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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족/통일
 
잘못 꿰어진 첫 단추, '북핵'을 낳았다
[주장] 밖에서 그려보는 남북연합방③ - 미국의 '선물', 겨레의 핵


(로스앤젤레스) 오인동(정형외과의사) = 남북연합방 경제공동체를 시작하면 우리 겨레가 민족사 최고의 부강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을 살펴봤다(지난 기사 : 활력 잃은 남한 경제, 대안은 '북방경제'다). 이렇게 찬란한 통일의 이정표가 눈앞에 있는데도 이 길로 달려가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전한 지 61년이 된 조국에 평화협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20년 동안에는 그 이유로 '북핵'이 거론됐다. 북에 핵이 없었으면 평화체제가 이뤄졌을 것이란 말일까. 북핵이 없던 40년(1953~1993) 동안과 그 뒤 북이 첫 핵시험을 한 2006년(1994~2006)까지, 왜 평화체제는 달성되지 못했는가. 북미평화협정이 이뤄졌더라면 북은 핵을 개발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북과 미국 사이의 평화협정 논란과 북의 핵개발 배경의 역사를 살펴보면 문제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문제 해결 방안에도 눈 뜨게 될 것이다. (*핵실험일까, 핵시험일까 - 실험은 이론이나 가설의 검증을 위한 것이고, 시험은 검증된 이론을 익힌 정도를 확인하는 것이다. 핵무기의 근거가 되는 이론은 이미 검증된 것이므로, 북이 시행하는 것은 이 이론을 실제화할 수 있는 능력을 확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핵시험'이 더 적합한 용어 사용이다. - 기자말)

북핵 개발의 역사


▲ 지난 2010년 10월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 열병식에 등장한 북한 중거리미사일(IRBM) '무수단'. ⓒ오마이뉴스, 기사화면 캡쳐)

1953년 정전협정에는 3개월 안에 참전국 회의를 열어 한반도에서 외국군대의 철수와 평화정착을 논의하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2개월 뒤 남한과 미국은 협정을 위반하며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미군의 영구주둔을 규정했다. 소련군은 1949년에 철수했고, 북은 1958년에 중국군을 완전히 철수 시켰다. 반면, 미국은 남한에 6만 미군과 핵무기를 배치하고 북을 위협했다.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었다.

해방 15주년을 맞던 1960년, 북은 남한에 외국 군대 철수와 평화협정을 제안했다. 그 뒤 북은 이를 되풀이해서 제안했으나 남한은 응하지 않았다. 따라서 북은 자위를 위해 1963년에 소련에 핵개발 연구지원을 요청했으나 거절 당하고, 1964년에는 중국에게도 거절당했다. 1965년에야 소련으로부터 평화적 핵발전을 위한 연구 원자로를 지원받았다.

남한이 1974년 북한에 불가침 조약을 제안하자, 북은 군사지휘권이 없어 지난 14년 동안 평화협정 제안에 응하지 못한 남한이 불가침은 어떻게 담보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남한의 군사실권을 행사하는 미국에 '북미 평화협정'을 제안했다.

1975년 유엔총회는 유엔군사령부의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를 결의했다. 그러나 이는 이뤄지지 않았다. 1976년부터는 한미합동 대북전쟁연습(TS)도 시작됐다. 북미평화협정 제안에 미국은 1978년 남북이 먼저 대화한 뒤 남·북·미 3자회담을 제안했다. 1984년 북은 남과 불가침 조약, 미국과의 평화협정을 역제안했다. 하지만 미국은 응하지 않았다.

서명한 지 2주도 안 돼 실효성 없어진 북미 기본합의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고 1990년 세계의 공산권이 붕괴되자 남북은 1991년 유엔에 각기 따로 가입했다. 북은 유엔회원국 앞에서 주한유엔군사령부 해체, 미군 철수, 북미평화협정을 제기했다. 세계 정세의 대변화로 남북은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했고, 같은 해 12월 미국은 남한에서 핵무기를 철거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핵잠수함·핵항공모함·핵폭격기는 때마다 남한에 드나들었고, 핵우산을 제공하는 3만 미군이 지금도 주둔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북은 동유럽 국가들과의 교역이 차단되고 계속되는 미국의 정치·경제봉쇄와 제재로 어려움에 빠지기 시작했다.

북이 전력 생산을 위해 핵발전 중수로를 가동하자 1993년 미국은 핵무기개발 의혹을 제기하며 특별사찰을 요구했다. 이 부당한 요구에 북은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 의사를 선언했다. 이때 남한의 김영삼 대통령은 "핵 가진 자와는 악수할 수 없다"라면서 문제 해결에 스스로 참여하지 않았다. 이렇게 핵문제는 북과 미국 사이의 과제로 돼 갔다.

지난 20년 동안 북미평화협정 체결을 무시하고 기피해 온 미국이 북의 핵개발 방지를 위해 1994년 제네바에서 북과 협정의 성격이라 볼 수도 없는 '기본합의(Agreed Framework)'라는 것을 했다. 이 합의의 내용은 북이 중수로를 동결하면 10년 안에 100만kW 경수로 2기 건설, 경제 제재 완화하고 국교 정상화한다는 것이었다. 경수로 건설 비용의 대부분은 남한의 부담이었다.

그러나 유럽 공산 국가들처럼 붕괴가 예상됐던 북이 김일성 주석 사망 뒤에도 흔들림이 없자 미국은 합의 사항 이행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의 보스워스(S. Bosworth) 총장은 이런 사실을 "기본합의는 서명한 지 2주일도 안 돼 정치적 고아가 됐다"(The Agreed Framework was a political orphan within 2 weeks after its signature)라고 평했다. 북은 미국에 합의 사항 이행을 촉구했지만 지지부진하자 1998년 태평양을 넘는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무력 시위를 했다.

한편,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뒤 남북교류가 활발해지자 일본 고이즈미 총리는 2002년 9월 중순 북 김정일 위원장과 정상회담에서 수교를 위한 평양선언을 했다. 북을 '악의 축'으로 지명하고 핵 선제공격 대상에 올려놓은 미국 부시 정부가 이에 놀라 10월 초 켈리(J. Kelly) 국무부 차관보를 평양에 보내 북한에 고농축우라늄(HEU) 의혹을 제기하고 돌아와 일방적으로 '북미 기본합의'를 파기했다.

중수로 동결 8년 동안 경수로 건설은 30%도 진척되지 않았고, 관계 정상화에 한 걸음도 내딛지 못했다. 이를 보고 북미 기본합의 협상팀에 참여했던 윗(J. Witt)은 "북미 합의의 기념물은 콘크리트로 메워진 두 개의 거대한 구덩이뿐이었다"라고 말했다.

대북 위협에서 시작돼 제재로 끝나는 역사


▲ 북한은 지난 2013년 2월 12일 실시된 핵시험을 1차 대응 조치라며 미국이 적대적으로 정세를 복잡하게 하면 2, 3차 대응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마이뉴스 기사화면 캡쳐

이에 북은 2003년 초 핵확산방지조약(NPT)에서 탈퇴했다. 그해 3월, 미국은 핵 없는 이라크의 핵개발을 저지한다면서 침공을 감행했다. 이를 본 북은 핵무장만이 민족과 조국을 지킬 수 있다고 확신했던 모양이다. 극심한 경제난으로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은 북은 남한의 군사비와 경쟁할 수 없게 돼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안보효과를 마련해 줄 핵미사일 개발로 자위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정책 변화로 절약된 돈은 인민생활 향상과 경제건설에 쓰겠다고도 했다.

북을 견제하기 위해 부시 정부는 2003년 중국이 주도하는 6자회담을 출범시켰다. 북은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말했으나 객관적으로 증명해 보이지도 않았다. 6자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모색할 2005년 9·19공동성명이 나왔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미국은 돈 세탁 의혹을 제기하며 마카오은행(BDA) 북한 계좌를 동결시켰다.

이 무고한 조치에 북은 2006년 7월 4일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장거리미사일(인공위성)을 발사하고 10월 한글날에는 겨레의 제1차 핵시험으로 맞섰다. 이와 같이 북이 핵미사일을 개발하게 된 이유는 이재봉 원광대 교수의 '법정 증언'에도 기술돼 있다(관련기사 보기). 한편, 마카오 정부 주문으로 북한 은행 계좌를 조사한 미국 회계회사 'E&Y'는 부정행위가 없었다고 발표했고 계좌는 풀렸다.

이와 같이 북의 핵미사일은 평화협정을 기피하는 미국을 협상에 끌어들이는 수단이었지만, 미국은 벼랑끝 전술(Brinkmanship)이라는 별명도 붙였다. 그리하여 2007년 2·13과 10·3 원자로 불능화 합의가 이뤄졌고, 2008년 북은 중수로 냉각탑 공개 폭파 시위를 하기도 했다. 미국 CSIS전략연구소 태평양포럼 코사(R.Cossa) 회장은 북한이 2·13 합의사항을 위배한 것은 없다고도 했다.

한편, 남한에서는 2007년 10·4 남북평화번영합의를 한 노무현 정부에 이어 2008년에 집권한 이명박 정부가 비핵·개방·3000 대북정책을 내세우고 6·15, 10·4 남북공동선언을 무효화하기 시작했다. 한편 집권하면 북한과 직접 대화하겠다던 오바마 정부가 2009년에 출범했다. 하지만, 남북교역중단과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문제로 북한의 붕괴를 예상한 이명박 정부의 반대를 핑계로 미국은 '전략적 인내' 정책으로 돌아섰다.

이에 북은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 포기와 평화협정 체결을 압박하기 위해 2009년 4월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고 5월에는 제2차 핵시험 시위를 했다. 그리고 "6자회담은 영원히 끝났다"라고 선언했다. 미국은 유엔안보리를 통해 제2차 대북제재 결의를 채택하고 북한의 붕괴를 추구했다.

이것이 지난 60년 동안 북·미 사이에 되풀이된 역사(미국의 핵 위협→북의 평화협정 제안→불응→미사일 발사→핵개발 의혹→북미 기본합의→미국의 파기→북의 핵시험→유엔안보리 제재)의 요약이다(<통일의 날이 참다운 광복의 날이다> 밖에서 본 한반도, 오인동, 솔문, 2010).

'핵개발을 저지하겠다'는 미국

그러면 평화협정과 핵개발 문제로 합의사항을 위반한 쪽은 누구인가. 미국은 북한, 북은 미국이라고 하고 남한 정부나 수구 언론들은 미국의 주장을 복창해 왔다. 북한도 사소한 합의 사항들을 어긴 것들이 있다. 그러나 약육강식이 국제관계 역학의 상식이라는 말대로 미국이 먼저 또 결정적으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은 확연하다.

심지어 부시 정부의 라이스 국무장관은 미국이 "축구경기 도중 골대를 옮긴다"(Moving the goal posts in the middle of a football game)라는 말도 했다. 즉, 합의 내용 바꾸기를 한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미국의 여러 관료나 한반도 전문가들은 결국 북한이 기본 합의 사항을 안 지킨 게 없다고 한 셈이다.

이렇게 미국 인사들조차 합의를 지키지 않은 바른 말을 하는데도 남한 관료와 대통령의 "북한의 도발→제재→타협→보상의 나쁜 버릇을 더 이상 묵과 할 수 없다"라는 말을 해왔다. 미국 위정자들은 어떻게 들을까. 이에 더해 오바마 국가안보회의 베이더 국장의 저서 <오바마와 중국의 부상>에서 "(미국은) 궁극적으로는 북한 정권 붕괴와 남한의 흡수통일을 목적으로 하고, 단기·중기적으로는 근본적 해결 아닌 협상과 대화를 통해 지연 시키는 '전략적 인내'였다"라고 했다.

그러면 이들이 반미주의자이고 종북세력인 걸까. 이렇게 미국 정부에 반대되는 주장을 관료나 전문가들이 말할 수 있는 것이 미국 언론의 자유이고 큰 나라 미국의 여유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양심적 애국인사들로 인해 미국은 정의 수호와 자체 정화 노력도 하지만, 세계 패권 정책은 계속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북에 핵이 없던 첫 40년 동안 미국은 북의 요구를 무시·기피해 왔고 그 뒤 핵 의혹만 있었던 12년 동안에도 이런저런 핑계로 평화협정을 거부해온 사실을 돌이켜 보면 의심되는 바가 있다. 즉, 핵개발을 저지하겠다는 미국 주장의 진정성에 믿음이 가지 않는다. 왜냐면 미국이 합의 사항 이행을 지연 시키거나 '골대를 옮겨' 다시 협상해 합의하고 또 파기하는 동안에 북의 핵미사일 능력은 점차 높아져만 갔기 때문이다.

핵,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2013년 3월 29일 오전 0시 30분 전략미사일 부대의 화력타격 임무에 관한 작전회의를 긴급 소집하고 있는 모습. ⓒ오마이뉴스, 기사화면 캡쳐

처음부터 의도적이 아니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미국이 북한에 핵미사일 개발을 은근히 강요해 온 셈이 아닌가. 그 결과 2012년 말, 북은 ICBM급 미사일로 실용인공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유엔안보리 국가들은 정의든 불의든 간에 자신들의 국익에 따라 패권 미국의 대북제재결의를 추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막바지에 내몰린 북은 2013년 2월 소형화·경량화·다종화했다는 제3차 핵시험을 했다. 그러자 3월에 미국은 대북 한미합동전쟁연습에 스텔스 폭격기를 동원, 핵탄 투하 연습까지 했다. 이에 북은 미국에 '핵 대 핵 대결'과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했다.

이와 같이 미국 국익에 따라 동북아 패권을 유지하느라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처음엔 무시하고 기피했고 그 뒤엔 이런저런 핑계로 거부해오다 보니 미국은 결국 우리 겨레의 한 쪽에 핵미사일을 선물한 셈이 된 것 아닌가. 그러나 미국의 위협으로부터 나라와 민족을 지키기 위해 강요된 선택으로 개발했다는 북핵은, 이제 지역평화를 위협하니 폐기돼야 한다고 미국은 주장한다. 즉, 미국의 핵은 평화를, 북핵은 평화의 위협이라는 모순된 논리를 정당화하는 게 패권국의 역설적 특권이 아닐까.

이렇게 지난 60년 동안 아무 성과 없이 북·미(남) 사이에 논란만 돼온 평화협정 거부와 핵미사일 개발의 역사를 제대로 인식했다면, 조국의 북에 있는 핵을 어떻게 하는 것이 겨레의 평화통일과 지역평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인지 남과 북은 심각하게 성찰하고 논의해봐야 할 것이다. 해외동포의 눈에 미국이 준 선물인 북핵은 이미 우리 겨레의 핵이다. 겨레 핵의 앞날은 오직 우리 겨레가 결정하기에 달려 있지 않은가? (* 필자 오인동 : 미국 LA의 인공관절 수술 전문 정형외과의사, 수필가, 저자. 하버드의대병원(MGH) 정형외과 조교수/ MIT 생체공학 강사 역임 L.A Philharmonic 교향악단 이사 역임, 한겨레통일문화상 수상(2011년) 6.15선언실천 미국위원회 공동위원장)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4년 9월 15일, 월 2:1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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