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Weekly of Florida   로그인  등록하기

 현재시간: (EST) 2017년 8월 22일, 화 11:01 am
[칼럼/기고/에세이] 생활 에세이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민생활이야기] 큰딸을 향한 소망

(보카라톤) 황현숙(교육학 박사) = (막내딸)"엄마, 오늘 교회에서 애들이 '너는 쌍둥이 동생들이랑 생긴 게 다르네, 왜? 왜? 왜 그런데?'라며 자꾸 귀찮게 물어서, 언니가 '난 입양됐어'라고 했어. 그랬더니 애들이, '너 진짜 엄마랑 안 살아서 너무 안됐다. 너 진짜 엄마가 누군지는 알아?'라며 언니 자꾸 귀찮게 해서 내가, “It is none of your business! Go away! (니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 저리 가)!'라고 했어.

"그런 일이 있었구나. 00가 언니에게 힘이 되어주어 고마워. (큰딸에게)00아 괜찮아?"

(큰딸)"기분은 좀 나쁘지만 괜찮아 엄마. 한국교회 처음가면 그렇잖아. 라스베이거스에서도 그랬잖아. (막내딸에게)엄마 걱정한다고 이야기 하지 말자 했잖아. 하여튼 너는!"

큰딸 아이의 ‘엄마 걱정한다고 이야기 하지 말자 했잖아’라는 말을 듣는 순간, 한편으로는 엄마의 마음을 살피는 큰딸 아이가 대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사할 때마다, 한국인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때 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큰 딸아이 생각에 어미로서 가슴 한 구석이 짜안 하게 아려왔다.

나의 큰딸은 10년의 불임 뒤 평택의 한 목사님의 손을 빌어 생후 3개월에 나의 품에 안긴 귀한 아이다. 2주 뒤에 나는 임신을 했고, 그 후 미숙아 쌍둥이를 낳았다. 내가 큰딸 아이가 ‘나는 선택 받은 특별한 아이'라는 자존감을 갖고, 한국인들이 가진 입양아에 대한 편견과 무지 그리고 문화적 배려에서 자신을 보호하며, 강하게 성장하도록 키워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2007년 여름, 3년의 한국 복무를 마친 남편을 따라 미국에 들어왔을 때, 큰딸 아이가 2살 반, 남매 쌍둥이가 1살 반이었다. 군 부대 관례대로 중대장 부인(한국인)이 아침에 전화를 하고, 점심 무렵 밑반찬을 해서 그의 지인과 함께 우리 집에 들렀다.

나와 문 앞에서 간단히 인사를 주고받은 후, 먼저 우리 쌍둥이를 보며, “애들이 혼혈이라서 참 이쁘네.”, 그리곤, 자기 차례를 기다리던 우리 큰딸 아이를 보고 놀란 듯 큰 소리로, “어머, 얘는 생긴 게 왜 이래? 얘는 혼혈이 아닌가 봐!”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큰딸 아이는 저도 이쁘다 해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게 속상했는지 입을 삐죽거렸다. 나는 큰딸 아이를 안으며, “이 아이는 제가 한국에서 입양한 아이예요.”라고 말했다. 그의 지인은 “입양하는데 돈이 많이 든다던데, 얼마 들었어요? …(중략)… 쌍꺼풀 수술하고, 코 수술 해주려면 앞으로 돈 엄청 들겠네”라며 말을 이었다.

아이들 낮잠을 핑계 삼아 그들을 보낸 뒤, 나는 그들이 들고 온 밑반찬에다 분풀이라도 하듯, 열어보지도 않고 냉장고에 쑤셔 넣었다. 그리곤, 인터넷에 들어가 입양에 대한 유아용 동화책 여러 권과 <입양에 관해 어린 아이와 이야기 하기(Talking with Young Children about Adoption by Mary Watkins and Susan Fisher, 1993, Yale University Press)>를 주문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서는 한국인과의 교제가 많아짐에 따라 큰딸 아이는 그 단체 또는 모임에 있는 또래 아이들의 호기심 반 장난 반 섞인 “너 입양 됐다며? 그럼 넌 너희 가족이랑 한 가족 아니네?”라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는 이야기를 우리 아이들에게 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새로운 아이들이 그 모임이나 교회에 올 때 마다 이런 과정은 간헐적으로 반복되었다.

한번은 내가 다니고 있는 교회의 개구쟁이 한 녀석이, 내가 차를 세우자마자 쪼르르 달려와서는 우리 아이들과 내가 있는 앞에서 “00(큰딸) 입양 됐다면서요? 그럼, 진짜(real) 엄마 아니에요?”라고 했다. 큰딸 아이는 “그래서, 그럼 울 엄마가 장난감(toy) 엄마야?”라고 의연하게 대꾸했다. 그런 큰딸 아이를 보며 나는 수 년 전 우리 집에 밑반찬을 들고 와 그런 말을 해준 그들에게 감사했다.

그날 밤 큰딸 아이는 잠자리에 들며, “엄마, 나도 엄마 뱃속에서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말을 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울 큰딸 아이가 쌍둥이 동생들과 나이차이가 좀 났더라면, 사람들이 내가 데리고 온 딸이라 여긴다면, 이 아이의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잠이 든 큰딸 아이 숨소리에 애처로워 하며, 이마 가득 덮은 머리카락을 슬어 귀 뒤로 넘기며 문득 도종환 님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란 시가 생각난다.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어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어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사랑하는 나의 딸아, 꽃이 비와 바람에 흔들리고 젖듯, 우리네 인생 또한 그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단다. 하지만 그 모진 비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끝내 줄기를 곧게 세우고 꽃을 피우는 것은, 꽃은 그 비바람을 자양분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란다. 사랑하는 나의 딸아, 엄마는 네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삶이 너를 슬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더라도, 그 슬픔과 고통 하나 하나를 자양분으로 삼아 역경 속에서도 많은 것을 느끼고 새로운 것을 깨닫고 배우기를 바란다. 그 역경과 시련을 이겨낸 후, 네가 피우는 꽃은 그 어떤 꽃보다 더 아름답고 빛날 것을 이 엄마는 믿는다. 그리고 네 옆에는 흔들림 없이 항상 널 사랑하는 엄마가 있다는 것을 꼬~옥 기억하길 바란다. 사랑한다. 나의 딸아.
 
 

올려짐: 2014년 8월 19일, 화 1:39 pm
평가: 0.00/5.00 [0]

답글이 없습니다.

   

   
   
www.okja.org
www.sharingkorea.net
www.ksm.or.kr
www.koramtour.net
http://www.geo10.com/krus/fl/g/0401/954/orientalmart.htm
www.smiledentalfl.com
www.kinghealthcenter.com
www.koreahouseorlando.com
www.thefountainsalonandspa.com
www.orlandotour.com
www.miju24.com/market_info/12701
www.ohmynews.com
www.saegilchurch.net
www.newsm.com
www.newsnjoy.or.kr
www.protest2002.org
www.biblekorea.org
dabia.net/xe

get FireFox
www.korean.go.kr/front/foreignSpell/foreignSpellList.do?mn_id=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