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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문화
 
노무현의 진심을 기록한 단 하나의 책
[서평] 윤태영의 <기록>

(서울) 김당 기자 =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박근혜 정부와 한국 사회의 민낯이 드러났다. 이 정부는 세월호가 침몰한 이후 단 한 명의 생명도 구조하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굳이 바꿀 만큼 '국민 안전'을 강조했지만, 재난현장에서는 전혀 작동이 안되는 구호일 뿐이었다. 청와대는 사건 초기부터 "국가안보실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며 발을 빼기에 급급했다.

컨트롤 타워의 부재와 정부의 무능력·무책임은 국민에게 사실상의 범죄로 비쳤다.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라는 지난 대선에서의 캐치프레이즈가 사기가 아니라면,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우리 아이들을 구하라. 모든 책임은 대통령이 지겠다."

박 대통령은 그 대신에 관료들에 대한 호통과 엄포로 자신을 국정의 최고 책임자에서 심판자로 치환하려 했다. 어쩌면 그 순간 관료들의 책임의 한계와 범위가 정해지고 말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노무현 전 대통령 5주기를 앞두고 사람들이 다시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것은 인지상정인지도 모르겠다. "책임은 대통령인 내가 지겠다"고 했던, 바로 그 대통령 말이다. '깨알 리더십'과는 차원이 다른 '통 큰 디테일'의 대통령 말이다.


▲ <기록> - '윤태영 비서관이 전하는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의 표지. ⓒ책담

"그는 디테일에 강했다. 잔소리도 제법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본을 갖출 때까지였다. 시스템이 갖추어지면 잔소리는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철저히 믿고 맡겼다. '책임은 대통령인 내가 진다'는 무언의 응원이 항상 함께 했다."(<기록>, 59~60쪽)

"대통령은 언제나 자신의 입장이 있었다. 그것을 분명하고 솔직하게 얘기했다…(중략)…대통령이 애매한 입장을 취해 참모들이 당혹스럽거나 곤욕을 치러야 할 일은 없었다. 그는 답을 주는 정치인이었다."(이하 같은책, 47쪽)

문재인 "인간 노무현의 생생한 모습 그 자체를 담은 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5주기를 앞두고 '노무현에 대한 단 하나의 기록'이 출간되었다. '윤태영 비서관이 전하는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기록>(윤태영 지음, 책담, 1만5000원)이 그것이다.

노 대통령이 기록을 중시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대변인, 제1부속실장, 대변인, 연설기획비서관을 역임한 저자는 노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복심'이자 '기록자'였다. 윤태영은 노무현이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일상과 정책을 기록하기 위해서 택한 사람이었다. 노 대통령은 그에게 "체력과 집중력이 허락한다면, 내가 참석하는 모든 회의나 행사에 자유롭게 배석하도록 하게"라고 일종의 '특권'을 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기록은 퇴임 후에도 이어져 "수백 권에 달하는 포켓 수첩, 1백 권에 달하는 업무 수첩, 1400여 개의 한글파일이 생산되었다."(18쪽) 그래서 문재인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추천의 글'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마주했던 시간과 상황을 가장 온전하게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 것"이라는 평가와 함께 이 책의 의미를 이렇게 평가했다.

"이 책을 한마디로 말하면 노무현의 진심입니다. 인간 노무현의 생생한 모습, 그 자체입니다."

이 책의 크게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에피소드 중심으로 정치인 노무현의 리더십과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2부는 대통령 재임 시절의 '성공과 좌절'을, 3부 '봉하, 454일간의 기록'은 퇴임 이후부터 서거까지를 시간 순서대로 기록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정치인 노무현의 캐릭터와 성향을 엿볼 수 있는 1부의 글은 저자가 2013년 가을부터 노무현재단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에 연재한 것들이다.

<기록>의 미덕은 절제와 여백, 담백하고 정직한 시선


▲ 윤태영 비서관과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 ⓒ노무현재단

이 책의 첫 번째 미덕은 '절제와 여백'에서 찾을 수 있다. 노무현재단이 기획한 책이지만 대통령을 미화하거나 칭송하는 글 일색일 것이라는 예단은 오산이다. '노무현의 진심을 기록한 단 하나의 책'으로 평가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저자가 노 대통령 재임 중에 보고 겪은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대통령'이라는 표현과 함께 '그'라는 3인칭 시점을 사용해 기술한 것도 그런 맥락이리라.

그래서 대통령 또는 인간 노무현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담백하고 정직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의 반이 흘렀으니 5년이라는 세월이 저자로 하여금 노무현이라는 '대상'을 관조하게 만들었을 법도 하다. 그러나 그보다는 윤태영 개인의 성품 탓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기록물 유출' 건과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정책과정에 대한 연구를 위해) 그는 자료들이 필요했다. 그 필요성을 감안해 그는 재임 중의 기록물을 정리해서 국가기록원에 넘기는 한편, 봉하 마을의 사저로 가져갈 한 세트를 별도로 복사해 두었다…(중략)…충분히 이해될 것으로 생각했다. 가볍게 판단한 것이었다. 그 점이 실수였다."(226~227쪽)

"대통령의 철학이란 바로 시스템이었다…(중략)…그의 이상은 대통령이 없어도 좋은 국가 운영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었다. 사람에 의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는 나라가 선진국이라는 것이 그의 소신이었다."(128쪽)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다시 주목받은 참여정부 시절의 위기관리 매뉴얼도 노 대통령이 재임 중에 만든 국가 운영 시스템 중의 하나다. 노 대통령은 국가안보와 재난대응 분야를 망라한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위기관리 매뉴얼을 만들도록 지시했으며, 당시 정부는 이를 토대로 재난유형별 위기관리를 위한 표준매뉴얼, 실무매뉴얼, 행동매뉴얼을 작성해 각종 대형재난 발생시 적재적소에서 활용한 바 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집권후 먼저 한 일은 이른바 '좌파정권 10년'의 흔적 지우기였다. 최근 김현 의원(비례대표)이 안전행정부가 제출한 '참여정부 위기관리 매뉴얼 보관 및 관리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참여정부 당시 생성해 이명박 정부 출범시 이관한 재난분야 위기관리 매뉴얼은 총 2627권에 달했다. 그러나 2008년 5월 이명박 정부 청와대 국가안보실에서 안전행정부에 이관한 재난분야 위기관리 매뉴얼은 표준매뉴얼 21권이 전부인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노 대통령이 매뉴얼만 만들어 관료들에게 안긴 것은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장관이 최대한 소신껏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대통령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중략)…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04년 6월 이라크에서 김선일씨가 피살되었을 당시 안팎의 문책 공세에 시달리던 반기문 외교부장관을 지켜낸 일이었다."(129쪽)

천당과 지옥을 오간 2004년의 노무현, 그리고 뇌경색 비화

김선일 피살사건은 2004년 6월 22일 이라크에서 미군에 각종 물품을 제공하던 한국 군납업체인 가나무역의 직원 김선일씨가 이라크의 무장단체에 납치되어 피살된 사건이다. 당시 한국 정부는 무장단체와 석방 교섭에 들어갔지만 무장단체 측은 한국군에 대한 2차 이라크 파병 철회 요구가 수용되지 않자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러자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그해 7월 국회 연설에서 정부를 이렇게 비판했다.

"국가가 가장 기본적인 임무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도 못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분노하며,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됐습니다."

누구의 목숨인들 소중하지 않으랴마는 개인이 해외에서 전시에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사업을 하다가 겪은 사고와 평시에 국가가 안전을 보장한 여객선을 타고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의 집단사고가 어찌 같으랴. 그래서 박근혜 대표의 연설은 10년 뒤에 부메랑이 되어 세월호 유가족의 가슴을 비수처럼 후벼 판다.

2004년은 정치인 노무현에게 천당과 지옥을 오간 해였다. 그해 3월 국회에서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되어 60여일간 직무가 정지되는 아픔을 겪었고, 4월 총선에서는 탄핵 역풍으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해 국회 권력을 교체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국민이 되찾아준 권력이기에 노 대통령은 그 어느 해보다도 국익을 위한 해외순방에 열중했다. 무리한 일정 탓에 최대의 위기도 그해 12월에 찾아왔다.

당시 노 대통령은 취임후 세 번째 한일 정상회담을 위해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를 타고 일본 가고시마현 공항에 도착해 헬기를 타고 이부츠키로 이동해 숙소인 하쿠수이칸(白水館)에 도착했다. 수행비서는 대통령의 언행이 평소와 다르다는 느낌을 가진 터였다. 고이즈미 총리와 정상회담을 몇 시간 앞두고 주치의, 경호실장, 의무실장, 부속실장, 수행비서가 한 자리에 모인 가운데 주치의는 조심스럽게 뇌경색 가능성을 언급했다. 대통령의 발음은 여전히 어눌했으나 경호실과 비서진이 손에 땀을 쥐는 가운데 다행히 정상회담은 무사히 끝났다.

천호선 당시 의전비서관이 지난 2012년 5월 통합진보당 대변인 시절에 한 케이블방송에 출연해 뇌경색 비화를 꺼낸 적이 있지만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을 상세하게 소개한 건 이 책이 처음이다. 필자를 포함해 한국에서 함께 온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아무도 대통령의 말투와 비서진의 동정에서 이상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당시 경호실장은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가고시마 공항에 있는 공군1호기를 비상 대기시켜 놓을 만큼 심각한 상황이었다.

귀국후 검진 결과, 뇌경색의 흔적이 노 대통령의 뇌 한 가운데 남아 있었다. 저자는 "위기가 대통령을 가까스로 비켜간 것"이라고 담담하게 기술했다. 뇌경색은 노무현을 비껴갔지만 3년 뒤 대통령 선거 패배의 위기는 대통령을 정조준했다.

"대통령선거가 치러진 이튿날인 12월 20일 아침, 그의 표정은 담담했다…(중략)…예상한 것이었지만 생각보다 표차가 컸다. 언론에서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거부감을 지적하고 있었다. '무능한 정부에 대한 심판'이라는 해설도 있었다."

이명박 당선자와의 축하 전화를 앞두고 대통령은 윤태영 비서관에게 지나가듯 말했다. "새것이 등장할 때는 옛것이 악이 되는 법이다."

'아방궁'에서 쳇바퀴 돈 대통령의 외로움과 쓸쓸함


▲ 노무현 전 대통령 ⓒ노무현재단

노 대통령은 퇴임한 뒤에도 책 저술을 위해 윤 비서관을 봉하 마을 사저로 불렀다. 농촌 문제에 대한 관심과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상징성을 염두에 두고 역대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귀향을 단행한 그였다. 그러나 퇴임 대통령의 말년은 외롭고 쓸쓸했다. 대부분 서울에 사는 참모들이 오기에는 부담스런 거리였다. 대통령도 참모들이 오는 것을 막았다. 결국 말년의 대통령에게 친구는 오랜 후원자였던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밖에 없었다(관련 기사 : "노무현-강금원 두 분 인연 원망하지 않습니다").

2009년 봄이 되자 박연차 회장을 수사하던 대검 중수부의 칼끝은 점차 봉하 사저를 향하고 있었다. "강금원 회장은 결국 구속되었다. 그는 기존의 홈페이지를 닫기로 하면서 지지자들에게 글을 남겼다.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254쪽)

그해 봄 언론은 잔인하고 집요했다. 카메라 기자들은 사저 맞은편 산에 진을 치고서 시도 때도 없이 망원렌즈를 들이댔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한나라당과 일부 정치인과 보수 언론이 '아방궁'이라고 비난했던, 그 일곱 걸음 크기의 '감옥'에서 쳇바퀴를 도는 것뿐이었다.

"사저의 마당에도 나갈 수가 없었다. 그는 빠삐용처럼 방 안을 맴돌았다. 맴돌면서 할 수 있눈 일이란 아무 것도 없었다. 숫자를 세는 일뿐이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다시 돌아서서 걸어도 정확히 일곱 걸음이었다. 그는 그렇게 방 안을 돌았다."(255쪽)

그해 5월 19일(화요일) 사저 비서실에서 작성해온 일정표에 마지막으로 기록된 일정은 윤태영을 포함한 회고록 집필팀 회의였다. 그 마지막 일정을 저자는 이렇게 기록했다.

"그날 보석으로 풀려날 것으로 기대했던 강금원 회장은 끝내 풀려나지 못했다…(중략)…그는 힘겨움을 토로했다. 자신에게 들이닥친,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적 고통에서 비롯된 힘겨움이 아니었다. 자신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겪고 있을 고통을 헤아리는 데서 비롯된 힘겨움이었다."(265~266쪽)

그리고 5월 23일 토요일 새벽 '운명의 날'에, 그가 컴퓨터 바탕화면에 남긴 글은 우리가 아는 그대로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노 대통령은 2009년 새해 첫날 신년인사를 온 손님들 앞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올해는 책을 쓰겠습니다. 반드시 책으로 일가를 이루겠습니다." 그러나 책으로 일가를 이루겠다는 그 간절한 소망은,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는' 상황을 맞으면서 결국 허망한 꿈이 되고 말았다. 그의 간절한 소망은 '그림자'이자 '기록자'였던 윤태영의 <기록>을 통해 이뤄진 셈이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4년 6월 02일, 월 3:5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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