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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스페셜리포트
 
벼랑 끝에 몰린 '신의 직장', 살아날 수 있을까
[스페셜리포트] '좌초 직전' 미국 우정공사(USPS) 회생 방안 고심


▲ 마가렛 우편함의 빨간 깃발이 올라가 있다. 우체부가 편지를 수거해 갈 것이다. ⓒ 한나영

(워싱턴) 한나영 기자 =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오래전, 통기타 가수 김민기는 애절한 목소리로 <가을 편지>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지금은 가을, 당신은 편지 쓸 준비가 되어 있는가? 첨단 디지털 시대에 웬 케케묵은 아날로그 편지 얘기냐고? 바로 편지, 우표와 관련된 미국 우정공사(USPS, US Postal Service) 얘기다. 질문은 계속된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편지를 쓴 건 언제인가? 한 달 전? 일 년 전? 아니면 기억도 안 나는 어느 때?"
"우표가 얼마인지 아는가?"
"공과금을 낼 때 체크(개인수표)를 써서 우편함에 집어넣는가?"


위 질문에 대한 많은 미국인의 대답은 어쩌면 비슷할 것이다. 기억도 안 나는 어느 때 마지막 편지를 썼고, 우표는 값을 알 필요가 없는 '포에버(forever)' 우표만 쓰고, 공과금은 온라인 뱅킹으로 해결하고 있다고.

물론 예외는 있다. 바로 내 이웃인 83세의 마가렛 할머니다. 마가렛은 60여 년 전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시집왔다. 마가렛은 고국에 두고 온 가족, 친지들에게 정기적으로 국제 우편을 보내고, 이전에 살았던 메릴랜드 친구에게도 편지나 카드를 종종 보낸다.

거동이 불편한 마가렛은 TV 홈쇼핑으로만 옷을 사고 공과금을 내는 것도 언제나 체크를 쓴다.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는 마가렛은 홈쇼핑 물건 값도 체크로 낸다. 마가렛 집에는 상비약처럼 '포에버 우표가 붙은 봉투'가 늘 준비되어 있다.

이렇게 모든 것을 우편으로 해결하는 마가렛. 그녀의 우편함 옆구리에 붙은 빨간 깃발은 쉴 새 없이 오르내린다. 빨간 깃발은 수거해 갈 편지가 있을 때 우체부에게 알려주는 신호다.

마가렛처럼 우편을 애용하는 사람이 많았다면 지금의 우정공사 위기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통령까지 나서 우정공사를 살리기 위한 방안을 발표해야 했을 만큼 미국의 우정공사는 문제가 심각하다.


▲ '신데렐라', '미키와 미니', '미녀와 야수' 등의 디즈니 우표를 2006년에 많이 샀다. 그 당시 우표값은 39센트였는데 지금은 44센트다. 편지 대신 이메일을 쓰고, 모든 결제를 인터넷으로 하기 때문에 우표를 쓸 일이 없다. 우표값이 올라도 영원히 쓸 수 있는 '포에버' 우표. ⓒ 한나영

미국 우편제도, 벼랑 끝에 몰리다

미국의 우편제도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전인 17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대 우정공사 총재는 피뢰침을 발명한 과학자이기도 했던 벤자민 프랭클린이다. 내각 형태의 우정공사는 1792년에 만들어졌고, 1971년에 개정된 '우편개편법'에 따라 오늘날 시행되고 있는 우편 제도 형태가 갖춰졌다.

미국의 우정공사는 월마트에 이어 두 번째로 고용 규모가 크다. 직원만 해도 57만4000명, 보유 차량은 21만6000여 대이다. 지난해 벌어들인 총수입은 670억 달러. 하지만 지난 분기에 약 30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9월 4일자 <뉴욕타임스>에는 '우정공사 손실 산더미, 부도 직전'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보도에 따르면 우정공사는 그동안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근근이 버텨왔지만 이제는 거의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라고 한다.

현재 자금이 부족한 우정공사는 당장 이달 말까지 지불해야 할 퇴직자 건강보험료 55억 달러의 지급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만약 의회가 우정공사 재정을 보완하기 위한 긴급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올겨울에 문을 닫을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우정공사가 돈이 부족해져 내년 초쯤이면 직원들 월급도 못 주고 우편배달용 트럭 기름 값도 대기 어려워져 매주 배달되는 30억 통의 편지가 배달되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고 관리들은 경고하고 있다.

패트릭 도나후 우정공사 총재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며 "의회가 뭔가 조치를 취해 주지 않는다면 결국 부도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편지를 배달하는 우체부. 현재는 토요일도 근무하고 있다. ⓒ 한나영

우정공사가 왜 이 지경에?

미국 우정공사는 철밥통으로 알려진 '신의 직장'이다. 이곳에 일자리를 얻은 직원은 '해고'라는 무서운 말을 들을 일이 없다. 왜냐하면 이곳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계약서에 해고를 시킬 수 없다는 '무해고(No-layoff)' 조항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곳은 정년퇴임도 없고 다른 정부기관보다 많은 건강보험 혜택이 제공되고 있다.

이렇게 매력적인 직장을 떠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러다 보니 우정공사는 높은 인건비를 감당해야 했다. 현재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총지출 비용 가운데 80%나 된다. 동종 업계인 민간 기업의 UPS(53%)나 페덱스(32%)와 비교해 봐도 인건비 지출이 심각할 정도로 높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재정 부담으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높은 인건비나 과다한 복지 혜택이 아니다.

짐작하겠지만 인터넷 혁명이 우정공사의 경영 위기를 악화시킨 주범이다. 9월 20일 NPR의 '모닝에디션'에 출연한 패트릭 도나후 우정공사 총재는 우정공사 위기를 설명하면서 이메일과 온라인 결제 등의 인터넷 사용이 현 위기의 주요 원인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11년 전인 2000년만 하더라도 온라인으로 청구서를 지불한 미국인은 고작 5%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60%로 껑충 뛰어올랐다는 것이다. 따라서 체크를 써서 우편으로 보내는 '1종 우편'의 양도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또한 편지 대신 이메일을 보내고, 우편물을 통한 DM 마케팅 대신 이메일이나 웹사이트를 활용하는 기업이 늘어난 것도 우정공사의 경영을 어렵게 만들었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가져온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인 셈이다.


▲ 코미디언 스티븐 콜버트가 스마트폰을 들고 우표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우표) 안녕" 우표. 우정공사가 수입을 늘리기 위해 생존 인물을 우표 모델로 쓸 수 있다고 발표하자 코믹하게 만들어본 것이다. 스마트폰, 인터넷은 우정공사의 쇠퇴를 가져온 주범이다. ⓒ federaltimes

공사 "3700개 우체국 폐쇄, 12만 명 해고" - 노조 "무해고 원칙 지켜라"

"나는 어제도 편지를 썼다. 공과금 등의 청구서 비용도 절대로 인터넷으로 내지 않는다. (명색이) 우정공사 총재인데 온라인으로 돈을 낸다는 건 끔찍한 일이 아니겠는가."

도나후 총재는 NPR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우표나 봉투를 몇 장 더 산다고, 인터넷 뱅킹 대신 봉투에 체크를 넣어 보낸다고 위기에 처한 우정공사를 구할 수 있을까. 그것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도나후 총재는 금년 회계연도에 92억 달러에 달한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한 몇 가지 비용 절감 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토요일 우편배달 중지, 3700개 우체국 폐쇄, 우정공사 전체 직원의 1/5에 해당하는 12만 명 해고(물론 노조 계약에는 해고 조항이 없지만)."

하지만 이런 경영 혁신을 위한 새로운 조치가 원만하게 시행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토요일 우편배달 중지에 대해 농촌 지역 출신 의원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인 주의 상원의원인 수산 콜린즈는 "토요일 우편배달 중지가 겨우 우정공사 예산의 2%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뿐"이라며 "이는 우편으로 의사처방전을 받거나 신문을 받고 있는 농촌 사람들에게는 매우 곤란한 일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우정공사를 살리기 위한 복안이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우선 전국에 산재한 3700개의 우체국을 폐쇄하는 것과 관련해 대안으로 나온 것이 월마트 같은 점포에서 우편물을 취급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다른 나라에서처럼 우정공사가 은행 역할도 맡게 하자는 안도 나오고 있다.

이것만이 아니다. 현재는 우정공사에서 다른 업종을 취급하는 게 금지되어 있지만 이를 허용하여 보험, 휴대폰을 팔 수 있게 하고, 와인이나 맥주도 배달할 수 있게 하자는 안도 있다. 또한 돈이 되면 뭐든지 허용할 태세여서 배달용 우편 트럭이나 우정공사에 상업용 광고 게시를 허용하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경영 쇄신을 위해 가장 필요하고 시급한 것은 인력 감축일 것이다. 하지만 막강 노조가 크게 반발하고 있어 예정대로 인력 감축이 이루어질지 의문이다.

20만7000명의 우편물 분류자와 전체 우정공사 직원들을 대표하는 '미국 우편 노동자 조합' 대표인 클리프 구푸리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우리는 강력하게 싸울 것이며 그들이 (무해고) 원칙을 철회하는 건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노조의 주장대로 우정공사에서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은 불법이다. 하지만 우정공사가 시행하려 하는 인원 감축안은 '파산법 11장(Chapter 11 bankruptcy)'을 의회에 요청하여 '고용 보호'를 뒤집을 수 있는 법안을 새로 만드는 것이다. 파산법 11장은 기업을 회생시키고 채무 상환을 일시적으로 연기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하는 법정관리와 비슷하다. 우정공사는 이 '파산법 11장'에 의거해 12만 명의 직원을 해고하고 10만 개 일자리의 가지치기를 하려 하고 있다.


▲ 우정공사의 경영 쇄신을 위해 가장 필요한 조치는 인력 감축. 그러나 노조가 크게 반발하고 있어 쉽지 않다. <뉴욕타임스>에 실린 '미국 우편 노동자 조합' 대표들. ⓒ <뉴욕타임스>

생존 위한 몸부림... "살아 있는 사람도 우표에 등장시키겠다"

우정공사가 수입 증대를 위해 벌인 힘겨운 노력은 그동안 지켜온 원칙마저도 버리게 했다. 9월 26일, 우정공사는 오랫동안 지켜왔던 '죽은 사람만 우표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원칙을 버리고 살아 있는 사람도 우표에 등장할 수 있도록 원칙을 바꾸었다.

우정공사는 새 원칙을 발표하면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자신들이 기념하고 싶은 다섯 명의 이름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렇게 올라온 현존 인물 중에서 '시민 우표 자문위원회'가 몇 명을 추리게 되고 최종 결정은 우정공사 총재가 하게 된다.

공사 관계자는 이번 행사가 시민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킬 것이며, 특히 젊은이들이 특별한 날에 좋아하는 사람의 우표를 붙여 편지를 보내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인터넷에는 레이디 가가, 밥 딜런, 빌 게이츠, 마크 주커버그(페이스북 창시자), 우주인 닐 암스트롱 등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좌초 직전의 우정공사가 벌이는 사투, 생존의 몸부림이 눈물겹다. 과연 몸집 큰 공룡 직장, 우정공사는 살아날 수 있을까.


▲ "레이디 가가 우표 주세요." 살아 있는 사람도 이제는 우표 모델이 될 수 있다. 레이디 가가, 빌 게이츠, 밥 딜란이 모델 후보로 올라와 있다. ⓒ <뉴욕타임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올려짐: 2012년 3월 16일, 금 6:5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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