▲ 지난 1999년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으로 죽은 할머니의 막내 사위 박성우(57)씨와 이 사건으로 누명을 쓴 최대열(36)씨가 11일 오전 진정서를 들고 대검찰청으로 향하고 있다. 진정서에는 지난 8일 전주지방법원의 이 사건 재심 결정에 대해 검찰이 항고를 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 선대식

그래서 밖으로 나온 자리. 이어지는 기자회견에서 재심 결정을 받은 3인조에게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과거 사건을 조작한 이들을 향해 소감 한마디 말해 달라"는 요구였습니다. 하지만 답변은 시원하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들은 그저 길고 긴 침묵 속에 눈치만 볼 뿐이었습니다.

그러자 박준영 변호사가 나섰습니다. "자신들의 의사를 이분들이 제대로 표현할 줄 알았다면 사건 당시에 이처럼 억울한 일은 어쩌면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기자에게 양해를 구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피해자중 한 명이 입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아주 작은 소리였기에 모두는 숨소리마저 죽여야 했습니다. 그때 들려온 말.

"우리가 당한 것처럼, 우리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그들도 똑같이 감옥에 가서 살았으면..."

이 한마디를 하고 피해자인 삼례 3인조 분들은 다시 입을 닫았습니다. 억울하다는 말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이 사실이 저는 더 가슴 아팠습니다. 사건의 진실이 아니라 '그저 범인만 필요했던' 경찰과 검찰과 법원... 진짜 제대로 된 나라라면 바로 이런 이들을 법으로 보호해 주는 나라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진실을 밝히는 일이 너무도 고통스럽고 어려운 나라는 제대로 된 법치 국가가 아닙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고통에서 헤어나는 날을 기원합니다. 그날까지 대한변호사협회(회장 하창우) 인권위원회 재심법률지원 소위원회(지원 문의 : 02-2087-7731)가 함께하겠습니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6년 7월 30일, 토 10:4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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